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남녀 400명 설문 조사…주거·육아·취업 ‘삼중 허들’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결혼하지 않는 나라다. 결혼하지 않으니 출생률도 속절없이 추락한다. ‘초저출산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지도 오래다. 2013년 기준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1년 연속 꼴찌다. 대책을 고심하던 정부가 지난 2월 6일 결혼 장려에 정책을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저출산 문제의 시작을 만혼(晩婚)으로 보고 결혼을 일찍 하도록 유도해 초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른바 ‘만혼 대책’이다.
“취업도 못하는데 결혼이 웬 말?”
하지만 정작 결혼해야 하는 미혼 남녀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경기도 의정부에 거주하는 미혼 직장인 김 모(33) 씨는 “만혼율을 낮춰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훑어봤는데 딱히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며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안 하는, 그리고 미루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경비즈니스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20~40대 미혼 남녀 400명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선남선녀들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 결혼을 안 하는(미루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10명 중 3명만 결혼 생각…주거 부담↑
조사 결과 미혼 남녀들은 대부분이 결혼 계획이 없거나 미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결혼 계획 유무’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5%가 결혼 계획이 없다고 했고 14.8%는 있지만 미룬다고 답했다. 결혼 계획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응답자는 33.8%에 불과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미루는 이유로는 남성과 여성의 의견이 엇갈렸다. 남성은 ‘결혼 비용 부담 때문’이 36.0%로 가장 많았고 여성은 ‘적당한 배우자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33.0%로 가장 많았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만혼의 노총각 장경철(43) 대표는 “남자들의 결혼 비용은 결국 주거 부담인데 아직도 만연한 ‘신랑=집’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어져야 한다”며 “전셋값 고공 행진 소식이 들려올 때 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결혼 3년 차 새 신부 김인해(30) 씨는 “신혼집을 제외한 혼수나 예단·예물 마련에도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며 “신랑 측에서 주거 마련에 목돈을 쏟아부었다는 이유로 고가의 예단과 예물을 신부 측에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반박했다. 신랑이 집을 책임진다면 예단과 예물 그리고 혼수는 신부의 몫이다. 어느 정도 비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혼 준비 비용이 부담되기는 여성도 매한가지라는 지적이다.

결혼 비용 부담 정도를 묻는 설문 결과 남녀 응답자 모두 ‘매우 크다(남성 54.0%, 여성 44.0%)’고 입을 모아 김 씨의 주장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미혼 남녀가 생각하는 최소 결혼 준비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과반(54.3%)이 ‘1000만~5000만 원’에 손을 들었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은 결혼 준비 비용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00만~1억 원’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남성이 32.0%, 여성이 20.5%였고 ‘1억~1억5000만 원’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남성이 15.5%인데 반해 여성은 4.0%에 그쳤다. 주거 마련에 대한 남성의 부담이 가져온 결과로 분석된다.

결혼 결정 시 주거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에서는 거의 모든 미혼 남녀가 ‘매우 중요하다(46.5%)’거나 ‘중요하다(47.8%)’고 답했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0.3%에 불과했다. 최소한으로 생각하는 신혼집 주거 유형으로는 압도적으로 많은 응답자가 ‘전세(70.3%)’를 꼽았고 이러한 전세 선호 현상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두드러졌다. ‘자가’는 8.8%, ‘월세’는 6.8%에 불과했다. 집 구매는 포기했지만 월세는 용납하지 못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미혼 남녀들은 아직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취업도 못하는데 결혼이 웬 말?”
이번 만혼 대책에서는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전 저출산·고령화 대책들에서 부각되지 못했던 ‘청년 고용률 확대’를 핵심 과제로 끄집어낸 것이다. 청년층의 빠른 사회 진출을 지원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과연 청년 고용률 확대를 통해 만혼율을 낮출 수 있을까. 그 답을 짐작할 수 있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만 해주면 결혼한다’는 최소 결혼 긍정 검토 조건을 묻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 ‘직장만 안정적이면 결혼한다(55.3%)’고 답했다. ‘집 문제만 해결되면 결혼한다(20.8%)’와 ‘빚만 없으면 결혼한다(16.0%)’는 의견도 많았다.


선호 배우자 1위 ‘공무원’
취업(직업)이 결혼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응답한 미혼 남녀의 절반 이상인 58.5%가 ‘매우 크다’고 답했고 34.5%가 ‘크다’고 대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남성(매우 크다 59.0%, 크다 35.5%)이 여성(매우 크다 58.0%, 크다 33.5%)보다 조금씩 높아 안정적인 직업을 구한 뒤 결혼하려는 남성이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취업을 위해 어학연수를 준비 중인 강창수(29·남) 씨는 “취업도 못하고 있는데 결혼이 웬 말이냐”라며 “요즘 같은 시기에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도 민폐고 취업이라도 잘해야 대출받아 결혼 자금에 보탤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미혼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계약이 종료된 이시경(26·여) 씨도 “내가 취업을 잘해야 배우자의 직업도 달라지는 법”이라며 “함께 취업을 준비하는 지인들 중에도 제대로 된 곳에 정직원으로 취업한 뒤 결혼하겠다고 밝힌 미혼 남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미혼 남녀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은 무엇일까. 1위는 ‘공무원(34.0%)’이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공무원 시대’다. 안정적인 삶을 최우선으로 삼는 이 시대 미혼 남녀들은 공무원과의 짝사랑에 빠져 있다. 일반 사무직(19.3%), 자영업·사업(14.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한때 잘나갔던(?) 전문가들은 9.0%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강력한 1위 후보로 거론됐던 ‘교사’가 14.3%에 그친 것도 눈길을 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성은 ‘교사(22.5%)’를 ‘공무원(36.5%)’에 이은 최고의 배우자로 꼽았다. 전체 응답률을 끌어내린 것은 바로 여성이었다. 고작 6.0%의 여성만이 배우자감으로 ‘교사’를 선택해 평균을 대폭 깎아 내렸다. 교사 남편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예상 밖의 조사 결과다.


“정부 대책 무용지물” 47.5%
‘결혼 후 출산 계획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자녀를 2명 낳겠다는 의견이 47.3%로 가장 많았고 ‘1명만 낳겠다(25.5%)’, ‘낳지 않겠다(18.8%)’, ‘3명 이상 낳겠다(8.5%)’ 등의 순이었다. 1명 또는 2명의 자녀를 출산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다출산보다 미출산 의지가 높았다는 것은 당분간 저출산 기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했다. 특히 출산을 해야 하는 당사자인 여성은 전체 응답의 25.5%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해 우려가 더해진다.

이 같은 출산 기피 현상의 이유는 만만치 않은 육아 부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골드미스 최모(39) 씨는 “육아와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원더우먼’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주거비·양육비 문제로 생활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힘들고 지친 ‘아줌마’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만혼을 줄이고 출산율 끌어올리겠다며 내놓은 정부의 히든카드 ‘만혼 대책’에 대한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혼 비율 감소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미혼 남녀(47.5%)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38.8%가 ‘모르겠다’고 말했고 13.8%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혼 출산(동거)을 인정하고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정부도 미혼 출산(동거)에 대해 고려 중이다. 다만 한국의 정서상 섣부르게 추진하기 어려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한경비즈니스의 이번 설문에서는 ‘미혼 출산(동거) 여부’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절반에 가까운 46%가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76%가 반대했다.


김병화 기자 hkforce@hankyung.com



학벌 인증부터 유전자 분석까지, 짝 찾기 경제학
#1. 잠실에 사는 직장인 김현정(35) 씨의 모바일에는 하루 두 번 ‘데이팅 상대남’의 프로필이 도착한다. 그중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는 3300원 정도에 구입한 ‘OK권’을 보낸다. 이를 확인한 상대방 역시 김 씨에게 OK 메시지를 보내면 두 사람의 연락처가 공개되고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연애를 포기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이들이 짝을 찾는 방식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키워드는 다름 아닌 ‘효율성’이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이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인 소개팅 방식은 당사자들 간의 만남뿐만 아니라 주선자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한 번 만나기 위해 식사비용을 비롯해 ‘적잖은 경제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성공 확률이 보장돼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비교해 데이팅 앱은 프로필과 사진만으로 한 번 필터링이 된 상대를 만난다는 점에서 ‘투자 대비 만족도’가 훨씬 높은 방식인 셈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점점 더 효율적인(?) 필터링 시스템을 장착한 앱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데이팅 앱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울권 25개 대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 데이팅 앱도 있다. 사진을 통해 외모를 평가받아 합격점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데이팅 앱 이용에서부터 ‘학벌’과 ‘외모’ 등의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세태는 단지 ‘온라인 만남’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만남’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결혼 정보 업체에서 연애코치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 정보 업체를 찾는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결혼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이들이 대다수다. 그만큼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이를 돕는 것이 바로 연애코치의 역할이다. 이성을 만났을 때 호감을 주는 스타일링이나 태도는 물론 대화 기술까지 전수한다.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최적의 배우자와 만남을 성사시키는 결혼 정보 업체도 등장했다. 가수 이무송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바로연 결혼 정보 회사다. 유전자 체계를 분석하고 수치화해 마음에 드는 이상형을 찾아준다는 설명이다. 이명길 듀오 연애코치는 “연애와 결혼에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며 “최근의 젊은이들은 이 같은 투자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면서도 더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