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리포트]
‘원브랜드숍’에서 ‘멀티브랜드숍’으로 바뀐 소비심리…클리오 등 중소형 브랜드 수혜



[정리=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시장은 변한다. 환경은 항상 바뀌고 기업은 그에 적응해 가는 유기체와 같다. 수요가 공급을 이끌 때도 있지만 공급이 새로운 시대를 열 때 더 큰 변화를 초래한다.

포화된 화장품 유통시장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올리브영’이라는 새로운 채널이 등장했다. 이를 필두로 국내에 헬스&뷰티(H&B) 스토어 시장이 급성장하며 변화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화장품 시장 ‘판 흔든’ H&B 스토어
(사진)올리브영 매장 내부 모습/ 제공=올리브영

◆H&B 스토어, 2025년 4조5000억 시장

국내 화장품의 유통 구조는 특이한 측면이 있다. 화장품 업체들이 브랜드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유통망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들은 자사의 브랜드 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원브랜드숍’을 통해 화장품을 유통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이나 LG생활건강의 ‘보떼’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이미 시장에 거대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을 제외하고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매듭을 푸는 데 성공한 것이 바로 국내 대표적 H&B 스토어인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이다. H&B 스토어는 화장품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드럭스토어다.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덕분인지 최근에는 GS리테일의 ‘왓슨스’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 H&B 스토어 시장의 규모는 2016년 기준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국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14조원대다. 아직 전체 화장품 시장에서 H&B 스토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하지만 향후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화장품 판매 중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과 LG생활건강의 ‘보떼’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하지만 합리적인 구매를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맞물려 ‘멀티 브랜드숍’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H&B 스토어가 ‘원 브랜드숍’을 침식해 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 H&B 스토어의 성장 규모는 글로벌 평균인 18%까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원 브랜드숍의 시장까지 일정 수준 대체한다고 가정하면 최대 20%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향후 5배 이상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특히 올해부터 유통 대기업들의 진출이 본격화되는 만큼 점포 수 증가 폭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H&B 스토어의 시장 규모는 1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8% 성장할 전망이다. 2025년 H&B의 시장 규모는 4조5000억원으로, 전체 화장품 시장의 8.2%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시장 ‘판 흔든’ H&B 스토어
◆아모레퍼시픽·LG생건 ‘위기 요인’

H&B 스토어의 등장은 화장품 판매에서 브랜드와 유통이 분리돼 있던 ‘2003년 이전’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제품의 퀄리티와 브랜드 구축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변화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과 같은 메이저 브랜드들은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화장품 시장의 소비 트렌드 변화가 원 브랜드숍에서 ‘멀티 브랜드숍’으로 이동한다고 가정할 때 100%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로 채워져 있는 아리따움이 얼마나 소비자들에게 계속 어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모레퍼시픽으로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화장품 유통 판매 전략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올리브영에서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인 라네즈와 마몽드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아리따움 매장의 판매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주들의 반발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3년간 아리따움은 ‘에어쿠션’과 같은 대형 히트 상품과 중국 수출 제품의 확대 등을 동력으로 외형적인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소비 트렌드는 다양한 제품을 비교하고 합리적 구매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아리따움은 H&B 스토어와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화장품 시장 ‘판 흔든’ H&B 스토어
이에 비해 클리오·닥터자르트 등 중소 화장품 기업들에 H&B 스토어의 성장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는 업체는 색조화장품 전문 업체인 클리오다. 2015년 기준 클리오의 H&B 스토어 매출 비율은 전체 매출의 30%를 넘어섰다. 클리오는 앞으로도 H&B 입점 매장 수가 300개 이상 증가하는 등 외형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또한 한국화장품·코리아나 등 기술력과 인프라를 보유하고도 판매망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종합 화장품 기업들도 부활을 노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불화장품의 판매법인인 잇츠스킨은 최근 모회사인 한불과 전격적인 합병을 발표했다. 향후 한불은 GS리테일의 H&B 스토어인 왓슨스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H&B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새로운 유통 채널을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잇츠스킨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월 20일 종가 기준 4만8950원을 기록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 메이저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에 역시 긍정적이다. 바이어들 간 경쟁 심화는 언제나 이들 ODM 업체들에 우호적인 사업 환경이다. 신규 바이어와 계약,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고 글로벌 브랜드들의 중저가 브랜드들에 대한 신규 수주가 가능하다. H&B 스토어들도 이미 자체상표(PB)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