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청년 장사꾼' 가게 7개 동시 오픈…2년 새 임차료 40% 상승

[상권 19] 2년 만에 새 가게 20여곳, 열정으로 꽃피운 '신흥 상권'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이해인, 주재익 인턴기자 ] 어찌 보면 ‘무모한 실험’이었다. 가진 것 없는 ‘장사꾼’들에게 거대 상권에 창업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엄청난 임차료를 감당할 자금이 없었다.

그렇다고 임차료가 싼 곳을 골라 아무데서나 장사를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에겐 장사 밑천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이들은 고심 끝에 어려운 선택을 했다.

“크고 좋은 상권에 들어갈 수 없다면 우리 손으로 새로운 상권을 개척하자.”

2014년 11월 용산구 원효로 1가 200m 정도의 좁은 골목길, 청년장사꾼이 주축이 된 ‘열정도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20~30대의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청년장사꾼’은 일종의 외식 전문 업체다.

종로구 금천교시장에서 유명세를 탄 ‘감자집(구 열정감자)’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시내에 9개의 외식업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중 절반 이상이 바로 이 열정도에 자리해 있다. 2014년 11월 25일 고깃집·감자집·치킨집 등 7개의 가게를 동시에 오픈했다. 지금은 5개의 가게를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김연석 청년장사꿈 공동대표와 직원들 스스로도 ‘과연 이게 될까’ 하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이 좁은 골목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을씨년스럽던 거리가 환해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를 따라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평범한 골목길이었던 이곳에 ‘열정도’라는 새로운 이름의 상권이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쇄 단지, '신흥 상권'으로 변신

지하철 1호선 남영역과 4호선 삼각지역, 6호선 효창공원앞역 사이 삼각형 모양의 블록이 눈에 띈다. 주변에는 용산 KCC 웰츠타워 아파트, 이안용산아파트, 이안용산프리미어, 용산더프라임 등 고층 주상복합 건물과 오피스 빌딩이 들어서 있다.

그 한가운데 유독 낮게 움푹 파인 이 삼각형의 블록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목이었다. 오래전부터 인쇄소들이 모여 있어 ‘인쇄 공장 단지’로 불렸다. 지금도 삼호인쇄마스타$유니크기획인쇄 등 활발하게 영업 중인 인쇄 업체들이 적지 않다.

낮 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인쇄 공장들이 문을 닫는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라진 적막한 골목으로 변했다.

유독 1970~1980년대의 건물이 많은 것도 을씨년스러움을 더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용산 지역에 한바탕 재개발 바람이 훑고 지나가면서 주변에는 고층 빌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쇄 공장 단지는 소문만 무성할 뿐 재개발이 계속 지연됐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했던 건물들은 방치됐다. 기존에 있던 인쇄소들도 파주 출판단지로 옮겨가면서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마치 고층 빌딩 사이 ‘섬’과 같은 모양새를 띠게 됐다. 오래된 건물과 어두운 분위기,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 이곳은 누가 봐도 ‘장사를 시작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장사꾼이 이 지역을 새로운 ‘실험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먼저 인근의 오피스 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 거주자들이 있어 배후 수요가 탄탄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2014년 4월 완공된 용산더프라임만 해도 3개의 주거 동과 1개의 오피스 동으로 이뤄져 있다. 오피스동 건물에만 30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한다. 주상복합 아파트인 리첸시아 용산은 1층 상가, 2~4층 오피스텔, 그 위로는 주거 시설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5개 층에 총 70개가 넘는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들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은 임차료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리첸시아 용산은 실평수 46.2㎡(14평) 기준 전셋값이 2억9000만원 정도다. 바로 옆의 KCC웰츠타워는 실평수 59.4㎡(18평) 기준 전셋값이 4억3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만큼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는 구매력 높은 소비층을 배후 수요로 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입지 조건과 저렴한 임차료는 자본금이 부족한 청년장사꾼에겐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청년장사꾼이 이곳에 들어왔던 2014년만 해도 상가 임차료가 33㎡(10평) 기준 50만~70만원 수준이었다.

권리금은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보증금은 600만~800만원 안팎이었다. 재개발로 공동화가 심화된 곳이다 보니 공실 또한 적지 않았다. 청년장사꾼이 한 번에 7개의 가게를 계약하고 오픈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통행인이 많지 않은 길이어서 처음부터 고객을 새로 불러 모아야 하는 게 문제였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맞춰 가게마다 독특한 개성을 살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홍보하면 인근 직장인과 거주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청년장사꾼은 ‘열정도 프로젝트’ 이전에도 상권의 메인 입지보다 주로 외곽에 가게를 열어 똑같은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상권 19] 2년 만에 새 가게 20여곳, 열정으로 꽃피운 '신흥 상권'
◆'열정도 문화'로 홍보 효과 쏠쏠

‘열정도’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타게 된 데는 청년장사꾼의 기획이 큰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열정도 상권을 ‘청년장사꾼의 독무대’로 생각하면 큰 오해다. 실제로도 청년장사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게들이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삼겹살 전문점인 일공오삼겹살과 맥주전문점 붐박스 등이 대표적이다. 일공오삼겹살은 청년장사꾼보다 앞서 2014년 7월 문을 열었고 붐박스는 청년장사꾼과 비슷한 시기에 창업 준비를 시작해 2015년 1월 가게를 오픈했다.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여러 매장이 새롭게 문을 연 것도 ‘열정도 상권’이 유명세를 타는 데 한몫했다. 아무리 숨어 있는 ‘좋은 목’을 찾아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상권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7개의 가게를 동시에 오픈한 청년장사꾼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가게가 영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북적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먼저 인근 직장인들과 거주민들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15개 매장이 열정도에 더 들어섰다.

물론 가게 숫자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입소문이 나는 것은 아니다. 김연석 대표와 직원들은 처음 ‘열정도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부터 신흥 상권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도 같이 따라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곳에 ‘열정도’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그 이름에 걸맞게 7개의 가게마다 ‘젊음과 청춘, 열정’이 묻어나는 공통된 문화를 담은 것은 그 때문이다.

‘열정도 쭈꾸미집’에는 가게 이름이 적힌 간판 대신 ‘쭈꾸미 팔아 장가가자’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치킨사우나’ 매장은 ‘1인1닭 실천하자’는 재기발랄한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큰 소리로 고객을 맞는다. 그 옆의 ‘열정도 고깃집’은 ‘봄노래를 불러드리면 서비스를 드리지요~!’라는 안내판이 고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어떤 곳을 가든 ‘열정을 만나면 정열이 솟는다’ 같은 젊음과 열정을 담은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청년장사꾼이 운영하는 감자집의 박청미 점장은 “열정도를 통해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문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며 “고객들에게 씩씩하고 열정 넘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열정도 내의 다른 가게들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는 상권에 도전장을 내민 가게들이다 보니 굳이 청년장사꾼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독특한 개성’과 ‘열정’으로 무장한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커다란 스피커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형부터 눈길을 끄는 ‘붐 박스’, 1970~1980년대 건물을 그대로 살린 채 투박한 나무 간판을 걸어놓고 떡볶이와 오뎅탕 등을 판매하는 ‘다방구’, 삼겹살 등 한식 안주에 저렴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포차 ‘한잔 차차’ 등이다.

밥집과 주점이 대부분인 열정도 이지만 골목 사이사이에 ‘앨리43’과 ‘걸앤드더씨’같은 의류 매장도 눈에 띈다.
[상권 19] 2년 만에 새 가게 20여곳, 열정으로 꽃피운 '신흥 상권'
◆“상권 개척,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함께 만들어 가는 열정도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열리는 ‘열정도 야시장’이다. 애초 홍보를 위해 청년장사꾼이 기획했지만 청년장사꾼만 참여하는 행사는 아니다. 푸드트럭, 액세서리, 의류$소품 잡화, 독립 출판물 등 30여 개 팀이 참여한다.

보통 4000~5000명 정도가 열정도 야시장을 찾는다. 야시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화려한 비디오 아트와 함께 흥겨운 DJ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벌써 1년 넘게 꾸준히 야시장을 열다 보니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열정도를 찾는 손님들에게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열정도 야시장이 이곳 상인들 공동의 행사로 자리 잡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반상회’도 만들어졌다. 청년장사꾼 외에 열정도 내의 상인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는 열정도 상권을 발전시키기 위한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오고간다.

앨리43 관계자는 “창업자들 대부분이 젊다 보니 자주 모여 소통하는 편”이라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고 무엇보다 젊은 기운을 불어넣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상권 19] 2년 만에 새 가게 20여곳, 열정으로 꽃피운 '신흥 상권'
올해로 2년째에 접어든 ‘열정도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다. 하지만 새로운 고민거리도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임차료다. 열정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들어 시세가 상승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33㎡) 기준으로 보증금 1200만~1400만원, 월세 100만~120만원이다. 청년장사꾼이 들어올 때와 비교해 40~50% 오른 셈이다. 재개발 지역인 때문에 여전히 서울 시내에서는 임차료가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임대 계약서상에 ‘특약’이 많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열정도 내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재개발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주인이 나가라면 가게를 비워 줘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며 “아직은 그런 곳이 없지만 앞으로 열정도가 더 뜨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늘었지만 몇몇 가게에 집중되다 보니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기존 상인들 중에서는 임차료만 들썩이고 실제 손님은 별로 늘지 않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청년장사꾼이 운영하는 열정도 쭈꾸미의 김운석 점장은 “기존 주민들의 불편한 마음을 잘 안다”며 “일부러 기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밝게 인사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상권을 키우려면 지역 주민들과 화합하며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초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상권을 확장할 여지가 적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더구나 열정도는 이태원$숙대입구 등 대형 상권과 인접해 있어 이들 상권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열정도의 미래에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그만큼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없는 상권을 개척’하는 것은 성취감은 크지만 기존의 안정된 상권에 들어가는 것보다 2~3배의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다. 일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인 셈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최근 들어 장진우거리 등 하나의 브랜드가 골목 전체를 장악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양질의 콘텐츠가 뒷받침된다면 시도해 볼만하긴 하지만 초보 창업자들이 이 같은 상권에 도전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흔 기자. 이해인, 주재익 인턴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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