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산책 : 히틀러의 야심 눈치채지 못한 순진한 영국 총리들}
어리석음이 ‘악당’을 키운다
(일러스트 김호식)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역사는 반복된다. 단, 어리석은 민족에게는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되고 슬기로운 민족에게는 그것을 통해 반성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찾아낸다.

미래 의제를 뽑아내느냐 아니면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그냥 현실에서의 작은 잇속에 갇혀 사느냐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가 될 뿐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전광석화처럼 폴란드를 침공했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폴란드를 점령할 속셈이었고 준비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폴란드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속이 타는 것은 소련이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소련으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만약 독일이 그 기세를 몰아 소련을 침공하면 어떻게 할까. 이오시프 스탈린은 영국·프랑스와 함께 대독동맹을 원했다. 하지만 스탈린의 조바심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했다.

그런 상황에서 체코 사태를 지켜본 스탈린은 체코와의 상호방위조약에 소련도 포함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소련과 어떤 협의도 없이 체코를 포기했다며 서방측의 유화정책을 맹비난했다.

그는 나치 독일의 침략에 공동 대응할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동안 소련이 보여준 행보에 대해 극도로 불신했고 특별히 공산주의 팽창을 경계하던 영국은 스탈린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태도에 의심을 품은 스탈린은 차라리 히틀러와 손잡는 편을 선택했다. 스탈린으로서는 내심 눈독을 들이던 폴란드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1939년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은 그렇게 체결된 것이었다. 히틀러로서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을 것이다. 양쪽 전선에서 적을 대항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벗어난 히틀러는 마음 놓고 폴란드를 유린했다. 결국 유럽 전역으로 전쟁이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보수당 지도부의 무능함은 당시 영국의 전쟁 회피 요구와 평화주의 정서에 토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재무장을 하기에는 이미 당시의 영국의 경제력이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대양 육대주를 제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며 대영제국의 영광을 과시하던 처지는 과거지사가 되고 있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국은 전쟁이 엄청난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후유증을 겪으면서 가능한 한 전쟁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를 공유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유화책으로 독일의 재무장 기회 줘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미증유의 황폐함을 겪어야 했다. 승전국인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의 군인만 50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프랑스에서는 20~35세 남자 가운데 31%가 죽었고 독일은 24%, 영국은 17%, 이탈리아는 12%가 죽었다.

민간인 사상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전쟁 전 인구가 180만 명이었는데 전쟁 중 120만 명이 전사 혹은 학살됐다.

패전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승전국으로서도 쏟아부은 전쟁 비용과 인명 손실이 너무 가혹했다. 그에 비해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이전의 전쟁처럼 영토를 빼앗은 것도 아니고(물론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되찾았지만) 기껏해야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을 응징하고 패배의 뼈아픈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다시는 엉뚱한 꿈을 꾸지 못하게 응징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패착은 스탠리 볼드윈과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히틀러가 자신들과 전혀 유형이 다른 악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의 유화정책은 전쟁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못한 영국으로서는 시간을 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판단이다. 실제로 시간을 끌어 유리해진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아직은 상대적으로 형편없이 약체였던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점령지에서 외화·연료·원료 등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군비를 강화할 수 있었다.

사실 독일의 침략과 팽창의 연속적 행위는 그렇게 해야만 독일의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과 조건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다.

결국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재무장의 기회와 시간뿐만 아니라 자금까지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영국이 준비되지 않은 것보다 독일이 훨씬 더 형편없었다는 것을 냉철하게 판단했다면 결코 그런 유화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분별력을 흐리게 한 셈이다.

히틀러는 상대의 그런 약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치밀하게 계산하고 정보를 바탕으로 도박을 감행했으며 그것이 통했다.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정확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악당은 언제나 출현할 수 있다. 그 악당이 설치게 만드는 것은 주변의 바보들이다. 정확하게 판단하면 악당은 설 곳이 없다.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유화정책을 택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치밀한 외교 전략이나 전술을 세워야 한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정하고 인식해야 하며 그에 다른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