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20대 국회가 6월 13일 개원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덮어쓴 탓에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개원식을 치렀다. 국회는 개원식을 마친 후 18개 상임위와 상설특별위원장단을 선출하는 등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19대 국회 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 처분된 법안들도 재조명 받을 전망이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르면 이번 주(6월 넷째 주)에 19대 국회 당시 대표 발의했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재발의할 예정이다.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린 이 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종전의 원가에서 시가 기준으로 재산정해 총자산의 3%까지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보험사를 제외한 다른 금융업권은 주식과 채권의 소유 금액에 대해 시가로 자산 운용 비율을 규제하고 있다. 자산 운용 비율은 주식과 채권을 합한 금액을 총자산으로 나눈 수치로, 보험사는 이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필요한 총자산·자기자본·채권·주식 소유의 합계액을 현재 취득원가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의원은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이 자산 운용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보험사에 대한 자산 운용 규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19대 국회에선 여당 측 의원들의 반발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만 거듭하다가 결국 폐기됐다.
◆ 법안 통과 시 가장 큰 타격 입을 삼성생명
해당 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개정안의 변경된 기준이 적용되는 전체 보험사들 가운데 삼성생명이 가장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그동안 취득원가 기준에 따라 2013년 기준 약 19조1000억원에 달하는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시가로 바꾸게 된다면 총자산의 3%, 약 4조7000억원밖에 보유할 수 없게 돼 차액만큼을 반드시 팔아야만 한다.
이번에 재발의될 법안은 앞서 발의했던 법안과 달리 유예기간을 5년에서 7년으로 늘릴 전망이다. 19대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 보유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삼성생명으로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이종걸 의원실 관계자는 “19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했다”며 “법안 취지 자체는 다른 금융권의 내용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지만 유독 삼성생명만 삼성전자 보유 주식을 팔아야 하므로 부담감을 느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안의 취지는 모두 동의한다”면서 “유예기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삼성에서도 여론을 감안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법안이 재발의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보험 업계는 양분된 모습을 보였다. 회계 결산을 다시 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연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가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어서 시가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단지 유예기간을 늘려 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법안이 통과된다면) 모든 보험사가 설립 이후 시점부터 회계 결산을 전부 다시 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어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취득 시점이 전부 다르다. 단순히 장부상의 수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해 온 것을 전부 다시 계산해야 하는데 이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또 다른 보험 업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국내 대형 3대 보험사 중에서 그룹사이면서 아직 금융지주사가 없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어차피 2018년부터 IFRS4 2단계가 전격 시행되면 시가로 평가해야 하므로 보험사들은 법안의 통과 여부를 떠나 불가피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6월 초 제시한 ‘IFRS4 2단계 연착륙 방안’에 따라 생명보험사들은 연말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 생보사들은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6월 말까지 금융 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삼성 지배 구조 변화
보험 업계의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번 법안은 삼성생명을 정조준한 만큼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변화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대를 맞아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들은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수직 계열화 작업을 거쳤다. 삼성생명은 올해 1월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37.45% 전량을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 14.98%, 삼성증권 11.14%, 삼성카드 71.86%의 지분을 확대하면서 지배력을 한층 강화했고 삼성자산운용은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또한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 7.32%, 삼성중공업 3.38%, 에스원 5.34%, 호텔신라 7.3% 등을 보유 중이다.
대기업 지배 구조 전문가인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법안은 찬성하지만 통과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며 “삼성의 지배 구조 개선 문제는 삼성 측이 자발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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