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부회장의 세계 : 오너가 부회장들]
정의선 부회장도 탄탄한 경영 수업 받아, 정용진·박성경은 부회장만 10년째
‘회장 같은 부회장’ 이재용·김남구… 부친 예우해 승진 미뤄
[한경비즈니스 = 조현주 기자] “올해는 과연….” 해마다 연말 인사철이 되면 주요 그룹의 인사 개편에 관한 각종 설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이슈는 오너 일가의 승진과 관련된 소식일 것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선대 오너로부터 경영권과 지분까지 물려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부회장에 머무르는 이가 적지 않다 보니 연말이면 이들의 회장직 승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곤 한다.

‘부회장’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회장님’이라고 여겨지는 오너 일가 부회장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 ‘회장 같은 부회장’, 이재용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입원 이후 사실상 그룹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2년 12월 삼성전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2년 가까이 삼성그룹을 이끌어 왔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2003년 같은 팀 상무로 올라갔고 2007년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 전무로 승진한 뒤 2009~2010년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중·장기 사업 추진이나 그룹 성장 동력 발굴 등 주요 업무를 무리 없이 처리해 왔다. 이제 회장 취임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 이상 경영권 승계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친인 이 회장이 아직 살아있는 상황에서 회장 취임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도 당분간 부회장직을 이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3세 경영이 본격화된 재계 2위 현대차의 상황은 어떻게 다를까.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건재하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주변의 압박이 덜한 편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그 뒤 일본 무역회사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1999년 12월 현대차 구매담당 이사로 입사하며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입사 1년 4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한 그는 2002년 현대차 국내 영업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2003년에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한 뒤 2009년부터 현대차 부회장을 맡아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관여했다.

올해로 부회장만 8년 차다.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친 정몽구 회장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로서 탄탄하게 입지를 다져 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3세 경영인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그룹의 ‘준비된 리더’로 불리고 있다. 정 부회장의 모친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다. 이 회장의 장남인 정 부회장은 1995년에 신세계백화점 이사로 입사해 2006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엔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으며 사실상 경영 승계를 확정 지은 상태다.

정 부회장이 ‘준비된 리더’로 불리는 이유는 일찌감치 그룹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재학하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대우이사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돌입했다. 11년간 경영 수업을 받다가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회장직에 오르면서 경영 일선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

정 부회장은 부회장 재임 기간만 놓고 보면 재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기간이 긴 편이다. 2006년부터 만 10년 가까이 부회장에 머무르고 있다.

부친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모친 이명희 회장이 모두 생존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부회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1943년생인 이명희 회장은 현재 만 73세로 직접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 김남구, 최대 주주이지만 여전히 부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오랫동안 그룹을 이끌어 왔고 지분 승계도 마쳤다. 김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 지분 20.2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부회장이 여전히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이유는 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만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룹은 다르지만 경영 일선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김 부회장이 부친을 존중해 회장에 오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 부회장은 1987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동원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가 동원산업 입사에 앞서 4개월 동안 원양어선을 탄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1986년 대학을 마칠 무렵 해역이 험하기로 유명한 러시아 베링해에 나가 명태잡이 배에서 하루 16시간 동안 그물을 던지고 명태를 잡았다고 한다. “경영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아버지 김재철 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후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1991년부터 25년 동안 금융투자업계에만 몸담아 왔다.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이듬해 6월 동원증권보다 덩치가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곧바로 시가총액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출범시킨 뒤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5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겸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2011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직에 올랐다.

대림산업의 이해욱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부친을 대신해 오너 역할을 맡고 있다. 대림그룹은 오너 2세인 이준용 명예회장이 201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 이해욱 대림코퍼레이션 대표가 대림산업 부회장직에 오르면서 대림그룹의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준용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림그룹의 회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회사의 각종 공식 행사에 그룹의 대표인 이해욱 부회장이 아닌 자리에서 물러난 이 명예회장이 참석하는 일이 잦아 3세 경영 체제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 명예회장은 지난해 9월 ‘인천 남구 도화동 1호 뉴스테이 착공식’, 지난해 11월 국무총리 초청 전경련 회장단 만찬, 지난해 11월 22일 제2롯데월드 상량식 등 굵직한 행사에 대림그룹을 대표해 참석했다.

대림그룹은 건설회사 특유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로 유명하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이 회장직을 맡기엔 아직 젊다는 인식이 있고 그룹 내에서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부회장직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미국 덴버대 경영통계학과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 석사를 마쳤다. 27세인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했우며 4년 뒤인 1999년 대림산업 구조조정실에 상무보로 임명됐다.

이후 대림산업 상무(2001년), 대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 사장(2004년), 대림산업 부사장(2005년) 등을 거쳐 2010년 대림산업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2010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올라섰다.

◆ 부회장 10년 차, 박성경 부회장

재계에서 부회장으로서 재임 기간이 긴 인물로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박 부회장은 정용진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2006년 부회장에 취임했다. 박 부회장의 오빠는 이랜드 창업주인 박성수 회장이다.

박 부회장은 1979년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이랜드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 여성복 사업부와 생산총괄사업부 대표를 거쳤다. 1991년 제롤라모 대표에 오른 뒤 1994년 이랜드월드 대표이사와 디자인총괄을 맡았다. 2006년 이랜드그룹의 부회장직에 오른 뒤 그룹의 대외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경영 수완이 좋은 ‘여장부’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생산구매 총괄법인인 이랜드월드의 대표를 맡던 시절, 중국·인도·파키스탄 등을 통한 해외 의류 조달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해외 사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박성경 부회장은 오랜 시간 오빠인 박성수 회장을 도우면서 이랜드그룹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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