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인구 감소가 폐업 행렬로 이어져…상속·증여세도 부담}
'흑자 폐업' 일본 기업 연간 3만 곳 달해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의 폐업 추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 정부로선 꽤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문제는 고용과 내수에 직결되는 중소기업의 폐업 통계다. 전체 사업체의 99.7%가 중소기업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이후 복합 불황 때조차 지키려고 노력했던 장기·숙련 축적의 첨단 기술 중 상당 부분이 중소기업 몫이란 점에서 위기감이 높다.

◆건실한 흑자 기업도 폐업 잇따라

일본 기업의 2015년 도산 건수는 10년 만에 9000건을 넘겼다.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 등 비전통적인 금융 완화까지 결단, 경기 회복에 사활을 건 정부의 의지를 무색하게 하는 불황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유동성을 늘려 환율을 끌어올림으로써 시중에 돈을 돌리려는 경기 부양의 온기가 수출·대기업에만 쏠릴 것이란 지적이 힘을 얻는다.

역으로 내수·중소기업의 엔저 충격은 구체화된다. 엔저 유도로 내수 물가(수입 물가)가 높아졌지만 낙수효과의 단절로 임금 인상이 거의 없어 내수 부문의 소비 증가는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소비 증세에 따른 핍박 소비도 내수 불황의 원인이다.

주목되는 것은 폐업 이유다. 그중엔 흑자 경영의 건전 기업도 많다. 산업 연관 효과의 부정적인 흐름을 감안할 때 한 회사의 폐업은 연쇄적으로 관련 기업의 줄도산을 부른다. 사회적으로는 지역 경제의 동반 침몰을 야기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된다.

소수의 폐업 결정이 실업 증대, 소비 감소, 세수 하락 등의 연쇄 사슬을 거쳐 종국엔 지역사회 전체를 불황 한파로 내모는 구조다.

NHK의 인기 방송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는 최근 흑자 중소기업의 도산 사태를 방송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례로 취재에 응한 나고야의 분필 회사(하고로모문구)를 보자. 고품질로 유명한 분필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며 명성을 얻은 회사였지만 2013년 폐업했다.

82년의 역사를 지닌 중소기업이 2대 사장의 병환을 계기로 결국 사업을 접었다. 이에 따라 40년 이상 개량을 반복해 만들어 낸 잘 부러지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써지는 세계 유일의 혁신적인 분필의 생산이 중단됐다.

◆가업을 이어받을 승계인구 감소

흑자 폐업은 중소기업이 장기간 고민 중인 사업 승계 이슈와 맞물린다. 물려줄 후계가 없어 흑자 기업인데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중소기업계의 고질적인 주제다.

크지는 않지만 엄연히 돈을 버는 데도 회사를 접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인구 변화다. 출산 감소가 심화되면서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아 가업을 유지하려는 승계 인구가 줄어든 때문이다.

후속 세대의 인식 변화로 전통을 고수하는 불가피한 선택 대신 가업과 무관한 본인 위주의 생애 모델을 실현하려는 의지도 한몫했다. 한편에선 경영에 불가피한 개인 보증·채무 등의 약점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고 품고 가려는 선대 경영자의 선택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엔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와 정보 창구가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경영자 자신의 문제도 크다. 사업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키워 내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다. 중소기업이 객관적인 자사 평가, 시장조사, 투자·회수 계획 등 엄밀한 발전적 검토 없이 경영자의 고독과 건강, 고령만의 한계를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불가피한 승계 순간이 돼서야 고민하는 무계획적인 경영 자세도 자주 거론된다. 단계적인 승계 계획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치를 최대화하는 준비 과정의 부재다.

자주 폐업은 자녀로서도 그간의 사회적 지위를 바꿔야 하는 급작스러운 승계 고민을 피할 수 있는 카드다. 이와 관련한 상속·증여세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승계를 결정한다면 최초 단계부터 상당 금액의 납세가 필요해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상장이면 보유 주식으로 납세 자금을 만들기조차 어렵다. 승계와 관련해 납세 유예가 가능하지만 경영 회복이 더뎌지면 별 소용이 없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물려주려는 쪽도, 받으려는 쪽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위험 회피적인 성향이 강한 자녀 세대의 반응이 특히 차갑다.

주거래은행의 행태도 도마 위에 자주 오른다. 예전과 달라진 주거래은행의 거래 관행이 중소기업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한다는 지적이다. 예전의 일본 기업은 주거래은행과 밀접한 협조 관계를 가지며 성장해 왔다. 주거래은행이 유력한 동지적 사업 파트너로서 상담은 물론 의사 결정까지 도와주며 이 과정에서 자본을 공급하는 상생 효과를 구현해 냈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은행 경영이 힘들어지면서 이익 제일주의로 전환,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됐다. 대출을 통한 은행 주도의 간접적인 산업 육성 방침이 종료되면서 중소기업 폐업이 가속화됐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건실한 기업의 흑자 폐업을 막기 위해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이대로 중소기업의 연쇄 몰락을 방치해선 안 되기에 복합적인 처방전을 찾고 있다. 가령 2012년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설치하기 시작한 ‘사업 승계 전문 상담 창구’를 올해는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사업주의 최대 고민이 컨설팅을 해줄 상대가 없다는 고독 경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후계 문제의 상담을 무료로 해준다. 단순한 폐업 조언이 아니라 회사 가치의 재검토와 경영전략 재수립 등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