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법 개정으로 개인 직접 매입 막혀, ‘NPL 사모펀드’로 투자 문의 급증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최근 NPL(Non Performing Loan : 부실채권) 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지난 7월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이다.
이날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에 따르면 NPL을 매입할 수 있는 주체가 ‘금융회사·대부업자·공공기관 등 등록된 업체’로만 한정된다. 개인 투자자나 금융위원회 미등록 개인 대부업자, 자산 관리 회사 등에 NPL을 양도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개인이 직접 NPL을 취득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시장에서는 원성이 자자하다. 이에 따라 NPL에 대한 개인 투자도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전혀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NPL 개인 투자시장이 정화되는 효과와 함께 NPL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가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NPL 전문 학원
지금까지 개인이 NPL에 투자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부동산 담보 부실채권’ 투자였다. 개인 투자자가 NPL의 부동산 담보 물건을 ‘싼값’에 매입한 뒤 법원 경매를 통해 이보다 ‘비싼 값’에 매각해 수익을 얻는다. 혹은 그 물건의 경매에 직접 참가해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NPL을 직접 매입하는 경로는 ‘NPL의 유통 과정’을 뜯어보면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회사는 3개월 이상 연체된 NPL을 일정한 시기가 되면 경매를 통해 덩어리로 묶어 시장에 내놓는다.
이때 금융회사로부터 NPL 물건을 사들이는 이들이 바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연합자산관리(유암코)·대신F&I·KB자산운용과 같은 대형 자산 관리 업체들이다.
대형 자산 관리 업체들은 사들인 NPL을 다시 중소형 자산 관리 회사들에 넘긴다. 여기서부터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가 가능해진다. 개인투자자들은 바로 이 중소형 자산 관리 회사를 통해 NPL을 매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다리’ 하나를 더 거친다. 개인 투자자들은 중소형 자산 관리 회사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들과 연결 고리를 지닌 전문가를 통할 때가 많다. 바로 ‘NPL 전문 학원’의 강사들이다. NPL 투자시장이 각광 받으면서 ‘NPL 전문 학원’이 성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때 어떤 전문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는 예도 적지 않았다. NPL 투자를 빙자한 유사 수신 사기 조직을 만나 ‘큰돈’을 잃은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지난 7월 대부업법의 개정은 이와 같은 NPL 개인 투자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따라서 지난 7월 이후 분위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NPL 전문 학원들이다. 지난 8월 8일 국내 대표적인 NPL 전문 학원 세 곳에 전화를 걸어 수강 신청을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같았다.
학원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수업이 없다”며 “8월 말이나 9월 이후 수업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던 NPL 투자 학원이 이렇듯 꽁꽁 얼어버린 이유는 하나다.
서울금융NPL학원의 정욱주 대표 교수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전략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학원에서도 이를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NPL 투자를 위해 개인들 여럿이 모여 직접 금융위에 대부업체로 등록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NPL 전문 투자 학원인 '강남에듀 평생교육원'의 수업 모습. /강남에듀 평생교육원 제공
◆대부업법 개정, ‘펀드 활성화’ 기회
그렇다고 개인이 NPL에 투자할 길이 아예 막힌 건 아니다. 한쪽에서는 이제 막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산 운용사나 증권사들을 통해 간접투자가 가능한 ‘NPL 펀드’등의 투자 상품이다
펀드 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펀드 상품 중 이름에 NPL이 포함된 펀드의 설정액은 2012년 1분기 2605억원에서 2015년 4분기 8152억원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국내 NPL 펀드 시장은 대부분이 ‘사모펀드’ 형태로, 사실상 연·기금이나 공제회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중심이다. 특히 부동산을 담보로 한 NPL 사모펀드의 개인 투자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박영준 한미F&I 부사장은 “일부 고액 자산가들이 투자하는 사모형 부동산 펀드에 NPL 등이 편입된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법 개정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이 부동산 NPL 사모펀드 등에 눈을 돌릴 여지가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NPL 사모펀드에 참여하고 싶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NPL 투자 전문 업체는 지금이 바로 개인 투자자들까지 시장을 확대 할 ‘호기’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과 같은 담보부 NPL 펀드는 아니지만 이미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꽤 입소문을 타고 있는 NPL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용회복채권(CCRS)과 개인회생채권(IRL) 등 무담보 NPL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 등이다.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지난해 4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에서 선보인 ‘GB NPL 트랜치(Tranche) 랩어카운트(wrap-account)’ 상품이다. 이 상품은 ‘사모펀드’형태가 아닌 ‘랩어카운트’ 형태로, 최소 2000만원부터 가입이 가능하다. 모집 금액은 수억원에 그쳤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리테일용 NPL 상품’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큰 관심을 모았다.
뒤이어 지난 3월 신한금융투자와 IBK투자증권이 마찬가지로 개인의 채무 조정 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선보였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1월부터 ‘프리워크아웃(CCRS)금전채권 수익증권 사모펀드’를 판매, 고액 자산가들로부터 110억원 정도의 자금을 유치했다.
판매는 IBK투자증권을 통해 이뤄지지만 아시아 지역 NPL 시장 및 구조조정 시장에 투자하는 전문 회사인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이 설정한 펀드다. 기본 계약 만기는 2년이다. 하지만 펀드 설정 후 1년이 경과하면 리파이낸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조기에 상환한다. 수익률은 대략 연 4.5%로, 월 지급식 구조다.
신한금융투자 또한 일반 지점과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의 복합 점포인 신한PWM센터를 통해 ‘무담보채무조정채권(CCRS,IRS) 펀드’를 판매 중이다.
이 펀드 역시 IBK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파인트리아시아자산운용이 설정했다. 목표 수익률은 내부 수익률(IRR)을 기준으로 3.55%다. 펀드 만기는 2016년 11월이다. 고액 자산가들과 프라이빗뱅크(PB) 고객들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80억원 이상의 자금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신한금융투자는 100억원 상당을 모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손은주 신한금융투자 투자상품부 펀드팀장은 “개인 채무 조정 채권 중에서도 연체 금액이 적고 회수율이 높은 채권들을 골라내 5만 개 정도를 한데 묶어 판매하는 상품으로 이해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채무자들의 평균나이가 40~60세 정도로 근로가 가능하며 평균 부채액이 1000만원 이하로 납입 회차가 얼마 남지 않은 채권들을 걸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NPL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사모펀드, 최소 가입 금액은 1억원
손 팀장은 “금융공학의 발달로 예전과 비교해 회수율이 높은 개인 채무 조정 채권을 보다 정교하게 걸러낼 수 있게 됐다”며 “다른 증권사나 자산 운용사들도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NPL 펀드 상품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준비 중인 곳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대부업법이 개정된 취지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손 팀장의 부연설명이다. 전문 금융회사 등을 통해 개인들이 NPL에 투자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걸러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자산 운용사나 증권사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이와 같은 NPL 사모펀드에는 주로 어떤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것일까. 문진선 신한PWM 강남대로센터 PB팀장은 “NPL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고액 자산가들은 대부분이 60대 이상 은퇴자들”이라며 “매월 안정적인 수익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로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코스피가 오랫동안 박스권에 머무르고 있는 데다 글로벌 경기 변동성마저 커지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고액 자산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다. 이 과정에서 대체 투자 상품의 하나로 ‘매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NPL 펀드 상품을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편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투자 금액은 1억원에서 5억원 사이가 가장 많다.
현재 자본시장법에 따라 사모펀드는 투자자 49인 이하, 최소 가입 금액 1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현재로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5억원 이상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기 보다 최소 투자 금액인 1억원에 맞춰 NPL을 ‘시도’해 보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문 PB팀장은 “현재는 NPL 사모 펀드 개인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한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판단된다”며 “앞으로 투자자들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NPL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NPL 공모펀드 등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담보부 NPL이든 무담보부 NPL이든 개인 투자가 보다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NPL도 결국은 채권이기 때문에 채무자가 채권을 갚지 못했을 때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특히 NPL은 이 같은 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증권사나 자산 운용사의 말만 믿고 ‘묻지 마 투자’에 나섰다가는 원금도 지키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NPL 펀드로 큰 인기를 얻었던 IBK투자증권은 최근 한 센터가 NPL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논란이 벌어지며 내부 감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센터는 고객에게 원금 보장을 약속하며 무담보 NPL 중 후순위 3종 수익권을 판매한 것이 문제가 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채권을 투자하기에 앞서 그 채권의 ‘기초 자산’을 면밀히 살펴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채권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투자 기준이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수익률이다. NPL 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높으면 개인 투자자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박 부사장은 “금융회사에서 NPL을 경매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헐값’에 물건이 팔렸다면 이는 그만큼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PL 투자 상품 중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다.
박기홍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지난 3월 발표한 ‘최근 NPL 시장의 변화와 성장 전망’ 보고서에서 NPL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플랫폼을 활용해 정보 기반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친시장 인프라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박 연구위원은 “NPL은 시장의 특성상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개인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구성하거나 안내하기 위해서는 펀드매니저, 전문 최고경영자(CEO), 법원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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