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몰라’ 요동치는 글로벌 금융시장}

[한경비즈니스=이홍표 기자] 세계경제가 전인미답의 영역에 들어섰다. 결국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이다. 43년 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동맹체(EEC)에 가입함으로써 유럽 통합 역사에 동참했던 영국이 역사를 되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의 EU 탈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진행됐던 유럽 통합의 역사가 중단되고 유로존·EU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새로운 세계 질서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렉시트가 몰고 올 파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지 아직 예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예상하기 힘들다’는 것이 세계경제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 것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확정됐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6월 24일 영국의 EU 탈퇴 찬성표가 절반을 넘어 브렉시트가 확정됐다고 전했다. 탈퇴 찬성 51.9%, 반대 48.1%였다.

BBC는 이번 국민투표 참가율이 71.8%를 기록, 1992년 총선 이후 가장 높았다고 전했다. 런던과 스코틀랜드 등에서는 EU 잔류 지지자의 비율이 더 높았지만 웨일스와 잉글랜드 북부를 비롯한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탈퇴 지지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면서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다. 애초 세계 금융시장은 영국이 EU에 잔류(브리메인)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혼란이 더욱 컸다. 박빙이긴 했지만 영국 내 여론조사 등에서 잔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날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는 장중 10% 가까이 폭락하면서 1985년 이후 최저치인 파운드당 1.35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하루 변동 폭 역시 금융 위기 이후 최대인 6.52%를 깼다.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폭락했다. 특히 엔화 가치 급등에 따라 일본 증시의 낙폭은 7%를 넘어섰다. 일본 닛케이225는 전 거래일 대비 1286.33엔(7.92%) 하락한 1만4952.02엔으로 장을 마감했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3.09%, 코스닥지수는 4.76% 하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3.85%,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3%의 낙폭을 보였다.

◆영국의 ‘자존심’, 탈퇴를 택하다

그러면 EU 내 경제 규모 2위인 영국은 왜 ‘엑시트(exit)’를 선택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 때문이다. 2012~2013년 2년간 영국의 실업률은 8%대를 기록했다. 이는 1996년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시리아 및 중동 난민의 대규모 유입 또한 영국민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겼다. 지난해 영국으로 유입된 순이민자는 3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대로 계속 EU에 잔류한 채 이민자를 받아들인다면 이민자 복지 지출, 내국인 고용시장 경쟁 심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영국 국민들은 생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로존 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것 또한 브렉시트를 부추겼다. 유로존 전반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머물러 있는 반면 영국 경제는 회복 기조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EU 분담금 부담 또한 증가 추세다. EU의 재정 악화가 심화되면서 영국이 내야 할 EU 분담금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영국이 EU에 내는 분담금에서 EU로부터 받는 수혜금을 뺀 순부담금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0.4% 수준으로 EU 안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정서적으로도 영국은 대영제국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유럽 대륙과의 통합에 회의적이다. 반면 EU에 잔류하는 한 영국은 EU가 결정한 법률, 재정정책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즉 자존심 강한 영국은 EU에 가입돼 있는 상황을 ‘주권’을 빼앗겼다고 보는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영국의 EU 탈퇴 운동을 주도한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영국 독립의 새벽이 밝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은 아마도 정치적·경제적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영국 내 여론 분열과 나아가 영연방 자체의 분열이다. 벌써부터 스코틀랜드는 브렉시트가 확정됨에 따라 독립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2년 뒤 GDP성장률이 현재보다 3% 포인트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영국의 무관세 교역 비중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EU 단일 시장에서 완전 무관세였던 역내무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의 무관세 교역에 관세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체 교역 중 무관세 수입 비율은 브렉시트 이전 90.1%에서 69.5%로 20.6% 포인트 줄어들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영국은 유럽 내 최고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 대상지다. 2014년 기준 영국의 FDI 실적은 유럽 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EU 진출의 발판이라는 매력을 상실하게 된다. 비EU 다국적기업의 유럽 법인 절반 이상이 영국에 들어서 있는데 이들은 다른 EU 회원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가장 큰 위협

특히 강점인 금융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금융 산업은 GDP의 7.6%, 고용의 4%를 차지한다. 특히 영국은 EU 내 외환 거래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영국 금융회사는 EU 회원국이 아닌 제3국 기업이 된다.

더 큰 위협은 브렉시트가 단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렉시트는 EU 내 역내 교역량 감소,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소비 및 투자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 회원국 중에서도 영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의 교역이 크게 둔화될 수 있다.

성장률 또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OECD와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실질 GDP는 2018년 0.6% 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이 밖에 유럽 주요국의 주가 하락과 함께 파운드화 및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는 등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안전 자산 선호현상 및 신흥국의 통화 약세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최악의 경우 기존의 EU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이 EU 출범 후 첫 탈퇴 사례이기 때문이다. EU에 대해 불만을 가진 국가들의 탈퇴 움직임이 강화될 수 있다. 현재 EU 탈퇴 움직임이 있는 나라는 스웨덴·덴마크·그리스·네덜란드·헝가리·프랑스 등이다. 모두 영국과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다.

한국도 브렉시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올해 1~4월 한국 주식 42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 이는 전체 외국인 순매수 금액(2조8000억원) 중 1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매수와 매도 금액을 합산한 거래 기준으로는 34%를 차지해 올해 한국에 투자한 국가들 중 가장 활발한 거래 현황을 보이고 있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영국의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이 높은 아일랜드·네덜란드 등 유럽계 자금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의 성장률 둔화로 영국으로의 수출 부진도 우려된다. 강 연구원은 “영국은 한국의 유럽 투자에서 네덜란드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투자 대상국”이라며 “브렉시트가 발생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 환경이 악화한다면 신규 투자도 주춤하게 되고 영국과 교역에서의 관세 부담 확대로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파운드화 및 유로화의 약세 등에 따라 원화의 동반 약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세계경제 시장에 대한 불안감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2009년 미국발 금융 위기 직후 최고 수준인 달러당 1570원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단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세계경제가 큰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탈퇴 협상 진행에서도 계속해 문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실이 된 ‘브렉시트’…세계 질서 ‘대격변’
◆영국의 EU 탈퇴 과정은

브렉시트가 세계경제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를 통해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영국과 EU 또 EU 회원국 간에 수많은 잡음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경제 및 금융시장에 긍정적일 이유가 거의 없다. 그러면 실제 영국의 탈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먼저 영국은 EU에 즉시 탈퇴를 통보해야 한다.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탈퇴 협상은 최대 2년까지 진행될 수 있다. 영국은 이 기간 동안 EU와 협상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영국은 EU를 떠난 뒤에도 EU라는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가지면서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든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면 협상 시한을 연장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자비’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브렉시트를 신호탄으로 다른 회원국들이 도미노 이탈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영국 퇴출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U의 주축인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떠난 것은 떠난 것”이라며 영국에 대한 ‘봐주기’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의 ‘희망 사항’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탈퇴 절차가 2년 내에 마무리되더라도 최대 7년간 영국의 EU 시장 접근을 둘러싼 갈등과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큰 문제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EU와 새롭게 협상해야 하고 특정 협정안을 마련하는 데 최대 7년에 달하는 협정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2년 안에 협상을 마친다고 하더라도 EU와 영국 간 새로운 관계 설정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27개 EU 회원국과 EU 의회가 모든 결과를 승인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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