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따라 재계 판도 바뀔 수도} (사진) 지난 6월 10일 밤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압수 수색을 마치고 '회장실'이라고 쓰인 압수품 박스를 버스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 방위적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재계에서는 최근 ‘사정 태풍’에 대한 우려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롯데에까지 수사의 ‘칼날’을 겨누면서 이번 일이 두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재계 전체를 겨냥한 수사의 ‘첫 끈’을 끊은 것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 말기마다 반복돼 온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의 기업 옥죄기가 시작된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 수출 부진 속 설상가상
검찰은 지난 6월 10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두고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에 나섰다. 검사와 수사관 240여 명을 보내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홈쇼핑·롯데피에스넷·롯데정보통신·대홍기획 등 계열사 6곳, 핵심 임원 자택 등 17곳을 압수 수색했다.
압수 수색 대상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집무실(롯데호텔 34층)과 신동빈 회장의 평창동 자택도 포함됐다.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압수 수색한 지 이틀 만이다.
또 SK해운 등 SK그룹 일부 계열사와 (주)코오롱·대림코퍼레이션 등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고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회사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과 부영그룹(조세 포탈 혐의) 등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같은 반기업적 정서와 상황에 그룹 오너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인 일부 기업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재판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재계 일부에선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국면 전환용 수사라는 시각도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이미 사정 당국이 여러 기업을 타깃으로 정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어떤 기업이 시범 케이스로 찍히느냐에 따라 재계 분위기와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공정한 법 집행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기업들은 이번 검찰과 국세청 등의 수사로 투자 축소 등 경기 살리기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우려한다. ◆대외 신뢰도 하락 우려도
특히 내수 부진, 수출 실적 하락, 조선 산업 구조조정 등 기업의 위기 속에 사정 당국의 기업 압박은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계의 이 같은 우려는 학습 효과에서부터 비롯됐다. 앞서 정권 말기 때마다 검찰과 국세청의 국면 전환용 기업 수사가 그간 지속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012년에도 대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이뤄졌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뜩이나 오너 부재 등으로 대기업의 투자 진행이 더딘 상황에서 이 같은 분위기 조성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지속되는 수출 부진과 내수 위축으로 가라앉은 기업의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대기업에 대한 반기업적 정서가 뿌리내릴까 걱정”이라며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신뢰도 하락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계의 이 같은 우려는 그대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산업 분야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를 논의하기 위해 6월 15일로 예정됐던 주형환 장관과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 내부 사정 등으로 CEO들의 참석이 여의치 않아 불가피하게 일정을 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약 9개월 동안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온 미래에셋대우 등 주간사는 상장이 무기한 연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허탈해 하고 있다. 상장이 무산되면 그간 업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IPO 거래(딜)에서 증권사는 상장이 마무리돼야 수수료를 받는다.
롯데호텔 측은 “기업공개가 현재는 철회된 상태지만 또다시 추진할 것은 분명하다”며 “주간사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이후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신동빈 회장도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6월 14일 열린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및 에틸렌글리콜 생산 공장 기공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검찰 수사가 미래 투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kth@hankyung.com
[기사 인덱스]
-경영권 분쟁에 검찰 수사까지…롯데 최악의 위기
-1주일 새 롯데그룹 32곳 압수수색 ‘오너 일가 정조준’
-[롯데의 창과 방패] 검찰 특수통 VS 검찰 출신 변호인단
-발 묶인 신동빈 롯데 회장…공들인 기업공개·M&A 줄줄이 ‘차질’
-신동빈·신동주, ‘6월 25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서 또 격돌
-롯데, 이명박 정부 때 2배로 몸집 키워
-[롯데 검찰 수사 후폭풍] “경기 살린다더니…” 투자 위축 우려
-[롯데 수사] 대통령 임기 4년 차엔 어김없이 사정 ‘칼바람’
-[기업 사정 어디까지] 검찰·국세청이 ‘총대’…기업 ‘초비상’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