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중국의 세계화 더 일렀다면 한국의 고도성장 불가능했을 것"
중국의 문화혁명 ‘잃어버린 10년’ 한국 경제에는 축복
(일러스트 김호식)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만약 문화혁명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곡부(曲阜)의 공자묘에서 대부분의 비석들이 다 파괴된 것을 본 뒤 중국 학자에게 물었다. 필자는 중국이 보다 문화적으로 발전했다거나 공자 사상을 억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랬더라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어려웠을 겁니다.”

예상하지 못했기도 했지만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만약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퇴행하며 폐쇄정책을 펴지 않고 일찍 개방했다면 국제시장에서 한국의 노동 경쟁력은 크게 위축됐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는 어떠한가. 한국은 세상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1950년대 말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마오쩌둥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그는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수천만 명이 굶주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경제는 좌초했다. 결국 국가주석을 사임해야 했다. 노선 대립과 내부 투쟁이 이어졌다.

대약진운동이 좌절된 이후 중국 공산당 내부에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노선 대립이 생겨났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내걸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되자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공산당 내부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고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국가는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악화됐다.

반대파는 무너진 민생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을 택했고 상당 부분 실효를 거뒀다. 그러면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욕이 강한 마오쩌둥은 위기를 느꼈다. 그는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의 세력을 수정주의로 매도하며 공격했다.

홍위병들이 날뛰며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며 중국 전체를 거대한 권력투쟁으로 내몰았다. 1962년 9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작된 일이다.


◆ 권력 집착과 탐욕이 빚은 퇴행

이름은 ‘문화’를 내걸었지만 내용은 야만의 극치였다. 지식인은 반국가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탄압받았다.

공자조차 그 야만에서 비켜 갈 수 없었다. 공자의 유적은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됐다. 문화대혁명의 절정은 1969년 4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이 절대적 권위를 획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후계자로 삼았던 국방장관 린뱌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으로 죽고 마오쩌둥에게 충성했던 군부 지도자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그 혁명은 단지 마오쩌둥 개인의 권력욕의 산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적으로 평가했다.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아니었고 문명도 아니었으며 권력의 집착과 탐욕이 빚어낸 야만의 퇴행이었을 뿐이다.

만약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의 권력이 당시 실권하지 않고 민생 경제 회복과 자본주의 정책의 부분적 수용이 확대돼 중상공업이 발전하고 더 나아가 세계무역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과연 당시 산업화와 세계무역에 뛰어들었던 대한민국의 경제는 그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한국이 1960년대에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선택하고 세계무역에 뛰어든 것은 그 결과를 보더라도 최선의 것이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중국이 그 대열에 뛰어들었더라면 어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히 한국의 세계화와 중국의 폐쇄화가 일치했기에 그런 행운이 가능했다. 물론 가장 큰 요소는 한국민이 정말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지만…. 한국민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면밀히….

하지만 한국의 세계화는 공허하고 그저 영어 잘하는 게 중심이다. 이러고 21세기 세계에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야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그래야 한다. 21세기 중국의 변화에 대해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단지 무역의 대상으로만, 그것도 아직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값싼 노동력의 시장으로만 보는 단견부터 완전히 버려야 한다. 지금 저들이 공자를 부활시키며 품고 있는 문화의 대국굴기의 흐름부터 제대로 읽어야 한다. 공자의 고향 곡부에 머무르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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