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끝내지 못한 과제가 기억에 더 오래 남아…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의 바비와 보니
‘자이가르닉 효과’ 못 이룬 첫사랑과 우연히 만난다면
(사진)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의 한 장면.

[한경비즈니스=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첫사랑이 (타인과) 결혼해 못살면 가슴 아프고 잘살면 배가 아프고 (나랑) 같이 살면 머리가 아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카페 소사이어티’는 첫사랑을 소재로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다. 때는 1930년대, 뉴욕 출신 사내 바비(제시 아이젠버그 분)는 출세를 위해 할리우드로 온다.

그는 이미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거물로 성장한 삼촌 필(스티브 카렐 분)을 찾아간다. 삼촌에게 의탁하기 위해서다. 바비는 할리우드에서 매력적인 여인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에게 혹한다. “첫눈에 반했어요. 영화배우인 줄 알았어요!”

◆ 첫눈에 반하는 시간 0.1초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남녀가 서로를 만나 첫눈에 반하는 데 단 0.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짜릿한 0.1초의 순간을 주관하는 뇌 부위는 이성과 관계된 대뇌피질이 아니다.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이 자신의 운명의 짝인지 아닌지’ 직관적으로 안다는 소리다. 의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감정이 먼저고 논리는 그다음이다.

문제는 삼촌 필의 비서이기도 한 보니가 삼촌과 내연 관계라는 점. 사랑은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대하드라마지만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시시한 멜로드라마다. 바비와 보니의 사랑도 그렇다. 삼촌과 조카가 연적이라니 이 무슨 삼류 치정극이란 말인가.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은 이렇게 신파조가 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남녀가 짝을 고르는 기준은 판이하다. 남성은 무엇보다 젊고 예쁜 여성을 좋아한다. 경제적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젊고 예쁜 신체는 출산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고 건강하고 매력적인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최우선한다. 외모와 젊음은 그다음이다.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많이 퍼뜨리는 게 최대 목적이다. 반면 여성은 짝이 자신의 몸에서 나온 아이를 잘 키워 줄 든든한 후원자로서 적합한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화려한 할리우드 상류층의 삶을 꿈꾸는 보니. 그녀와 가난한 청년 바비와의 애틋한 사랑은 끝내 파국을 맞는다. 보니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자신의 보스이기도 한 필과 결혼한다. 여성들의 진화적 본능은 십중팔구 이수일의 순애보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더 끌린다.

보니를 단념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 그는 상류층을 고객으로 하는 고급 사교 클럽을 운영해 성공한다. 바비는 보니와의 사랑이 맺어지지 못한 것은 자신의 낮은 경제적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그의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바비가 클럽에서 만난 멋진 상류층 이혼녀와 결혼한 것도 보니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왜 이리 오래 생각날까. 심리학에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게 있다. 마치지 못한 과제는 마친 과제보다 더 오래 기억 속을 떠돌며 여러 가지 판단에 강한 영향력을 주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마치지 못한 중요한 과제처럼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그러므로 세월이 흘러 잠시 귀향한 삼촌 필을 따라 보니가 자신의 사업장에 나타났을 때 바비에게 심리적 동요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보니 또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남편 몰래 금지된 장난에 빠져든다.

“결핵보다 짝사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걸!”
“사랑은 이성적일 수가 없어. 사랑은 빠지는 거야. 제어할 수 없어.”
“삶은 코미디예요.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죠.”

역시 장황한 심리학적 논리 전개보다 시 한 구절, 영화 대사 한마디가 훨씬 낫다. 주인공들이 무심결에 툭툭 던지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화살처럼 툭툭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건들거리는 듯 애틋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와 애잔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눈빛 연기가 일품이다.

내심으로는 소박하지만 진중한 삶을 원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화려하지만 부박한 삶을 선택한 두 남녀. 바비와 보니의 재회는 통제 불가능한 롤러코스터처럼 위험한 곡예를 거듭할까, 아니면 아련한 추억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질까.

영리하게도 우디 앨런 감독은 다시 만난 두 사람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이다. 마지막 장면의 두 사람, 특히 크리스틴의 표정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