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 내세워 ‘차별화’…고령층 일자리 창출까지 ‘일석이조’
휴게소는 여행 중 잠깐 들르는 장소라고 흔히 생각한다. 24시간 이용하는 주차장·화장실은 물론 요깃거리를 즐기는 공간일 뿐이다.하지만 일본 휴게소에선 해당 지역의 농산·토산물을 메인 상품으로 배치하는 차별화 전략에 익숙하다.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점포·상품으로 구성된 라인업만 보유한 한국 휴게소와는 꽤 다르다. 한국이 전국구의 범용 상품인 반면 일본은 지역구의 특화 상품을 전면에 내세운다.
최근엔 휴게소 탐방 자체를 투어 목적으로 하는 여행객까지 생겨났다. 휴게소가 지역 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부각되면서 고정관념을 넘어선 것이다.
특정 테마를 내세워 휴게소 자체를 방문 목적으로 승화한 부활 사례도 돋보인다. 일부는 고령사회에 걸맞게 전통 입맛을 고집하며 방문객을 늘리기도 한다. 모두 기존의 휴게소 비즈니스와 차원이 다른 혁신적 부가가치 창출 공간으로의 변신이다.
◆휴게소에 집결된 ‘할머니 파워’
휴게소의 변신은 무죄다. 더욱이 차별화된 지역 컬러를 활용해 사회문제의 해결은 물론 새로운 수익 모델로까지 진화한다면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일본은 현재 휴게소의 진화 실험이 한창이다. 뚜렷한 비교 우위가 아니면 버텨내기 힘들 정도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서다.
2016년 10월 현재 일본열도엔 1117개의 휴게소가 있다. 1993년 103개(등록)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10배나 급증한 결과다. 대부분은 고전한다. 집객 한계 때문이다.
역으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절실하다. 대체적인 포인트는 ‘지역 회귀’다. 안전·쾌적한 도로를 이용하기 위한 시설 제공만큼 중요한 게 지역 번성을 위한 가치 창출로 요약된다. ‘지역과 함께 만드는 개성 넘치는 번화로운 공간’이 기본 개념이다.
2012년엔 휴게소연락회라는 조직도 상설화됐다. 휴게소에 관한 정보 교환은 물론 상호 연대 등을 통한 품질 향상이 주된 목적이다. 넓게는 휴게소의 활성화로 해당 지역의 지역 진흥과 서비스의 혁신 기여에 매진한다. 전국 조직으로 하위에 모두 9개의 지역 블록을 설치해 다양한 형태의 강습회·세미나·이벤트 등을 기획·운영한다. 휴게소의 3대 기능도 설정했다. 휴게(refresh), 지역 연대(community), 정보 발신(information) 등이다.
24시간 주차장·화장실·쓰레기통 등 휴게시설의 제공은 기본이다. 도로·관광·긴급의료 등 각종 정보의 제공 기능도 중요하다. 압권은 문화 교양을 비롯해 관광시설 등 지역 진흥을 통해 지역과의 교류 접점을 제공하는 연대 공간의 강조다. 휴게소마다 특색·개성을 표현해 지역 문화를 알림으로써 고객 만족과 수익 확보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먼저 휴게소 판매만으로 1000만 엔을 벌어들이는 고령 주민들의 등장이다. 산골짜기 기후현에 자리 잡은 휴게소(할머니시장·야마오카)는 연 50만 명의 손님이 찾는 지역 명소로 진화했다.
휴게소 명칭에 ‘할머니시장’이 들어갈 정도로 이곳은 고령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휴게소 식당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해당 지역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중핵이다.
이들이 만드는 인기 메뉴(어머니맛정식)는 철저한 지산지소(地産地消)가 강점이다. 모든 음식은 직접 할머니들 손으로 만들어져 이른바 ‘엄마의 손맛’을 맛보려는 중·장년에게 호평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만든 먹거리는 모두 이들로부터 고안·출시됐다. 그 덕분에 휴게소는 ‘고령자의 생산·제조·판매’로 장수 사회의 대안 모델로까지 거론된다.
◆지역재생의 원천이 된 휴게소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공품도 고령 주민의 손에서 제작된다. 생산자의 평균연령은 75세다. 대부분이 가공품 제작 및 식품 제조 면허 취득을 환갑 이후 시작했다. 일종의 고령 창업이다.
성과는 눈부시다. 쌀가루로 만든 전통 과자(가라스미)를 만드는 공동 창업의 할머니 4인방은 연간 730만 엔의 매출액을 올리며 지역 스타로 떠올랐다. 70대 부부가 만든 떡은 연매출 1150만 엔까지 기록하는 히트 상품으로 변신했다.
휴게소가 아니었다면 무력한 노후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던 이들이 생계 유지는 물론 가치 창출의 주체로 변신한 셈이다. 지역 특화 테마를 내세워 성공한 모델도 있다. 지바의 휴게소(발효마을 고자키)는 발효를 내세워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원래부터 술을 비롯한 된장·간장 등 발효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2015년 오픈한 휴게소는 현재 ‘발효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신선 채소는 물론 누룩을 사용한 요리 식당은 600개 아이템을 자랑하는 발효 제품과 함께 휴게소의 간판 주자다.
주민 1000여 명에 불과한 과소 지역에 연 65만 명의 고객이 찾아오는 문전성시의 주역이다. 연간 매출만 6억2800만 엔(2016년)에 이른다.
휴게소를 지역 재생의 출발 기지로 삼는 시도도 주목된다. 이바라키의 휴게소(우쓰노미야 낭만마을)는 종합상사처럼 지역 자원을 총동원해 그 자체를 이색 여행의 거점으로 삼는다.
부지 면적 46헥타르로 도쿄돔 10개분의 열도 최대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는 휴게소의 명성은 부차적이다. 휴게소 안에 농장·맥주공방은 물론 천연 온천호텔까지 구비한 ‘체재 체험’을 내세워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초기엔 집객에 실패해 경영 악화를 겪었지만 민간기업 팜포레스트가 2008년 휴게소를 인수한 뒤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핵심은 잠깐씩 들르는 통과 공간이 아니라 장시간 머무르는 체험 시설로의 진화였다. 유효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수확 체험 등 이벤트를 하나하나 기획했다.
흉물스러웠던 폐허 채석장을 래프팅 보트로 감상하는 등 다양한 지역 자원을 재발견해 새로운 부활의 숨결을 부여했다.
지금은 여행 상품만 26개로 늘어나면서 연 142만 명의 내방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색 여행이 히트하자 경험 전파도 늘어났다. 쇠락 휴게소의 재생 의뢰가 물밀듯이 쇄도한다.
방향은 비슷하다. 잠자던 지역 자원을 일깨우고 부가가치의 창출 주체로 지역 특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식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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