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찾다 젊음 흘려보낼 건가}
[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젊음과 불안감은 샴쌍둥이처럼 한 몸
(일러스트=김호식)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갈 일이 있다. 캠퍼스 이곳저곳에서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학생들을 보면 그들의 젊음과 자유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번은 명문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대학 생활을 즐거워하죠? 명문대에 다니고 정치·경제적 상황도 이전과 다르니 우리와 다르게 대학 생활을 즐길 것 같은데.”

“웬걸요. 불만이 많아요. 불안해하고요. 좋은 대학에 다닌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서 그런지 그리 마음이 편한 것 같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불안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경제적 궁핍에다 군부독재가 절정을 이뤘던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은 젊은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의 불안은 정치경제적 상황 같은 외부의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준비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만족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불안은 늘 필자의 주위를 서성였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시작한 일이니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과연 이 길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이고 가야 하는 길인가” 하는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정됐다’고 생각한 순간은 이미 중년

가끔씩 다시 필자가 그 시절에 있다면 ‘이렇게 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곤 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떨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불안감은 늘 필자를 괴롭혔다.

젊음과 불안정은 마치 샴쌍둥이처럼 분리가 불가능한 개념이다. 젊음의 속성은 변화인데 변화는 기본적으로 안정과 배치된다. 변화와 안정은 태생적으로 동거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삶이 안정됐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젊은 시절을 지나 중년에 접어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봄과 같다. 봄은 늘 바람과 함께 온다. 그래서 볕은 따뜻하지만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다. 바람은 얇아진 옷깃을 여미게 만들면서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 감기가 제일 심할 때도 봄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놈의 바람만 없으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바람이 사라지면 봄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어느새 한여름인 것이다.

◆젊음은 수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어

많은 젊은이들이 불안감에 힘들어 한다. 서른이 훌쩍 넘어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데도 이뤄 놓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직무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대로 직장 생활을 계속한다면 10년 뒤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직장을 구했다면 다행이다.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은 더 심각하다. ‘이 얼어붙은 고용 시장에서 자신을 받아 줄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안정을 원한다. 빨리 직장을 잡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이른바 ‘안정 신드롬’이다. 하지만 안정이 꼭 좋은 것일까.

안정은 변화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젊음이 가고 기회가 없어지고 가능성이 닫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열차에 올라탔으니 안심은 되지만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서만 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내 답답해지고 만다. 중년들이 그렇게 지루해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설렘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답은 분명하다. 봄을 즐기려면 바람을 감수해야 한다. 바람 없는 봄은 봄이 아니라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다. 마찬가지로 불안이 사라져 버린 젊음은 이미 중년이다. 젊음의 불안은 봄의 바람처럼 태생적인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기회에 동반하는 불안정을 여유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급하게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젊다는 것의 가장 큰 강점은 실패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실패하면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년의 실패는 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실패는 금방 회복된다. 그러니 도전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 젊을수록 갖고 있는 카드가 많다. 따라서 어떤 카드가 통하지 않으면 다른 카드를 쓰면 된다.

가끔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는 젊은이들을 본다. ‘혹시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서 앉은뱅이처럼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도전해 보라”고 권한다. “걱정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강요하다시피 말한다.

“성공할 수 있어. 넌 충분히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 설령 실패한들 어떠니. 너는 젊잖아? 앞으로도 기회가 많아. 더구나 이번에 실패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야. 실패해도 너는 얻는 게 더 많을 거야. 일을 해나가다 보면 지금 네가 갖고 있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바뀔 가능성이 커. 누구든지 네가 시도하는 것을 성공과 실패로 잘라 말하기 어려워. 그냥 네 삶을 사는 것이고 삶을 바꾸는 것일 뿐이야.”

◆움켜쥔 것을 놓아야 더 넓은 세상에 간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걱정한다. 30대 초·중반이라고 해 봐야 쌓아 놓은 게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것을 잃을까봐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쌓아 온 경력과 경험과 지식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세상을 더 살아본 어른들의 시각에서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움켜쥔 것을 놓아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참 많은데 왜 그리 답답하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려고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너무 안정만을 희구하고 안정에 목매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애늙은이처럼 바람이 성가시고 불편하다며 방구석에 처박혀 다시 오지 않을 찬란한 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봄을 맞기도 전에 이미 오지도 않은 여름을 생각하며 벌써부터 지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흘려보내기에 30대는 너무 젊다. 젊은이들이여, 화창한 봄의 한가운데에서 지쳐 버린 중늙은이처럼 지내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람을 맞고 나서야 한다. 그래야 신선하고 따사로운 햇볕과 화사한 봄꽃을 즐길 수 있다. 지루한 여름이나 안정된 중년은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오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