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시대 ‘21세기 코드’에 맞는 최고의 콘텐츠…인식 전환 필요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올여름 갑자기 속초가 떴다. ‘포켓몬 고(Pockemon Go)’ 열풍 때문이다.
포켓몬 고 게임의 매력은 다양한 캐릭터 덕분이다. 숲에서는 숲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바다에서는 바다에 있을 법한 캐릭터가, 낮과 밤에 따라 출현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쉴 틈 없이 나타나는 그 만화의 매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을 내포하고 있다.
포켓몬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읽고 보며 자란 이들에게 포켓몬 캐릭터는 단순히 하나의 만화 주인공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콘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끈이다.
게다가 증강현실이라는 미래를 향한 첨단 테크놀로지의 산물과의 결합은 환상적이다. 즉 ‘과거-현재-미래’를 이어 주는 완벽한 조합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만화라는 콘텐츠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기 한국의 만화 사업과 정책은 정말 한심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군사독재 시절 만화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걸핏하면 불량하고 천박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로 학교에 수북이 쌓아 불 지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야말로 만화의 ‘분서갱유’판이었다. 군부독재자들은 교양과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으니 자신들의 지적 수준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고 어설픈 식자들은 만화가 저급한 것으로 여겼으니 아무도 그런 야만을 제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의 만화 산업은 늘 음습한 뒷방에 밀려 몰래 봐야 하는 금서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이나 캐릭터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0년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고 역사도 긴 한국출판문화상 본선 심사 때 어린이 청소년 부문에서 최규석의 ‘울기에는 좀 애매한’을 선정했을 때 일종의 충격이었다.
실제로 심사 때 ‘만화를 뽑는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는 반론이 없지는 않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래서 더욱 만화를 선정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만화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했고 그동안의 홀대에 대한 사죄의 의미도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상을 심사할 때마다 좋은 책을 뽑지만 그 책이 두고두고 강하게 기억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판단과 결정을 내렸다는 자부심이었다. 그 상의 역사에서 만화책을 선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몇 해 뒤 최규석이 ‘송곳’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새삼 그때 일이 떠올랐고 흐뭇했다. 콘텐츠 사업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호식)
비주얼 시대다. 글씨보다 그래픽이 훨씬 더 쉽고 편하다. 또한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속도감도 뛰어나고 실재감도 높다. 빠져들기 좋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는 자기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없고 그냥 수동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에 반해 만화는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조절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차이다.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만화는 최고의 비주얼 교본
또한 만화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만화는 정지된 하나의 컷 안에 강조하고 싶은 면을 도드라지게 그리고 불필요한 배경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간결화할 수 있다.
정지된 화면은 필요에 따라 섬세하게 혹은 상상력을 갖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산만하게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만화는 그래픽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종의 간결한 압축 파일과도 같다. 그것을 다른 의미로 표현하면 만화는 장면을 ‘시’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와 만화는 압축성이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만화는 교육적이다. 이전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겠지만 21세기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교육적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포켓몬 고의 열풍을 보면서 정작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20세기의 사고 틀에 갇혀 있으면 미래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틀 안에서 여전히 과거의 가치를 획득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그야말로 1%의 짧은 생각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기껏해야 앞으로 10년 정도 마지막 단물을 빨아먹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라도 적어도 향후 10년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접근하고 해석하며 과거의 틀을 깨뜨리며 나아가야 한다.
만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그런 진화의 한 가지 사례라는 점을 읽어 내면 의외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래 가치는 미래를 바라보고 읽어 내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만화를 천덕꾸러기로 여긴다. 아이들이 만화 보는 걸 질색하는 부모들은 여전히 20세기에 살아오고 배워 온 어리석은 방식으로 판단한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자, 주저하지 말고 당장 만화를 들고 신나는 탐험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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