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주자인 원유·구리 반등…인도·동남아시아 ‘제2의 중국’ 되나}
‘원자재 바닥론’ 새로운슈퍼사이클의 초입인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오랫동안 침묵하던 ‘닥터 코퍼(Dr Copper)’가 드디어 응답을 시작했다. 2011년 이후 줄곧 바닥으로만 치닫던 구리 가격의 흐름이 올 들어 반등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지난 1월 15일 톤당 4310.5달러를 기록한 후 3월 30일 기준 톤당 4940달러까지 올라섰다. 두 달여 만에 약 15% 올랐다.

수많은 원자재 중에서도 구리에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산업에 들어가는 원자재이면서 전선의 주요 재료로 활용되다 보니 제조업 설비투자가 활발할수록 수요가 많아진다.

글로벌 경기 선행지표로 활용되는 만큼 ‘원자재의 대표 격’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닥터 코퍼’가 유독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랫동안 암흑기를 거쳤던 원자재 시장에 모처럼 ‘봄바람’이 불 것이란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구리뿐만이 아니다. 유가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2월 12일 배럴당 26.21달러까지 떨어진 후 오름세로 돌아섰다. 지난 3월 17일 배럴당 40.20달러로 거래를 마감하며 올 들어 처음으로 ‘유가 40달러’를 회복하기도 했다.


◆고개 든 ‘닥터 코퍼’

원자재 시장의 ‘맏형’이랄 수 있는 국제 유가와 구리가 완만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다른 원자재 가격들도 서서히 이런 흐름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WIT와 함께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지난 1월 20일 기준 배럴당 27.88달러에서 3월 30일 배럴당 39.26달러까지 약 40% 올랐고 배럴당 25.56달러에 거래되던 두바이유도 3월 30일 기준 배럴당 35.17달러(약 37% 상승)에 거래를 마쳤다.

구리가 포함된 비철금속(구리·아연·납·주석·알루미늄 등)도 지난해 큰 폭으로 가격 하락을 겪었던 것과 비교해 올 들어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월 12일 톤당 1597달러였던 납은 3월 30일 톤당 1738달러(약 9% 상승), 아연은 지난 1월 12일 톤당 1453.50달러에 거래되던 것과 비교해 3월 30일 기준 약 24% 오른 톤당 1791.5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월 톤당 39달러까지 하락하며 2011년 고점 대비(톤당 191달러) 5분의 1 가격까지 떨어졌던 철광석도 지난 3월 25일 기준으로 톤당 56달러에 거래됐다.

원유·비철·철에 비해 농산물은 아직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기상 악재 등에 취약한 데다 미국과 남미 등의 공급과잉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옥수수는 지난 1월 4일 부셸당 351.50센트에 거래되던 것이 3월 29일엔 373센트에 거래를 마감했고 커피는 지난 1월 20일 기준 파운드당 111.60센트에서 3월 22일엔 134.65센트까지 올랐다.
‘원자재 바닥론’ 새로운슈퍼사이클의 초입인가
◆20년 주기로 움직이는 원자재 시장

안전 자산의 성격이 강한 금도 지난해 12월 이후 상승세다. 2015년 12월 30일 기준 온스당 1160.10달러로 저점을 찍은 금은 지난 3월 10일 1272달러까지 올랐다. 온스당 1220달러에서 1230달러 사이에서 가격대가 움직이며 3월 30일엔 1226.90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소폭이지만 일부 원자재 가격의 그래프가 U자 형태로 돌아서는 기미가 보이자 시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바닥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7일 ‘지금이 해외 자원 개발 투자 확대의 적기’라는 보고서에서 자체적으로 분석한 ‘세계 원자재 가격 사이클’에 따라 2016년인 올해 원자재 가격이 바닥을 지날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2011년 고점을 찍은 사이클이 2016년 바닥에 거의 다다른 것으로 분석된다”며 “적어도 원자재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회복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시장에 ‘새로운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배경이다.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대략 20년 주기로 일정한 패턴을 갖고 움직이는 글로벌 원자재의 가격 곡선을 말한다.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정점을 찍은 후 하락해 최저점에서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보인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글로벌 원자재 가격은 2010년 무렵까지 대략 10여 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배럴당 30달러를 밑돌던 WTI 가격은 2008년 7월 140달러대로 최고가를 찍었다. 2014년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WTI 가격은 무서운 기세로 급락을 시작해 올해 2월엔 3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시기 다른 원자재 가격들 역시 상품에 따라 약간의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상당히 유사한 흐름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20년 주기의 사이클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슈퍼사이클’이라고 하면 2000년대 초반 이후 2010년 무렵까지 이어진 가격 상승기를 일컫는다. 2010년 이후 원자재 가격 급락기를 이와 대비되는 ‘슈퍼 다운 사이클’이라고 말한다.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무게가 실리고 있는 ‘원자재 가격 바닥론’에 따르면 바로 이 슈퍼 다운 사이클이 끝자락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글로벌 경기의 흐름이다. 역사상 슈퍼사이클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글로벌 경기와 원자재 가격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3년에 원자재 슈퍼사이클이라는 용어가 첫 등장하던 무렵 글로벌 증시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골디락스(고성장·저물가)의 시기가 일치하는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특히 원자재는 대부분이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를 띨수록 원자재는 약세를 띠는 경향이 강하다. 달러 강세는 그만큼 원자재 거래 가격의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금은 안전 자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글로벌 경기의 불안정성이 강할수록 금값은 상승세를 띠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2000년 이후 원자재 가격의 상승기를 이끌었던 가장 큰 동력은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2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지속하며 건설·부동산 경기를 비롯해 산업 전반을 크게 확장해 나갔다.

실제로 2007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4.2%에 달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원유·구리·금 등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원자재 블랙홀’로 불렸다. 원자재 수요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그만큼 이른 시간 안에 글로벌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2010년 이후 원자재 가격의 폭락을 이끈 것 역시 중국이었다. 고도의 성장을 지속하던 중국의 성장률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수요가 축소됐다. 이와 맞물려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기를 맞은 것이다.

◆“공급과잉은 해결될 문제”

향후 원자재 시장을 예측하는 데 ‘중국’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원자재 시장의 슈퍼사이클이 다시 도래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공급과잉의 해결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글로벌 재고다.

대표적으로 구리는 런던금속거래소(LME)가 승인한 재고가 18만6700톤으로 올 들어 21% 줄어들었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 업체 글렌코어의 구리 감산 정책 등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구리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의 극심한 폭락으로 비철·철·원유·금 등 글로벌 원자재 생산 업체들의 감산 발표가 이어지는 중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적어도 공급 측면에서는 더 이상 원자재 가격 하락을 이끌 만한 요인이 줄어들고 있다”며 “기대하는 것만큼 이른 시기가 아닐 수는 있어도 공급과잉은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의 분석을 들어 부연 설명했다.

버냉키 전 의장에 따르면 폭락한 원자재 가격의 45%는 수요 부족에 따른 것이고 55%는 공급과잉에 따른 것이다. 공급과잉이 해결된다면 적어도 현재까지의 원자재 가격 낙폭 중 55%는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WTI는 2011년 대비 배럴당 100달러에서 30달러까지 대략 70달러 빠졌다. 이 70달러의 낙폭 중 55%인 35~40달러 정도 회복할 것으로 가정하면 향후 유가가 70달러 선까지는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원자재 공급과잉이 조정기에 접어들며 원자재 시장의 회복세가 완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랠리(하락한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현상)’를 이끌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황병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적어도 올해는 지나야 원자재 가격이 슈퍼 사이클을 다시 맞을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슈퍼사이클을 위해서는 수요가 그만큼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우선 중국이 경제성장률 6.5%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등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서 강력한 ‘정책 패키지’를 실시하며 수요 확대에 기대감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중국 부동산 시장의 더블딥(이중 침체)을 비롯해 여전히 위험 요소가 적지 않다. 중국의 경제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구세주로 각광받고 있는 시장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향후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2010년대와 같은 슈퍼사이클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다만 현재로서는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감보다 원자재 가격이 바닥에 다다랐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원자재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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