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구원투수’로 한국공인회계사협회 회장에 올라}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회계 업계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대형 회계 법인의 분식회계 및 부실 감사 논란, 미공개 정보를 주식 투자에 이용한 회계사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 갈수록 줄어드는 공인회계사 시험 응시생 등이 오늘날 회계 업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위기의 회계 업계, 돌파구는 무엇일까.

◆삼중고에 시달리는 회계 업계

2016년 공인회계사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수임 경쟁이 심화되는 반면 회계·감사 서비스에 따른 대가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회계사들의 근무 강도는 가히 살인적이라고 표현될 만큼 심해졌고 일부 견디다 못한 경력 5년 차 미만 주니어급 회계사들은 짐을 싸 떠났다.
‘사면초가’ 회계 업계, 돌파구는 어디에
지난해 치러진 제50회 공인회계사 시험에서는 총 8388명이 1차 시험에 응시했다. 이는 전년 대비 11.3% 하락한 것이고 1차 회계사 시험 응시자는 2011년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회계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실 감사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1조5000억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를 적발하고 이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통보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아 2013~2014년 사업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냈던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은 올해 3월 뒤늦게 수정을 요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3월 말까지 회계 기준 위반으로 금감원이 행정 조치한 회사는 총 312개에 달했다. 이 중 143개 회사는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나타났고 검찰에 고발·통보된 회사 및 관계자는 총 332건에 이르렀다.

전문직인 회계사들의 모럴 해저드 문제 역시 잊힐 만하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대표는 지난 4월 한진해운이 자율 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전에 고객사 대주주인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사전 정보를 흘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초 중견·중소 회계 법인을 대상으로 특별 감리를 실시한 한국공인회계사회(이하 한공회)는 소속 회계 법인이 감사하는 기업의 주식 거래를 한 회계사 5명을 적발했다. 지난해에는 회계 업계 ‘빅4’로 불리는 대형 회계 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하다가 검찰에 적발돼 구속됐다.

이처럼 안팎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는 회계 업계에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새 한공회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사면초가’ 회계 업계, 돌파구는 어디에
(사진) 한국공인회계사회 제43대 회장에 선출된 최중경(오른쪽) 신임 회장이 당선증을 건네받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최 신임 회장은 지난 6월 22일 열린 한공회 제62회 정기총회에서 제43대 한공회 회장에 당선됐다. 유효 투표수 4911표 중 3488표를 얻어 득표율 70%가 넘는 압승을 거뒀다. 최 회장이 산적해 있는 업계의 문제점들을 하나둘씩 풀어나가길 바라는 회계사들의 기대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이날 당선 소감으로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면서 “회계 업계가 올곧게 서려면 회계 감사 기반이 탄탄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실 감사의 근본 원인은 ‘을(乙)’의 지위에서 비롯된 회계사의 낮은 감사 보수”라며 “회계 감사 보수의 최저한도를 정해 기업과 회계사 간 ‘갑을(甲乙) 관계’를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 업계 관계자들 “시장구조가 문제”

업계 관계자들은 회계 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회계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이 회계 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는 시장구조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구조는 결국 감사 수수료 하락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곧 감사 시간 하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쫓겨 감사 업무를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회계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낮은 수수료에 따른 독립성 위배를 문제로 지적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수료 경쟁이 너무 심화돼 업계가 많이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며 “수수료 인하라는 것이 회계 서비스를 공급받는 측에는 좋을 수 있지만 회계사 측에는 독립성에 심히 위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독립성이 훼손되다 보니 회계사로서의 윤리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회계감사 수임 감사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닌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지정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분식회계 문제는 꾸준히 나왔던 문제”라며 “회계 법인이 감사를 잘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제아무리 시간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회사와 독립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를 하면 제대로 된 감사 의견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감사인의 독립성이 최우선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상장회사나 금융회사와 같은 대형사는 지금처럼 감사인을 자율 수임으로 정하기보다 ‘지정 제도’로 바꿔 감사인이 계약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면초가’ 회계 업계, 돌파구는 어디에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