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동북아의 분업 네트워크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 동북아 지역, 즉 한중일 3국은 왜 산업이 강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곳에서야말로 산업들 사이에 진정한 경쟁과 협력 관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과 협력의 공존 상태, 즉 영어로 ‘코피티션(copetition)’이란 개념은 경영학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하버드대 교수들이 창안한 용어다.

기업들이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상황을 표현하려는 용어지만 어쩌면 이미 한중일 3국에서는 산업들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던 현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통 한중일 3국의 산업 간 협력보다 경쟁 현상이 더 뚜렷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산업이라고 인식하는 주요 제조업 대부분에서 이들 3국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고 그 경쟁의 치열함은 이미 누구에게나 잘 보이기 때문이다.

철강·전자·조선·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중화학 분야에서 이미 한중일 3국은 전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공급처가 돼 있다. 또 이들 3국이 이 분야들에서 공급과잉을 불러오는 주요 원흉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들 산업에서 한국은 1970~1980년대에 일본 산업의 절대 우위를 넘어서려고 발버둥친 바 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위를 맛보다가 최근에는 중국에 주도권이 넘어가는 상황까지 맞았다.

그렇게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을 거치면서 중국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한 경쟁 상황은 이제 첨단 산업 쪽으로 번져가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반도체에 이어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3국의 경쟁은 점점 더 가열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야들에서도 중국의 우위가 심화돼 가는 양상을 보일 것은 불문가지다.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러한 3국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야말로 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산업들의 경쟁 상황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중일 3국의 산업 간 협력이 전개되고 있는 모습도 특별하다. 한중일 3국 사이에 이들 주요 산업과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부품·소재의 교역 모습을 보면 점점 더 심화돼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동북아의 분업 네트워크
(일러스트 김호식)

비록 대부분의 완성 제품 산업에서 일본의 우위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핵심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일본의 기술적 우위는 아직 절대적인 수준으로 간주해도 틀림이 없다.

그런 일본의 핵심 부품·소재는 한국과 중국의 완성 제품 산업으로 들어가 이들 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동안 한국의 부품·소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생각했던 중국 산업들이 만든 부품·소재들이 한국의 완성 제품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즉, 수면 위에서는 치열한 경쟁 양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들 3국의 산업들은 서로의 장점을 활용하는 협력 관계를 치밀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중일 3국 산업의 경쟁과 협력 관계는 북미나 유럽 등 다른 제조업 강세 지역에서 그렇게 발달하지 못한 독특한 분업의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들이 이러한 한중일 3국 사이의 경쟁과 협력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중국 산업이 절대적으로 한국에 의존하고 있던 시절을 회상하며 아직도 중국 산업을 경쟁 상대로만 생각하고 기술적 협력을 기피한다면 그런 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매년 열리는 세계적 산업 전시회에서 중국 산업의 기술력이 높아 가는 모습은 눈부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 산업의 기술력이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이들과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한중일 3국이 개척해야 할 새로운 경쟁과 협력 분야는 신산업 분야일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한중일 3국 어느 나라가 우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력을 강조하는 분야에서는 아직 일본이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하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분야와 시장의 크기에 의존하는 분야에서는 중국이 아무래도 우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신산업은 아마도 우리 산업들이 가졌던 역동성 그리고 소비자들의 빠른 수요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 등에서 실력을 발휘해 일본과 중국의 신산업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전통 산업에서 그러했듯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3국 신산업이 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