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결제만 써도 불편 없어…한은 ‘동전 없는 사회’ 시동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미 유럽 일부 국가는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한국은행 역시 최근 발표한 ‘2015년도 지급 결제 보고서’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의 전초인 ‘동전 없는 사회’를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한 달 106만원 사용…현금 지출 ‘0원’
현금을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한 달을 생활할 수 있을까. 올해 3월 25일부터 4월 24일까지 한 달간 현금은 물론 실물 마그네틱 신용카드 없이 미혼인 기자가 생활해 봤다. 결제 지불 방법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삼성페이’만 이용했다.
‘현금 없는 삶’은 오전 7시 출근길부터 시작됐다. 스마트폰에 포함된 교통카드 기능으로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지불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오전 시간,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면서 모바일 결제를 이용했다.
점심 식사는 스마트폰도 필요 없었다. 전자 사원증을 통해 구내식당에 들어갔다. 이용 횟수에 따라 매달 월급에서 금액이 공제된다. 외부 식당을 이용할 때도 스마트폰은 현금을 대신했다.
점심 식사 후 동료들과 마신 커피도, 저녁 자리의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데도 현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택시 이용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대형 마트를 이용할 때도, 주유소와 헤어숍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했다.
일상적 지출을 모두 삼성페이로 했지만 누구도 현금 지급을 종용하지 않았다. 결제가 되지 않거나 오류가 발생한 적도 없었다. 이미 나이가 지긋한 식당 주인들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결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 달을 지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확히 106만원을 사용했다. 현금은 100원도 지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 대신 오히려 편리함이 더 컸다.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고 신용카드 분실 사고 등의 스트레스에서도 자유로웠다. 지문을 통한 결제 방식을 이용했기에 보안성은 오히려 높았다.
게다가 사용한 금액은 자동으로 지출 관리 애플리케이션(앱)에 정리됐다. 한 달간 어디서,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어 씀씀이를 조절하기도 편했다. ◆거스름돈, 동전 대신 포인트로
이처럼 우리는 이미 현금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한국은행도 차츰 현금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먼저 한은은 ‘동전 없는 사회’를 통해 동전 발행과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생각이다. 매년 1300억원 정도의 금액을 동전으로 생산하면서 제조비용만 500억원, 파손된 동전을 폐기하는 비용만 100억원이 지출된다.
한은이 꿈꾸는 동전 없는 사회는 이렇다. 예를 들어 500원짜리 껌 한 통을 구입한 뒤 1000원을 내고 남는 거스름돈 500원을 지금의 동전이 아닌 다른 수단, 즉 카드 포인트나 마일리지, 전자화폐 등으로 거슬러 주는 방식이다.
물론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동전으로 받을 수도 있다. 한은의 계획대로 동전 없는 사회가 자리 잡는다면 이후 ‘현금 없는 사회’가 온다.
한은이 2015년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지갑 속에 보유한 현금은 7만4000원으로 2014년보다 3000원 줄었다. 또 지난해 이미 신용카드(39.7%) 사용 비율이 현금(36%) 사용 비율을 추월했다.
한은의 ‘2015년 지급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2014년 4분기 4조9000억원에서 2015년 4분기 7조4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모바일 뱅킹 이용 건수도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31만 건으로, 전년 대비 29% 늘어났다.
점차 현금 사용이 줄면서 국내 은행들은 현금입출금기(ATM·CD) 숫자와 지점을 축소하고 있다. KB국민·신한·IBK기업은행 등 13곳의 시중 은행 ATM·CD기는 2014년 4만6056개에서 2015년 4만5556개로 500개 줄었다.
같은 기간 지점과 영업소 등도 6055곳에서 5890곳으로 165곳 감소했다. 대부분의 은행 업무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가능해졌고 대당 수천만원에 이르는 ATM·CD기의 유지 관리비도 감소했다.
이미 일부 유럽 국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 만들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2015년 프랑스 정부는 3000유로(약 400만원) 이상의 현금 거래를 법적으로 금지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은 최대 500만원 이상 거래 시 반드시 계좌 이체를 이용하도록 정했다.
앞서 이스라엘도 2014년 기업 간 현금 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특히 ‘기업 간 거래(B2B)’에서 현금은 7500셰켈(약 210만원)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마저도 지난해 5월부터는 5000셰켈(약 140만원)로 강화했다. 스웨덴은 이미 전체 소비 비율 중 현금 거래 비율이 20%에 불과할 정도로 신용카드 등의 사용 비율이 높다.
한편 한은 관계자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아직은 이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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