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몇 해 전 사토 요시히로와 유모토 겐지가 쓴 ‘스웨덴 패러독스’라는 책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스웨덴 패러독스는 복지 지출과 조세 부담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함으로써 복지-재정-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달성한 것을 의미하는데, 최근 한국에서 재정 건전성 회복의 성공적 사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은 1991년부터 3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기 부양과 복지를 위한 정부 지출 증가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훼손돼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이 1992년 마이너스 8.9%, 1993년 마이너스 11.2%까지 악화됐다.
1994년 재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2% 이내에서 유지하도록 하는 강력한 재정 준칙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명목 지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통제했다. 지방정부도 재정 적자 발생 시 2년 이내에 흑자 달성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삭감했다.
또한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의 소득 보장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지급하는 사회수당식 기초연금과 전통적인 공적연금을 과감히 폐지하고 그 대신 연금제도를 기여한 만큼 지급하는 명목 확정 기여 방식(NDC : Notional Defined Contribution)으로 전환해 새로운 소득 비례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연금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래 사회보장 급여 지출의 현재 가치가 사회보장기금 적립금의 현재 가치를 초과하면 현재 급여 지급액을 삭감하는 자동 안정화 장치도 도입했다. 스웨덴은 이러한 개혁을 통해 1998년부터 재정수지가 흑자로 전환됐고 초고령사회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는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만들어 냈다.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재정건전화 특별법’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통해 중앙정부의 채무 한도를 정해 정부 부채를 엄격히 관리하고 새로 돈이 들어가는 법률을 만들 때 그 돈을 어떻게 조달할지 명시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재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부담과 혜택을 적정하게 재설계할 계획이다.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스웨덴은 이러한 개혁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노동 의욕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한 점을 들 수 있다.
단순한 실업수당 지급에 그치지 않고 전직을 위한 적극적인 직업훈련과 직업 소개를 통해 성장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이 원활히 공급되게 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담보하면서 동시에 취업률을 높이고 산업구조도 전환되게 만들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웨덴의 복지 관련 국민 부담률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복지가 일부 부유층에 대한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낸 세금으로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거의 없다.
이 점이 우리 상황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방향 설정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이유다. 자신이 낸 세금이 자기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주지 못하는 한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은 가장 나중에, 최소로 하고 싶다’는 눔프(NOOMP : Not Out Of My Pocket) 현상이 줄어들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될 수는 없지만 노동시장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퍼 주기식이 아닌 ‘투자형 복지 지출’로 가야 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러한 혜택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 재정 건전성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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