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승마와 첫 인연…취미로 시작해 승마클럽 대표까지
올해 4월 경기도 화성에 직접 승마장 개장 (사진) 김영규 ‘말달리자’ 승마클럽 대표가 자신의 애마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헌 기자
[한경비즈니스= 김태헌 기자] “승마할 때가 가장 행복해 결국 승마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김영규(46) 화성시 말달리자 승마클럽 대표는 취미로 즐기던 승마를 올해 4월 제2의 직업으로 택했다. 이미 잘나가는 금융맨이었지만 안정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거는 ‘모험’을 과감히 택한 것이다.
김 대표가 처음 승마와 인연을 맺은 것은 금융업에 종사하던 2003년. 당시만 해도 승마는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운 좋게 그는 한국마사회에서 진행하는 전 국민 승마 체험 교육을 통해 승마를 접할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그를 승마 초보에서 동호회 회장으로, 또 승마장 대표로 탈바꿈시켰다. 승마가 미치도록 좋아 승마장까지 열게 됐다는 김 대표를 지난 9월 13일 만났다.
◆ 온라인 동호회가 모태
김 대표는 14년 전 처음 승마를 접한 뒤 승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만 해도 국내 승마 인구가 1만여 명 수준에 불과했으니 초보자들이 승마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대표는 이런 어려움이 승마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하고 온라인을 통해 머리를 맞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승마 동호회 ‘말달리자’는 2003년 4월 10여 명의 회원으로 첫 역사를 시작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조그마한 동호회는 1만5000명의 회원이 가입한 국내 최대 승마 동호회로 성장했다. 국내 승마 인구가 4만여 명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회원을 가진 셈이다.
동호회원이 늘수록 김 대표는 승마에 더욱 애정과 열정을 쏟았다. 1만 명이 넘는 동호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승마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도 있었다.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승마장을 찾았고 사회인 연맹 한일전에도 4번이나 출전해 국제 경험도 쌓았다.
김 대표는 2011년 승마연합회 최우수 선수, 2012년 장애물 비월 최우수 선수로 뽑히는 등 아마추어 승마인 사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로 차츰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만 승마를 즐기기보다 말을 타는 즐거움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
회사 업무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동호회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승마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회원들에게 승마를 지도하고 카페에 흥미로운 승마 정보를 알리는 것이 더 즐겁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카페에 가입했던 이들도 김 대표의 노력에 점차 오프라인 모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이렇게 활성화된 말달리자는 2010년 선수단을 만들었고 지난해 한중 민간 승마 대항전을 개최해 세계로 무대를 넓혀 갔다.
동호회는 제주도·몽골 등지를 돌며 외승(승마장 밖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말을 타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호회 교육 프로그램은 어느덧 152기, 2000명 이상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동호회에 참여한 이들은 법조·의료·금융계는 물론 농업인·교사·항공기 기장 등도 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이지만 승마라는 취미로 ‘하나’가 됐고 이는 ‘인생’ 자체를 즐기는 모임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런 모임이 지속되면서 말달리자에서는 벌써 7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써 내려온 말달리자는 말 산업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공헌하고 있다. 회원 중 일부는 승마 전문가 과정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주관의 ‘승마지도사 2급’과 한국마사회 주관의 ‘승마지도사’,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전문가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말달리자에서는 어렵기로 소문난 문체부 승마지도사 2급 합격자 30명 중 10%인 3명을 배출했다. 전국 400여 곳의 승마장에서 수백여 명이 도전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합격률이다. (사진) 김영규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승마대회 참가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말달리자 제공
◆ ‘홈구장’ 없어 고민하다 아예 창업
회원 수와 회원들의 기량이 나날이 늘었지만 매주 정기 모임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승마장이 없다는 점은 언제나 김 대표의 고민이었다. 이미 기존 승마장에는 다른 회원들이 상주했기 때문에 매번 이들과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팀은 있지만 홈구장이 없는 셈이었다.
결국 이런 고민은 말달리자 동호회의 이름을 딴 ‘말달리자 승마클럽’을 개장하는 것으로 해결됐다. 김 대표는 승마장 개장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가족의 생각은 달랐다.
김 대표가 승마장을 연다고 했을 때 부인을 포함해 두 딸도 펄쩍 뛰었다. 부인은 지금 하는 일에 더 집중하길 바랐고 두 딸은 아빠가 더 바빠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승마라는 ‘단어’에 자연스레 미소를 띠는 가장이자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결국 가족들도 응원군으로 돌아섰다.
김 대표는 큰돈을 승마장에 투자했지만 전혀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동호회 회원과 승마장 고객으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았기에 승마인을 누구보다 만족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김 대표의 전략이 적중해 승마장 개장 초기지만 매월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달리자 승마클럽을 찾았다.
‘금융맨’과 함께 승마장 대표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가지게 된 김 대표는 “지금의 승마장을 정착시키고 더 많은 승마인들이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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