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ㆍ금융지주 사외이사 줄줄이 연임
◆금융위의 ‘지배 구조 모범 규준’ 무색…‘매년 20% 교체’ 지키는 곳 없어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그동안 금융사 사외이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분위기에 철퇴를 놓기 위해 ‘금융회사 지배 구조 모범 규준’을 마련해 시행에 나섰지만 이에 대한 금융사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올해 주총에선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논란이 사그라질 수 있을까.
은행ㆍ금융지주 사외이사 줄줄이 연임
(사진) 3월 정기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국내 주요 금융사들의 사외이사 물갈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한국경제신문)

KB·하나·신한·농협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 5대 금융사의 사외이사 37명 가운데 26명(70.3%)의 임기가 이달 중 끝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매년 전체 사외이사의 5분의 1 안팎을 새로 뽑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금융회사 지배 구조 모범 규준’ 시행에 나서면서 금융사 사외이사의 물갈이 여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회사 지배 구조 모범 규준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는 통상 2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이후 1년씩 연임이 가능하고 최장 5년까지 업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의 성격이 크고 각 금융사별 사외이사 임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KB금융, ‘오락가락’하는 사외이사 임기

KB금융그룹은 2014년 이른바 ‘KB 사태’ 이후 사외이사들의 ‘권력화’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2014년 4월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시작됐던 당시 KB금융지주와 은행 간의 갈등은 그해 은행장과 지주 회장의 동반 사퇴라는 초유의 결과를 낳으며 금융권의 대표적 내분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후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던 KB금융은 그해 말 윤종규 지주 회장 체제를 맞이했다.

KB 사태를 책임지고 기존 사외이사들이 전원 퇴임한 이후 지난해 3월 KB금융의 사외이사로 최영휘(신한금융지주 전 사장), 유석렬(삼성전자 고문), 한종수(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 위원), 최운열(서강대 석좌교수), 김유니스경희(이화여대 교수), 박재하(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병남(LG경영개발원 인화원장) 등 7명이 새롭게 영입됐다.

이들은 KB금융이 공들여 영입한 멤버로 주목받았다. 특히 최대 경쟁사인 신한금융지주의 최영휘 전 사장과 유석렬 삼성카드 전 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출신보다 능력을 우대하는 인사를 단행해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금융권에서 경쟁사의 최고경영자(CEO)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데려오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KB금융지주는 지난해 ‘쇄신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사외이사의 임기를 기존의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1년도 채 못 갔다. KB금융지주는 최근 자체 규정을 번복하며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7명 모두를 1년 더 연임시키기로 했다. KB금융은 오는 3월 2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외이사 7명의 재선임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의 이번 결정은 자체 규정은 물론 전체 사외이사의 5분의 1 안팎을 새로 뽑도록 한 금융 당국의 모범 규준도 지키지 않은 것이어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KB금융 측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어렵게 영입한 것이기 때문에 1년의 임기는 너무 짧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지만 1년 만에 번복하는 모습을 보여 업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KEB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대부분이 ‘유임’

KEB하나금융지주도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대부분을 유임할 예정이다. KEB하나금융은 총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윤종남(법률사무소 청평 대표변호사), 박문규(에이제이 회장), 송기진(광주은행 전 은행장), 김인배(이화여대 교수), 홍은주(한양사이버대 교수), 이진국(신한금융투자 전 부사장) 등 6명 사외이사의 임기가 올 3월까지다.

3월 25일 열리는 주총에서는 이 가운데 하나금융투자 사장으로 내정된 이진국 씨를 제외한 5명에 대한 임기 연장건과 이진국 씨 대신 후보에 오른 박원구 사외이사(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 교수)에 대한 신규 선임 건이 결정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3월 3일 이사회를 열고 올해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4명을 전원 재선임하기로 했다. 김주성·권영준·전영록·한기정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결정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9월 통합은행이 출범할 당시에는 사외이사 수가 6명이었지만 사외이사였던 한견표 변호사가 한국소비자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은행 이사직을 내려놓아 5명으로 줄었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7명의 임기가 3월 중 만료된다. 2011년에 선임돼 올해까지 만 5년 이상 연임해 온 권태은·김석원 사외이사가 임기 문제로 교체가 확실해졌고 정진 사외이사는 올해 이사회를 떠날 예정이다. 7명 가운데 재선임되는 사외이사는 총 4명이다.

남궁훈 사외이사(전 생명보험협회장)는 기타 비상무 이사로 자리를 옮긴다. 고부인(산세이 대표이사), 이만우(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상경(이상경법률사모수 변호사) 사외이사는 3월 2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된다.

새로 이사회에 합류한 인물은 이성량 동국대 교수, 이정일 재일상공회의소 전 부회장, 이흔야 재일한국상공회의소 상임이사 등 3명이다.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될 예정인 고부인 사외이사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1년간 사외이사를 지냈고 2013년 다시 선임돼 3년간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이번에는 임기 1년으로 재선임될 예정이다.

신규 선임 예정인 이정일 후보는 재일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일본평천상사(주) 대표이사로 일본계 주주를 대표하게 된다. 또 다른 후보인 이흔야 재일한국상공회의소 상임이사는 현재 마루신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 재선임 및 신규 선임이 확정되면 총 9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고부일 이사와 히라카와 유키(레벨리버 대표이사) 이사를 포함해 4명이 재일 교포 출신으로 꾸려지게 된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외이사를 한 번 임명하면 오랫동안 신임하는 분위기여서 사외이사와 경영진과 관계가 밀접한 편이다.

게다가 재일 교포 출신 사외이사들은 그동안 통일된 의사 결정을 해 왔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가 특정 집단 출신의 입김에 의해 채워지는 것 아니냐며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농협금융, 또 ‘관피아’ 오나

아직 윤곽이 밝혀지지 않은 NH농협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선임 문제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에는 4명의 사외이사가 있는데 김준규 이사(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와 손상호 이사(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3월 임기가 만료된다.

현재 농협금융의 사외이사 4명 가운데 3명은 정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사외이사 선임 당시 ‘관피아’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김준규 현 사외이사는 대검찰청 검찰총장을 역임했고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로 근무했다. 이사회 의장인 민상기 사외이사는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으로 한국선물학회장·한국금융학회장·공적자금관리위원장 등을 지냈다.

농협금융지주는 2012년 3월 지주사 출범 당시부터 민간인 출신의 사외이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출범 후 박용석 대검찰청 전 차장,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 이장영 금감원 전 부원장, 배국환 기획재정부 전 2차관 등이 농협금융 사외이사를 거쳐 갔다.

이 밖에 우리은행은 현재 6명의 사외이사 중 오상근(동아대 교수), 최강식(연세대 교수) 이사가 임기 2년을 채웠다. 최고경영자(CEO)나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끊임없이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던 우리은행은 올해 무난한 주총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4일 이사회를 열고 새 사외이사로 이호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와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이 교수와 김 교수는 임기가 만료된 오상근·최강식 이사의 뒤를 이어 앞으로 2년간 사외이사를 맡을 예정이다.

◆사외이사, ‘거수기’ 전락 여전

그동안 금융사의 사외이사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아 가는 사외이사 가운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은 손을 꼽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9월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서강시장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은행 경쟁력 분석과 금융 개혁 방향’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지난 5년간 국내 38개 금융사 이사회가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에 대해 찬성한 비율이 무려 9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8개 금융사 가운데 이사회에서 5년 동안 반대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곳은 25개사(65.8%)나 됐다. 가령 IBK기업은행·대구은행·부산은행·제주은행·SC은행 등은 지난 5년간 이사회 안건에 반대한 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 보험 업계와 증권 업계는 지난 5년간 반대가 없었던 회사 비율이 각각 70%, 75%에 달하는 등 사외이사 제도의 견제 기능이 은행권에 비해 더 약했다.

올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에선 이 같은 분위기에 철퇴를 놓기 위해 2014년 말 ‘지배 구조 모범 규준’을 마련해 시행에 나섰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지배 구조 모범 규준 제20조에 따르면 금융사는 사외이사 총수의 5분의 1 내외에 해당하는 수의 사외이사를 매년 정기 주총에서 새로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임기가 만료된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등 모범 규준을 이행하지 않는 곳이 속출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모범 규준이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의 시행령이어서 내부에서 관련 논의가 그리 깊이 오가지 않았다”며 “또 금융그룹의 자체 규정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5년까지 두고 있기 때문에 사외이사 연임 문제를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지언 금융연구원 금융동향센터장은 “사실 사외이사 제도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꾸준히 논란이 제기돼 왔다. 사외이사 역할이 거수기나 바람막이 역할에 그치는 것은 물론 경영진과 유착하는 것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 것은 맞다”면서도 “사외이사 제도가 가지는 견제 기능은 반드시 꼭 가져가야 할 부분이다. 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사외이사에 대한 감독 당국의 교육과 소통 강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3월 정기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국내 주요 금융사들의 사외이사 물갈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외이사 보수 1위, 신한 남궁훈 이사 ‘6800만원’

금융위원회가 2014년 발생한 ‘KB 사태’를 계기로 금융회사의 수장과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 구조 모범 규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사들은 올해부터 최고경영자 및 사외이사의 선임 과정과 자격 요건, 활동 내역, 보수 등을 상세히 담은 지배 구조 연차 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올 3월 초 처음으로 공개된 각 금융사의 지배 구조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표 금융사의 사외이사 대부분은 5000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KB·신한·하나·농협 등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사람은 신한금융지주의 남궁훈 사외이사로 총 68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궁 이사는 기본급 4800만원에 회의 참가 수당 800만원, 직책수당 1200만원을 수령했으며 안건 검토 등의 이사회 활동에 총 198시간을 소요했다. 신한금융지주의 김석원·이상경 사외이사는 각각 6400만원, 이만우 사외이사는 6100만원을 받았다.

KB금융지주에서는 최영휘 사외이사가 6000만원의 보수를 수령해 임금이 가장 높았다. 이 밖에 최운열 이사 5600만원, 유석렬 이사 5500만원, 박재하 이사 5300만원, 이병남 이사 5200만원 순으로 보수를 받았다.

하나금융지주는 윤종남 사외이사가 6450만원을 수령해 가장 높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박문규 사외이사와 송기진 사외이사가 각각 6000만원, 김인배 이사 5550만원 순이었다. 농협금융지주에서는 김준규 사외이사와 손상호 사외이사가 각각 5700만원을 수령했고 민상기·전홍렬 사외이사가 52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