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학자 한자리에…시장경제 교육 강화 등 한목소리 (사진) 피터 뵈케 조지메이슨대 교수.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마이애미(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세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 등 반(反)시장주의가 세계경제를 ‘퓨바(fubar : 완전히 고장 난 기계)’로 만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세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몽펠르랭 소사이이어티(MPS) 연례 총회에서다. 행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지난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닷새간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은 경제 위기를 자유무역과 규제 완화 등 정공법(正攻法)으로 풀어야 부작용이 적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반시장주의 주장을 물리치기 위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과 장점을 가르치는 교육이 강화되고 젊은 학자들이 더 많이 시장경제 연구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보호무역주의는 부작용 큰 대증요법
세계적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행사 첫날인 9월 19일 오찬 연설에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보호무역과 정부의 시장 개입 등 쉬운 해법을 찾으려는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주의 등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어 누가 집권하든 미국 경제가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미국 경제를 ‘스내푸(snafu : 엉망진창이라는 뜻의 미군 은어)’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퓨바’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임스 가트니 플로리다대 교수는 “경제난을 이겨내는 길은 경제 자유도를 높이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86년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에서 세계경제자유지수를 처음 만든 주인공이다.
이 지수는 각국의 ▷정부 예산 등의 크기 ▷재산권 보호 시스템 ▷자금의 용이한 접근 ▷무역 자유도 ▷정부 규제도 등 5가지를 평가해 매년 경제자유지수 순위를 매기고 있다. 한국은 올해 157개국 중 42위를 차지했다.
가트니 교수는 “경제난을 보호무역이나 재정 투입 등 대증(對症)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며 “1930년대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 됐던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부작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1930년 2만 개의 해외 농산품 및 공산품에 대해 최고 400%의 고율의 관세를 매김으로써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전쟁의 단초가 됐던 법이다.
총회 참석자들은 현재 세계가 경제 침체의 해법을 놓고 포퓰리즘이냐, 구조 개혁이냐는 ‘프레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행사 이틀째인 9월 20일 ‘미국 재정정책의 전환점 : 경기 부양인가, 구조 개혁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재정정책 방향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테일러 교수는 최근 15년간 네 차례(2001년, 2008년, 20009년, 2012년)에 걸쳐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자를 실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테일러 교수는 “일각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수요를 일으켜 경기를 진작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이론”이라며 “재정정책의 대대적인 방향 선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취직 유리한 계량경제학만 가르쳐” (사진) 제임스 오트슨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총회 참석자들은 반(反)시장주의 물결에 맞서기 위해 ‘교육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유럽 등 전 세계를 휩쓸던 공산주의와 수정자본주의의 바람에 맞서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파리 몽펠르랭에서 첫 모임을 가질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자성이었다.
앨런 C. 코즈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미국 대학 중 자유주의 사상가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가 얼마나 되느냐”며 “대부분이 계량경제학만 할 뿐 자유주의 사상이 왜 필요하고 인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가르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영백 세인트존스대 교수도 “뉴욕 뉴스쿨대나 유타대 등 일부 좌파 성향 대학을 빼고는 경제사상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모두 취직에 유리한 계량경제학만 가르치다 보니 경제학을 왜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같은 상황이다 보니 조금만 경제가 어려워도 보호무역 등 반(反)시장주의가 창궐하고 거기에 논리적으로 대응할 집단 지성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학자 개개인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임스 오트슨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10~20대)들에게 ‘사업(business) 하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느냐’고 물으면 ‘도둑질(theft)’이라고 답한다”면서 “이런 세대들에게 자유주의를 강의하려면 ‘왜 저런 과목을 가르치느냐’는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기존 사상에 합리적 회의를 놓지 않고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주목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9월 23일 임기 2년의 MPS 회장에 선출된 피터 뵈케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포퓰리즘·반시장주의와의 싸움은 길고 처절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젊은 경제학자들이 더 많이 자유주의 사상을 배우고 토론하는 계기를 많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용어 설명 =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PS)’]
1947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과 함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주의 경제 이념을 연구, 전파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하이에크를 비롯해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제임스 뷰캐넌, 로널드 코스, 버논 스미스, 개리 베커, 모리스 알레 등 8명의 회원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회원은 60개국 700명 정도다.
다음 총회는 내년 5월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다. 주제는 ‘경제적 자유 :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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