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백만장자 숫자가 미국을 앞질렀다.” 지난 2월 후룬글로벌리서치가 발표한 ‘2016 세계 백만장자 리스트’에 따른 결과다.

중국에 이토록 많은 백만장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단연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이다.

평범한 영어 교사에서 글로벌 1위 전자 상거래 최고경영자(CEO)가 된 알리바바의 마윈을 비롯해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리옌훙 바이두 회장, 엔지니어 출신인 마화텅 텐센트 회장 등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수많은 성공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은 누가 있을까.

◆ 류창둥 JD닷컴 회장, 알리바바의 무서운 추격자
'제2의 마윈' 꿈꾸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
류창둥 JD닷컴 회장
설립연도 1998년 징둥공사(2004년 온라인 전환)
창업 나이 24세
현재 나이 42세(1974년생)
주요 사업 온라인 전자상거래
성공 포인트 창업 실패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
‘빠른 배송’과 ‘짝퉁 근절’을 앞세운 질적 차별화
개인 자산 약 400억~500억 위안(약 6조~8조원)


D닷컴(징둥상청)은 중국의 2위 전자 상거래 업체다. 2004년 온라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JD닷컴은 알리바바(1999년 설립)의 후발 주자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에서 JD닷컴은 알리바바를 위협할 가장 ‘무서운 맞수’. 현재 알리바바·아마존·이베이 등과 함께 글로벌 전자 상거래 빅4로 일컬어진다.

류창둥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974년생인 그는 명문대인 중국인민대 사회학과에 진학했지만 틈나는 대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그의 첫 창업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큰돈’을 벌 생각으로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요식업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에게 20만 위안(3600만원)을 빌려 베이징에 식당을 차렸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1996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사업 실패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던 류 회장은 빚을 갚기 위해 일본계 건강 보조 기구 업체인 일본생명에 입사했다.

대기업에서 2년 동안 업무를 익힌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식당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회계나 금융 시스템도 없었다.

1998년 류 회장은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선다.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일컬어지는 중관춘에 JD닷컴의 전신인 가전 판매 회사 ‘징둥공사’를 창립했다. 자본금은 1만2000위안(210만원)이 전부였다.

이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재고 관리부터 회계까지 직접 관리한 결과 이 회사는 5년 만에 누적 수익 1000만 위안(18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류 회장이 온라인에 진출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2002년 중국 전역에 닥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집밖에 나가는 것을 꺼렸다. ‘온라인 시장’에서 기회를 엿본 류 회장은 아예 오프라인 매장을 접고 온라인에만 집중하기 시작했고 2004년 ‘360바이닷컴’을 개설해 지금의 JD닷컴으로 키워 냈다.

이 회사의 성공 키워드는 ‘알리바바와의 차별화’다. 알리바바가 중국 내 전자 상거래 시장의 양적인 성장을 이끌었다면 JD닷컴은 ‘질적인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큰 무기는 ‘짝퉁 근절’과 ‘빠른 배송’이다. 엄격한 정품 관리 기준을 적용해 이를 위반한 업체에 대해서는 상품 1개당 100만 위안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중국 내에 123개 물류 창고와 3210개의 배송 거점을 구축한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중국 전역을 아우르는 배송 시스템으로 50% 이상의 상품을 ‘하루 만에 배송’할 수도 있다.

◆ 왕촨푸 BYD 회장, 배터리 이어 전기차도 세계 정복
'제2의 마윈' 꿈꾸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
왕촨푸 BYD 회장
설립연도 1995년 BYD 설립
창업 나이 29세
현재 나이 50세(1966년생)
주요 사업 배터리, 전기차 등 자동차 생산
성공 포인트 배터리 분야 연구원 출신의
높은 전문성과 ‘기술 중심’ 경영
개인 자산 350억 위안(약 5조8000억원)


‘테슬라를 제친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업체.’ 중국의 전기차 생산 업체 BYD를 설명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식어다.

‘당신의 꿈을 이뤄라(Build Your Dream)’는 의미의 회사 이름처럼 왕촨푸(王 傳 福) 회장 역시 맨주먹에서 시작해 지금의 성공을 일궈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왕 회장은 1966년 안후이성 우웨이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이란 어린 나이에 일찍 부모를 잃은 그는 큰형의 뒷바라지 덕에 석사과정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1987년 중난대 야금물리화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에서 배터리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원 생활을 이어 갔다.

26세의 이른 나이에 실험실 부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3년 광둥성 선전에 있는 연구원 산하 배터리 회사인 비거전지유한공사에 대표로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확인한 왕 회장은 1995년 외사촌 형에게 250만 위안(4억3000만원)을 빌려 충전용 휴대전화 배터리를 생산하는 BYD를 설립했다. 선전시의 낡은 차고에서 직원 20명과 함께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중국 내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급증하면서 배터리 수요 또한 폭발할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BYD는 2001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배터리업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왕 회장은 2003년 산시성의 시안친촨자동차 지분 77%를 인수하며 자동차 회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2008년 세계적 투자가인 미국의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2억3000만 달러를 들여 BYD의 지분 10%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BYD는 매출의 50% 이상을 자동차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

스스로도 기술자 출신인 왕 회장은 무엇보다 ‘기술자를 중시하는’ 경영 철학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배터리 연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온 그는 배터리는 물론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에도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경우 ‘타 회사의 동급 대비 절반 가격에 판매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위해 그 어느 기업보다 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 자웨팅 러에코 회장, TV부터 동차까지 ‘러스왕
'제2의 마윈' 꿈꾸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
자웨팅 러에코 회장
설립연도 2004년 러스왕 설립
창업 나이 31세
현재 나이 43세(1973년생)
주요 사업 온라인 스트리밍 동영상·콘텐츠 제작. 스마트TV·전기차 등
성공 포인트 젊은 시절부터 쌓아 온 다양한 창업 경험과
미래를 보는 투자 안목
개인 자산 528억 위안(약 10조원)


‘중국판 넷플릭스’라고도 하고 ‘중국판 유튜브’라고도 한다. 2004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러스왕(LeTV)으로 시작해 온라인 콘텐츠, 스마트 TV, 친환경 자동차, 가상현실(VR)까지 무섭게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

러스왕은 최근 러스의 생태계를 만들자는 의미로 사명을 ‘러에코’로 변경했다. 러에코는 중국 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절대 강자다. 현재 중국 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순방문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물론 TV 프로그램 10만 편, 영화 5000편 등 막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에는 16편의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자웨팅회장은 1973년 중국 산시성 린펀의 시앙펜현 출신이다. 대학에서 세무학을 전공한 그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1995년 산시성의 세무 공무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험을 즐기는 자 회장은 1년 만에 부모 몰래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러스왕을 창업하기 전 다양한 창업 경험을 쌓았다. 퇴사 직후인 1996년 설립한 석탄회사 ‘줘웨스예’가 그 시작이다. 대부분의 석탄 회사가 석탄 채굴 작업을 중심으로 할 때 자 회장은 과감하게 ‘석탄 세정’을 핵심 사업으로 내걸었고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가 선택한 사업 아이템은 통신기지국 설비 회사였다.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시베이얼퉁신커지’를 설립했다. 러스왕은 2004년 시베이얼퉁신커지의 이동통신사업부가 독립 회사로 분사한 기업이다.

자 회장은 ‘미래를 보는 투자 안목’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에 불법 복제물이 만연하던 시절 자 회장은 매우 싼값에 열심히 인터넷 판권을 사들였다. 이후 문화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면서 정부가 콘텐츠 불법 유통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하자 자 회장은 그때 사들였던 인터넷 판권을 비싼 값에 되팔아 대규모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콘텐츠=공짜’라는 중국인들의 인식을 역이용해 돈을 마련한 자 회장은 현재 이 같은 인식을 변화시켜 가며 또다시 사업을 키워 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TV 등 가전제품을 원가에 판매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러에코의 ‘유료 회원’을 모집했고 지금은 콘텐츠별로 가격을 책정해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전기차 시장에도 손을 뻗고 있다. 자 회장이 바로 2014년 미국에 설립된 패러데이퓨처스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테슬라 킬러’로 유명한 이 회사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 박람회(CES)를 통해 영화 ‘배트맨’ 속 배트맨을 닮은 콘셉트 카를 공개하며 단숨에 화제에 올랐다.

◆ 왕타오 DJI 회장, 글로벌 1위 ‘드론계의 애플’
'제2의 마윈' 꿈꾸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
왕타오 DJI 회장
설립연도 2006년 DJI 설립
창업 나이 26세
현재 나이 36세(1980년생)
주요 사업 카메라 달린 드론
성공 포인트 어렸을 적부터 ‘모형 비행기’ 덕후, 날리기
쉬운 드론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대한 집요한 연구
개인 자산 300억 위안(약 5조원)


세계 최초의 ‘드론 억만장자’로 불린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 1980년생으로 중국 최연소 IT 갑부 타이틀을 거머쥔 DJI의 왕타오 회장이다. 세계 최대의 상업용 드론 제조업체인 DJI는 현재 글로벌 시장점유율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드론 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일컬어지는 왕 회장은 항저우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공부 대신 모형 비행기 조립에 빠져 살았다. 상하이 화둥사범대 심리학과에 진학했지만 중퇴하고 홍콩과기대로 옮겨가 로봇과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당시 그가 이끈 로봇연구팀이 2005년 홍콩 로봇 경진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왕 회장은 이 상금으로 3억원의 사업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6년 광둥성 선전에 DJI를 설립했다.

왕 회장은 특유의 편집증적 집요함으로 유명하다. 2006년 DJI 설립 이후 2013년 팬텀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리기까지의 과정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왕 회장의 집무실에는 ‘머리만 들어갈 것, 감정은 빼고’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사무실 책상 옆에 간이침대를 두고 매주 80시간씩 먹고 자며 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즐기던 드론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 청웨이 디디추싱 회장, ‘우버’ 삼킨 젊은 피
'제2의 마윈' 꿈꾸는 중국의 신흥 'IT 부자들'
청웨이 디디추싱 회장
설립연도 2012년 샤오쥐커지(디디추싱의 전신) 설립
창업 나이 29세
현재 나이 33세(1983년생)
주요 사업 택시 등 차량 공유 서비스
성공 포인트 알리바바에서 근무하며 익힌 사업 수완,
애널리스트 출신 사업 파트너
류칭 사장과의 시너지
개인 자산 65억 위안(약 2조원, 중국 우버 인수 전 기준)


최근 중국에서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IT 업계의 젊은 피는 단연 청웨이 디디추싱 회장이다. 2012년 출범한 디디추싱은 중국 최대의 차량 공유 업체로 ‘중국판 우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디디추싱의 점유율은 80%가 넘는다. 디디추싱은 지난 8월 1일 우버의 중국 내 브랜드·사업·데이터를 모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판 우버’가 ‘진짜 우버’를 삼키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합병 이후 디디추싱의 기업 가치는 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청 회장은 1983년 장시성의 시골 마을 출신이다. 2005년 베이징 화공대에서 행정관리학을 전공한 뒤 알리바바에 입사했다. 첫 6년간은 B2B 사업 분야에서 영업을 익히며 탁월한 실적으로 최연소 매니저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2011년 B2C 사업부문의 부총경리로 승진해 2년 동안 결제회사 알리페이의 가맹점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모바일 지불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청 회장은 2012년 6월 알리바바에 사표를 던지고 샤오쥐커지를 창립했다.

“인터넷으로 중국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품은 그는 3개월 만에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인 디디다처를 만들어 냈다. 알리페이의 결제 시스템 업무를 경험한 덕분에 편리한 결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시장을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15년 중국 내 가장 큰 경쟁자로 일컬어졌던 콰이디다처와 합병하며 디디콰이디로 거듭났다. 이후 205년 9월 디디추싱으로 개명했다.

디디추싱에는 청 회장 외에 주목받는 IT 리더가 한 명 더 있다. PC 업체 레노버의 류촨즈 창립자의 딸로 더 유명한 류칭 사장이다. 베이징대와 하버드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골드만삭스에서 12년간 애널리스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2014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디디추싱에 합류해 2015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청 회장과 류 사장의 사무실은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맞붙어 있다. 영어에 능숙하고 미국의 비즈니스 문화에 익숙한 류 사장은 디디추싱이 애플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버와의 합병 과정에서도 역할이 컸다. 알리바바의 경험을 통해 사업 수완을 쌓아 온 청 회장과 은행과 금융 관련 배경 지식으로 무장한 류 사장의 팀워크가 디디추싱 성공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vivajh@hankyung.com
사진 한국경제 DB·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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