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브랜드]
‘1가구 1미원’에서 한때 ‘천덕꾸러기’로 전락…MSG 안전성에 다시 일어서
국내에서 ‘MSG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1993년이다. 당시 한 식품 업체가 경쟁 업체의 제품에 MSG가 다량 함유돼 있다고 강조하는 마케팅 활동을 펼쳤고 그 여파로 소비자들은 MSG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과 달리 MSG는 미생물 발효 과정을 거치는 발효 조미료다. 사탕수수에서 얻은 원당 또는 당밀을 미생물로 발효해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을 얻어내기 때문이다. 이후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첨가해 약 88%의 글루탐산과 12%의 나트륨으로 구성된 것이 바로 MSG다.
MSG의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은 100여 년 전 일본인 이케다 기쿠니에 박사가 발견했다.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은 천연 재료인 다시마·표고버섯·멸치·조개·새우·토마토 등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모유에도 들어 있다. ◆창립 60주년 맞은 미원의 역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0년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세계보건기구(WHO) 연합 식품첨가물 전문가 위원회(JECFA)는 1987년 230여 건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결과 ‘MSG는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MSG 1일 섭취 허용량을 철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역시 1978년, 1980년 ‘현재 조미료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에서 인체에 해를 준다는 증거나 이유는 없다’고 공식 발표했고 유럽연합(EU)식품과학위원회에서도 MSG로 인한 독성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등 공신력 있는 글로벌 기관에서 일제히 MSG는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MSG 위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부침의 MSG 역사는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미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한때 ‘감칠맛의 대명사’로 불리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미원은 MSG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왔다.
미원의 역사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던 1950년대 중반, 대상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임대홍 회장은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조미료 제조 공법을 습득한 임 회장은 이후 부산에 돌아와 496㎡(150평) 규모의 작은 조미료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이 바로 미원의 전신이자 국내 최초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이곳에서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이 탄생했다. 이후 미원은 단숨에 ‘국민 조미료’로 자리 잡았다.
어떤 음식이든 미원을 조금씩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이에 따라 당시 가정집에서는 미원을 사용하지 않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주부들에게 ‘마법의 가루’로 불리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국산 조미료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60~1970년대 최고 인기 선물은 미원이었다. 미원 선물 세트의 시초는 1962년 미원 1kg이 담긴 금색 캔을 상자처럼 포장해 선물한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에서 비롯됐다.
미원의 첫 선물 상자는 신선로의 고전적인 느낌과 연결 지어 경복궁의 경회루, 비원의 정자 등을 유화로 그려 넣었다. 이후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고정 판지를 완성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세 가지 미원 선물 세트가 나오게 됐다.
해를 거듭하면서 선물 세트는 제작 수량이 점차 늘면서 하나의 계절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디자인과 내용물도 다양해져 풍성한 선물 세트로 발전해 나갔다.
이후 미원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수출할 만큼 성장했고 ‘1가구 1미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정의 필수품이자 조미료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자리 잡았다.
1982년에는 26년 동안 축적한 1세대 발효 조미료 미원의 기술력을 발휘해 진한 쇠고기 국물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만든 2세대 종합 조미료 ‘미원 쇠고기 맛나’를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미원 쇠고기 맛나’는 미원처럼 순수 국내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원료를 사용해 만든 종합 조미료였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시련
이처럼 승승장구하며 전 국민적 사랑을 받던 미원은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맞았다. 1990년대 초 경쟁 업체의 무첨가 마케팅이 발단이 되면서 MSG 유해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미원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20여 년 동안 정체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한 종합 편성 채널에서 식당들의 MSG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MSG 유해성 논란을 부추기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원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MSG 유해성 논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신문·방송 등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MSG에 대한 검증에 나섰고 이를 통해 오히려 MSG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그 안전성이 재입증됐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MSG 안전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올해 초 식약처 식품첨가물 분류에서도 ‘화학적 합성 첨가물’이라는 용어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MSG에 대한 소비자 인식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최근 미원은 발효미원 신제품 출시, 팝업스토어 밥집미원 운영 등 젊은 층으로 고객층을 확대하며 과거의 영광을 서서히 되찾아 가고 있다.
미원은 2014년 10월 제품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선보였다. 제품명도 기존 ‘감칠맛 미원’에서 ‘발효미원’으로 바꾸고 최근 소비자들의 변화된 입맛을 고려해 부드럽고 깔끔한 감칠맛을 담았다. L-글루탐산나트륨에 배합, 감칠맛을 배가하는 핵산의 비율을 줄여 이상적인 감칠맛을 내는 데 성공했다.
패키지 디자인 역시 지난 60여 년간 미원을 상징해 왔던 붉은 신선로 문양을 과감히 축소, 자연의 느낌을 살리고 원재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탕수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품 리뉴얼과 함께 2014년 11월에는 ‘밥집 미원’이라는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60여 년 만에 이뤄진 미원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20~30대 젊은 층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 홍대 인근에 장소를 마련했다.
밥집 미원에서는 발효미원을 넣어 나트륨의 양을 30% 줄인 국밥을 1970년대 가격인 100원에 판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2월에는 연녹색 형태의 ‘다시마로 맛을 낸 발효미원’을 출시해 사탕수수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두드러지는 해외 성장세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미원의 지난해 국내 매출액은 1027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직접 구입한 판매액은 444억원에 이른다. 미원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소매 매출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미원이 여전히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원은 현재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더 높다. 국내 매출은 2013년 953억원, 2014년 1005억원, 2015년 1027억원인 반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해외 매출은 2013년 1780억원, 2014년 1887억원, 2015년 2000억원 이상으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의 두 배 가까이에 달한다.
성장세 또한 해외가 두드러진다. 1990년 이후 2015년까지 지난 26년간 국내 매출액 규모는 270억원 증가에 그친 반면 수출을 포함한 해외 매출은 연간 1400억원 이상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돼 국내를 넘어 세계 1위 발효 조미료로 도약하기 위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