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리며 우선순위를 정해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을 구분한 뒤 한곳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전략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유능한 경영자들은 잘할 수 있는 것과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효율이 낮은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버리기 아까운 것이라면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잘하는 곳과 협력하거나 아웃소싱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해도 선택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선택과 집중은 경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통하는 원리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수많은 관심사에 역량을 분산하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 자원과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세상의 이치, 역사적·과학적으로 수없이 검증된 원리를 우리는 왜 따르지 않고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선택은 했지만 집중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름 과일 중에서 수박을 좋아한다. 해마다 수박철이 되면 대형 마트에서 10kg이 넘는 큰 수박을 두세 통씩 사오곤 한다. 이렇게나 좋아하다 보니 수박을 직접 재배하고 싶어져 지난해 밭을 빌려 묘목을 예닐곱 포기 심었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많은 수박이 열렸다. 그런데 크기가 기껏해야 어린 아이들 머리통 만해 내가 상상했던 그런 수박이 아니었다. [일러스트 김호식]
◆선택과 집중은 성공의 원리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솎아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큰 수박을 얻으려면 수박 한 포기에 줄기를 두세 개만 남기고 다 잘라내야 한다. 각 줄기마다 한 개의 열매만 열리게 만든다. 또 수많은 줄기와 꽃들을 냉정하게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뿌리를 통해 빨아들이는 양분과 잎을 통해 받는 태양 에너지가 온통 두세 통의 수박에 모인다. 물론 수박을 크게 만들려면 땅에 거름도 많이 줘야 하고 물비료도 자주 뿌려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박이 많이 열려 양분이 분산되면 절대 커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농사는 포기의 기술이다.
어떤 일이든 집중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포기가 동반돼야 한다. 선택만 한다고 집중되는 게 아니다. 선택은 시작일 뿐이다. 집중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지 선택하기 위해 집중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한정된 역량을 선택한 곳에 모으려면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얼마나 포기하고 희생하느냐에 따라 선택한 것에 대한 몰입 강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포기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아깝다. 기회를 버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동안 쏟은 관심과 노력, 들어간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경영학에 ‘매몰 비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종종 사업이 경쟁력을 잃고 전망이 불투명한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 매몰 비용 때문일 때가 많다. 이런 능력도 있고 저런 재주도 있는데,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붙잡고 싶은데, 이리저리 들인 시간과 돈이 얼만데 하나만 남기고 다 버리라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포기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아깝고 아쉽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기는 상당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잘못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변하면 지금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것에 매달리다가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포기하고 한 우물만 파다가 위기를 맞는 것은 아닐까. 이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포기하려면 상당한 용기를 내야 한다.
2016년 3월 개봉된 모홍진 감독의 ‘널 기다리며’는 개봉 전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 이어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스릴러 영화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심은경·김성오·윤제문 등 중량급 배우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널 기다리며’는 개봉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아쉬워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많은 캐릭터들의 연결 고리였다.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범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잘 빚어 놓은 캐릭터와 촘촘하게 엮은 초반 플롯이 중반에 들어서면서 위력을 잃고 말았다. 소녀와 살인범 외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바람에 핵심 구도가 흔들린 것이다. 모 감독은 아마도 빤하게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에 비해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추격자’는 흥행에 성공해 한국 스릴러의 대명사가 됐다. 그 요인 중 하나는 이야기의 핵심 구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격자는 이야기가 단순하다.
나 감독은 이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흥행 영화를 만들어 냈다. 평론가들이 그의 연출에 찬사를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살인범과 추격자의 대립 구도를 놓지 않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조금씩 이야기의 중심에 끌어다 놓는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오로지 핵심 인물에만 집중했다. 나 감독 역시 빤하게 가지 않겠다는 생각, 그래서 이것저것 안전판을 깔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핵심 구도에만 집중했다.
포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 포기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큰 수박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줄기와 꽃을 솎아내야 한다. 그런데 수박은 번식력이 워낙 강해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줄기가 뻗고 꽃이 핀다. 따라서 잠시 한눈을 팔면 줄기가 길게 뻗고 마디마다 새로운 열매가 계속 매달린다.
◆확실히 버려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직업과 직장, 직무를 선택할 때 집중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 결심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변하면서 새로 관심을 끄는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모질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런저런 이유들로 선택한 것들이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가고 만다.
끊임없이 버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선택한 것을 유지해 내기 어렵다. 선택과 집중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는데 경우에 따라 그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다른 선택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고 있지만 선택한 것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속성과 일관성의 부족이 선택과 집중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포기가 이렇게 어렵다 보니 선택한 것에 당연히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이 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하면서 남는 시간과 여력을 다른 곳에 쓰기도 한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이 투입하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쏟아부어야 한다. 넘쳐흘러내려도 좋고 지나쳐서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좋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야 한다. 그래야 어설픈 전문가를 넘어 탁월한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고 경쟁자와 격차를 벌릴 수 있다.
이렇듯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십중팔구 제대로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과는 선택이 아니라 포기해 집중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거둔 성공은 단순히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가 아니라 혹독한 포기의 대가였다.
잘 아는 것처럼 한국 여성 골퍼들이 미국 프로여자골프협회(LPGA)가 주최하는 골프 대회를 독식하는 것은 온갖 즐거움을 포기하고 피나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여성 골퍼는 한국 여성 골퍼들이 밥 먹고 연습만 한다며 ‘스윙 머신’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좋다, 나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전자는 각자 타고난 특성일 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유전자는 없다. 따라서 타고난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유전자는 고정불변의 유산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어떤 유전자가 내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걸 찾아 집중하고 나머지를 포기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한정된 시간과 관심을 여러 곳에 분산해 평범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를 결연하게 포기해 최고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다 포기하고 하나에 집중해 키울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수 없으니 크게 키우는 것을 포기할 것인지 역시 선택할 문제다.
◆‘자기 확신’이 포기를 가능하게 한다
로버트 J.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지능의 결정적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혜는 무시해도 될 일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이것저것 할 것 다하고 놀 것 다 놀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없다. 다재다능한 사람 치고 크게 성공하는 이는 드물다. 시장에 항상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만능가와 한 분야에서만 강점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승리는 언제나 전문가의 것이었다.
선택과 집중, 포기와 집중은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이 없으면 일과 공간과 사람과 운명을 선택하기 어렵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만이 혹독한 포기의 과정을 이겨내고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을 위해 상당히 좋은 것을 버리는 사람, 한 가지 탁월한 것을 위해 수십, 수백 가지의 훌륭한 것을 버리는 사람, 내가 이룬 것 이상으로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각 분야의 선수가 되고 그들에 의해 사회는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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