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김영란법 신풍속도 : 허리띠 죄는 음식점들]
재료 바꾸고 서비스 줄이며 안간힘…호텔업계 “오찬 대신 조찬 세미나 늘 듯”
‘2만9900원 맞춤 정식’ 메뉴판에 ‘김영란’ 마크도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요식업 종사자들의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김영란법에서는 공직자와 배우자 등 약 400만 명을 대상으로 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제한 등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고급 한정식집은 물론 삼겹살집 등의 이용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일부 요식업체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가격을 낮추거나 기존 메뉴의 종류 변경과 재료의 양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영업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의도의 한 일식집 관계자는 “보통 저녁 메뉴는 3만원이 넘기 때문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매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저가 메뉴를 내놓을지 손님들의 의견을 들어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 충정로의 한 한정식집 주인은 “점심 메뉴는 최하 2만원, 저녁은 5만원”이라면서 “저녁은 대부분이 술이 포함되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도 손님을 접대하는 이들을 받기는 어려울 듯해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이들 식당 관계자들은 쇠고기의 경우 한우 대신 수입산을, 김치는 중국산을 쓰는 등 단가 인하에는 여러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간 쌓아 올린 식당 이미지가 일순간에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를 주저하고 있다.

해초 바다 요리 브랜드 ‘해우리’는 지난 7월 헌법재판소에서 김영란법 합헌 결정이 내려지자 1인 2만9000원인 ‘해우리 저녁 특정식’을 판매한다고 밝혔고 불고기 프랜차이즈 ‘불고기브라더스’는 김영란법에 맞춰 메뉴판에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만들기에 함께한다’는 문구와 함께 2인분에 5만9800원 하는 불고기 세트 메뉴를 선보였다.

또 메뉴명 옆에 ‘김영란’이란 마크를 넣어 1인 기준 3만원 이하 메뉴인 것을 알리고 있기도 하다.
‘2만9900원 맞춤 정식’ 메뉴판에 ‘김영란’ 마크도
◆“식당 들어가는 것만 신고해도 조사”

김영란법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곳은 일반음식점뿐만 아니다. 호텔업계도 세미나와 관련해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별도의 ‘김영란법 메뉴’를 개발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세미나의 경우 오찬보다 가격이 보다 저렴한 조찬으로 예약이 몰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음식점 매출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일부 식당은 서빙과 고기를 구워주는 등의 업무에 종사했던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 인하를 준비 중이다.

또 커피숍·호프집·노래방 등 1차 이후의 2차로 찾는 요식업종 종사자들은 더 큰 우려감을 표한다. 물론 각자 계산을 통해 식사 이후 일정을 소화할 수도 있지만 이전보다는 소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매출 감소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민간뿐만 아니라 이미 정부에서도 김영란법을 염두에 둔 식단이 등장했다. 과거 고위 당정청 조찬 회의의 경우 총리실은 호텔식 서비스로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제공했지만 지난 9월 21일 열린 고위 당정청 조찬 회의에는 9000원짜리 전복죽이 이를 대신했다. 반찬은 김치·무말랭이·콩자반 등 세 가지만 나왔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당정청 조찬 회의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법 시행을 앞두고 국민 정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은 누군가 식당에 들어가는 것만 해당 부처에 신고해도 조사를 시작할 수 있게 돼 있고 무혐의가 나와도 또다시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는 등 문제가 많은 법”이라면서 “형사법상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어떻게 처벌된다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또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작년 6월 기준 대출이 520조원에 달한다”며 “대부분의 음식점이 빚을 떠안고 영업을 하는데 이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법이 시행되면 자영업자, 골프장 캐디 등 힘없는 서민이 가장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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