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이전 직장 안착 못하면 평생 불안정"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일본에서 최근 10년간 대유행했던 ‘격차’가 어느새 한국에서도 사회문제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정치인들이 ‘격차 해소’를 출마의 변으로 삼을 정도로 격차는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격차는 한국이나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경제학 교수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에서 세계적으로 격차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 격차는 단순히 재산이나 소득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재산이나 소득을 기반으로 사회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2010년 여름 일본의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에 격차에 관한 사카이야 다이치의 기고가 실렸다. 사카이야 다이치는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일본에 세 가지 격차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부모를 중심으로 한 태생 환경의 격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과 비슷하다. 부모를 잘 만났다는 것은 단순히 부를 물려받는 문제가 아니다.
재산보다 더 중요한 무형자산, 즉 인맥 같은 것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은 총리의 자녀가 대를 이어 총리가 되고 연예인의 자녀가 젊은 나이에 대중 스타가 된다.
둘째는 도쿄 일대의 수도권과 다른 지방의 지역 격차다. 도쿄에 고부가가치 산업과 문화 시설, 우수한 인력이 몰려 있다. 젊은이들이 글로벌화한 지식기반사회에서 성장하려면 외부와의 소통이나 자극이 필요한데 이제 지방에 소통과 자극을 주는 존재는 거의 없다. 이 같은 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미래로 가기 위해 필요한 ‘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
◆사카이야 다이치가 말하는 ‘격차’란
셋째는 노동시장에서 생겨나는 ‘직연인(職緣人)’과 ‘무연인(無緣人)’의 격차다. 관료나 대기업 직원 등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그룹과 불안정한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그룹의 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30대 초반까지 무연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아예 탈출구가 막혀 버린다. 이렇게 무연인의 굴레에 갇히면 ‘프리터족’이나 ‘니트족’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프리터족은 필요한 돈을 모을 때까지만 일한 뒤 일자리를 떠나는 아르바이트형 직업군을,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카이야 전 장관의 격차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도 설득력을 갖는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구조와 사회문화가 그만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일본의 사회문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사카이야 전 장관의 글 가운데 ‘30대 초반까지 무연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아예 탈출구가 막힌다’는 주장은 조금 섬뜩하지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본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업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남성들은 군복무 때문에, 여성들은 어학연수나 인턴, 취업 준비 등으로 1~2년의 시간을 더 학생 신분으로 보낸다.
일본 젊은이들이 24~25세에 취업한다면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보다 3~4년 늦은 26~29세에 첫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카이야 전 장관의 분석은 한국에서 30대 중반 이전에 제대로 된 직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30대는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다. 격차의 크기도 가장 크고 벌어지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20대에 함께 어울렸던 친구가 10년이 지나 몰라보게 변해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같이 어울려 다녔는지 의심할 정도로 30대는 변화가 큰 시기다. 마치 배추나 무가 어린 모종일 때 비슷해 보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 20대 이전이 파종기라면 30대는 성장기요, 40대 이후는 수확기다. 따라서 성장기인 30대 1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30대 전반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격차는 30대 말이 지나 40대 초가 되면 그대로 굳어지고 만다. 따라서 40대에 들어서면 웬만한 노력으로는 그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30대의 10년이 격차를 크게 벌리는 것은 이 시기에 하는 선택들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30대 전반에 직업과 직장을 정하고 자신의 주력 분야를 선택한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해도 대개 30대 중반 이전에 가닥을 잡는다.
여성들은 이 시기에 출산 문제를 결정하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계속 다닐지 고민한다. 이렇게 30대는 취업·창업·결혼·출산·육아 등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들을 대부분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다.
국세청의 2015년 통계를 보면 남성과 여성 근로자의 연봉은 취업한 지 얼마 안 된 청년층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30대 이하에서도 연봉의 격차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40대 이상으로 가면 연봉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 이것은 여성들이 승진이 늦거나 안 돼서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특히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40대에 대거 저임금으로 직장 생활에 복귀하는 것은 이런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으로 복귀하는 여성의 대부분이 연봉이 낮은 중소기업에 몰리면서 남녀의 연봉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30대는 또 노력에 따라 성과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시기다. 그전까지 격차는 주로 개인의 역량 차이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면 개인과 조직 역량이 맞물리면서 격차가 커진다.
30대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떤 조직에 속하게 되는데,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에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는 사람과 낙후된 조직에서 개인적 노력까지 적게 하는 사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의 노력과 조직의 역량이 시너지를 내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만드는 젊은 직장인들을 흔히 본다. 그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종종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반대로 직업과 직장을 잘못 선택해 패배감과 열등감에 휩싸인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을 무기로 활용하라
이처럼 30대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시기다. 잘못 결정하면 사카이야 전 장관의 ‘무연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직연인’이 되기는 어렵다.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패착을 두면 직연인과 무연인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자신이 꿈꾸던 것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30대 직장인들의 고민이 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문제들을 혼자 줄줄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결정인데도 정작 의사를 결정할 때는 언제 고민했느냐는 듯이 의외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고민 따로, 결정 따로’의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어떻게 저런 결정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뜻밖의 선택을 해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직장을 선택할 때 장기적 관점보다 당장의 연봉이나 복리후생, 또는 상사와의 갈등에 좌우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연봉이나 복리후생은 경력에 후행한다. 좋은 직장이나 전망이 좋은 직무를 선택하면, 그래서 리더나 전문가로 성장하면 연봉과 복리후생이 따라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반대로 당장의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좋다고 해서 그 직장과 직무가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상사도 마찬가지다. 상사는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 같은 것이지 평생 변함없이 옆에 존재하는 산이 아니다. 상사와 갈등은 영원할 것 같지만 대개 시간이 지나면 해소된다.
따라서 30대 젊은이들이 직장이나 직무, 나아가 직업을 결정할 때 이와 같은 문제로 흔들리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 왔다. 그런데도 막상 자기 문제가 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만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직장을 옮기고 직무를 변경하고 심지어 직업까지 바꾸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과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리더나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들은 직장이라는 무기를 활용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만으로 싸운다.
즉, 직무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지 못하고 직장이 제공하는 네트워크와 안목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전투에서 이기기 어려운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 간 것이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배가 바르게 간다
나는 채용과 관련한 인터뷰를 할 때 종종 “10년 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이 당혹스러워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뒤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즈음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1년 뒤를 내다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질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답변이다. 나는 미래 예측 능력을 판단하려는 게 아니라 목표를 갖고 있느냐를 알고 싶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알면 그 사람을 판단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30대는 아직 수확할 때가 아니다. 아직 다 못 뿌린 씨를 마저 뿌리면서 어린 모종을 키울 때다. 그러니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장장이들이 쇠가 식어 굳어지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틀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망치를 내리치는 것처럼 30대는 직업과 직무, 직장이라는 큰 틀을 잡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지, 이를 위해 언제 꽃을 피울 것인지부터 분명히 정해야 한다. 목적지가 불분명하거나 방향을 잃으면 취업과 창업, 이직과 전직, 결혼과 출산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혼란을 겪게 된다.
특히 단기적 관점으로 결정하는 일이 계속되면 ‘격차의 바다’를 항해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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