현재 핀테크 산업은 세계의 금융 일번지 미국, 전통의 금융 강국인 영국, 정보기술(IT)과 인터넷으로 금융을 혁신하고 있는 중국에서 활발하게 발달하고 있다. 한국은 어디를 벤치마킹하면 좋을까.
이들과의 3~4년 격차를 정책 노력으로 좁히려는 한국으로선 민간 중심인 미국과 중국보다 정부와 대형 금융회사가 주도하고 있는 영국에 일차 초점을 맞추는 게 좋을 듯싶다. 작년 핀테크 매출 11조원
핀테크 관련 투자 규모는 미국이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보다 훨씬 더 크다. 하지만 투자 증가 속도는 영국이 단연 빠르다. 2012~2014년 영국의 연평균 핀테크 산업 성장률(매출·고용 등 감안)은 600%에 육박해 실리콘밸리 성장률 190%의 3배 수준이고 핀테크 투자 규모는 2008년 이후 연평균 70% 이상의 성장세다.
최근 영국 정부는 ‘핀테크 주간(FinTech Week)’을 맞아 영국 내 핀테크 산업 현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영국 내에서 핀테크에 따른 매출은 65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11조2000억원에 달했고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는 6만100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해리엇 볼드윈 영국 재무부 장관의 말처럼 핀테크 산업이 영국 경제를 위해 수십억 파운드를 벌어주는 효자 산업인 셈이다.
대표적인 핀테크 업체의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해외 송금의 수수료 혁신을 일으킨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다. 고객이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해 해외에 송금할 때 돈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만 국가 간 송금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통신망을 통해 국내 송금만으로도 실제 해외 송금이 일어난 것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러한 핀테크는 사용자가 늘면 늘수록 서비스 안정성과 수익이 더 탄탄해지는 ‘눈덩이 효과’가 크기 때문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 최근 트랜스퍼와이즈는 기업 가치 평가에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둘째 사례는 P2P(개인 간 거래) 대출 업체의 원조인 ‘조파(Zopa)’를 꼽는다. P2P 대출은 개인과 개인 간의 직접 대부가 가능하도록 중개 업무를 수행하는 서비스다. 이는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핵심 사업을 파괴하고 새 영역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조파뿐만 아니라 펀딩서클(Funding Circle)·레이트세터(RateSetter) 등 다양한 P2P 대출 업체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2014년 3월까지 전체 P2P 대출 누적 중개액은 12억700만 파운드였다.
그럼 이처럼 영국의 핀테크가 급성장을 보이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업계에선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런던 동부에 있는 스타트업 전용 단지인 테크시티(Tech City)에 투자한 금액만도 7억8100만 달러나 될 정도로 과감한 영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다.
런던은 기존의 금융 인프라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핀테크 스타트업의 메카로 급부상 중이다.
전 세계 차원에서 볼 때 핀테크 산업 성장률은 27%인데, 영국 핀테크 산업의 거래 규모는 2008~2013년 동안 매년 74%씩 성장해 왔고 핀테크 투자 규모는 같은 시기 총 7억8100만 달러에 이른다. 2014년 3분기에는 런던 소재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액이 사상 최초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영국의 핀테크 산업 종사자는 13만5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런던 내에만 1800여 핀테크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런던시청 집계에 따르면 런던에 적을 둔 스타트업은 이미 3000개를 넘어섰다. 베를린이나 스톡홀름 등 유럽의 다른 경쟁 도시들보다 훨씬 많다.
테크시티는 영국 카메론 정부의 지원으로 형성된 핀테크 스타트업 단지로, 현재 5000개 이상의 창업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테크시티가 만들어진 2011년 이후 영국의 핀테크 거래 규모는 3배 이상 늘었다.
영국 정부는 테크시티를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수 있는 핀테크 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페이스북·구글·맥킨지 등 전 세계 유수의 IT 기업과 컨설팅 회사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런던왕립대과 런던시립대 등 여러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단기간에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이어 전 세계 3위의 핀테크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도약했다.
또한 영국은 테크시티의 기술력과 금융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013년 초 ‘레벨(Level)39’이라는 유럽 최대의 핀테크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레벨39은 핀테크 창업 기업들과 카나리 워프에 자리한 대형 금융회사들 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영국의 핀테크 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레벨39은 유망한 핀테크 창업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을 조달하거나 경영 자문을 지원하는 등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86개의 핀테크 기업을 유치·육성했다.
그리고 설립 6개월 만에 42층까지 공간을 넓혀 창업 기업뿐만 아니라 성장기에 접어든 기업도 지원하고 있다.
거대 금융사 지원 받고 급성장
영국에선 대형 은행 주도로 핀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영국은 미국이나 중국에서와 달리 IT 업체가 아니라 대형 은행들이 핀테크 산업 발전을 주도한다.
거대 은행과 기민한 핀테크 창업 기업들은 제휴·투자, 인수·합병 등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이상적인 협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HSBC나 ‘퍼스트 다이렉트(First Direct)’ 등 대형 은행들은 핀테크 업체 잽(Zapp)과 제휴해 비밀번호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금융사들이 공동으로 ‘금융테크혁신연구소’를 설립해 핀테크 기업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그룹·도이치뱅크 등 대형 은행이 후원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고 성장 가능성이 큰 핀테크 기업을 선정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전문 인큐베이터와 50개가 넘는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해 핀테크 기업의 초기 투자, 행정·법률자문, 외부 투자자 유치 등을 돕고 있다.
이렇게 최근 영국 내 핀테크 산업은 거대 금융사의 지원을 받아 성장 중인데, 금융 기업의 대표적인 지원 프로그램으로 2014년 6월 시작된 ‘바클레이즈 액셀러레이터(Barclays Accelerator)’와 같은 해 8월 마스터카드·로이드 뱅킹·라보뱅크의 제휴로 시작된 ‘범유럽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부트캠프(Pan-European accelerator Startup Bootcamp)’를 들 수 있다.
금융 기업의 지원으로 성장한 핀테크 기업이 기존 금융 기업의 사업 영역과 충돌하기도 하면서 영국 핀테크 시장은 거래 규모뿐만 아니라 이슈의 측면에서도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핀테크코리아의 총성을 터뜨린 우리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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