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인사이트]
‘58년 개띠’ 베이비부머의 성장 신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사고의 전환’ 필요
대한민국 신경제, '크로노스(제조업 경제)’에서 ‘카이로스(무형재 경제)’로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6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무술년이다. 지난 무술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환갑이 됐다. 흥미롭게도 2018년 환갑을 맞는 사람들은 전후 한국 경제를 이끌며 베이비부머로 불린 이른바 ‘58년 개띠들’이다. 58년 개띠들은 6.25전쟁 이전 세대들과의 차별화를 상징했다.

그런데 이전 시대와의 단절을 상징했던 58년 개띠가 이제 본격적인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면 한국 사회도 다음 세대의 가치로 중심축이 이동할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은 더 이상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부머의 성장 신화가 절대선이 아닌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 과거 ‘황금시대’의 동력은 생산성 향상

한 국가의 잠재성장률은 노동인구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의 합계로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성장률은 노동인구가 늘어나 절대적 노동시간이 늘거나 더 낮은 노동 투입으로도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질 때 개선될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두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노동인구 증가율의 감소는 노동 투입 시간의 감소와 같기 때문이다.

희랍인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두 단어로 나눠 사용했다. ‘크로노스(kronos)’는 물리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kairos)’는 심리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이다. 시계로 가늠하는 시간과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차이를 감안하면 둘의 차이를 전제한 희랍인의 지혜는 놀라울 뿐이다.

인간은 동일한 물리적 시간에서도 상황에 따라 빠름과 더딤을 느낀다. ‘상대성 이론’이 무엇인지 묻자 “연인과 함께 있을 때는 1시간이 1분처럼, 뜨거운 난로 옆의 1분은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답변했던 아인슈타인의 유머가 떠오른다. 인간은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살아가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에 지배 받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물리적 노동시간만 가치의 근원으로 보는 오판을 했다. 19세기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그러했다. 1800년 전후한 산업 혁명 이후, 이른바 대분기 시대에 1인당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가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땀 흘리는 노동만이 진정한 가치를 창조한다는 믿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노동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생산성을 올리면 된다.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목한 지점은 여기다. 계급 간의 모순에도 자본주의가 더 확산되고 강화된 이유를 미국에서 찾았다.

헨리 포드는 이윤이 증가하면 임금을 두 배로 올려줬다. 하지만 그가 도입한 대량생산 체제는 자동차 1대를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4시간에서 2시간으로 단축시켰다. 그람시는 그의 저서 ‘옥중수고’에서 이를 ‘아메리카니즘’이라고 지칭했다. 이후 이는 ‘포드주의’로 발전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이러한 생산성 향상에 기반 했다. 여기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그 배경 중 하나가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기법이다. 테일러의 첫 저서는 ‘시간 관리(Time Study)’였다. 그는 그만큼 시간을 중시했다. 그는 표준화된 시간 관리를 도입했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는 자본과 시간관리가 결합한 성공 사례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됐다. 이후 단축된 시간은 교육,문화,레저 증대로 선순환되며 생산과 소비 간의 양의 되먹임(feedback) 구조가 구축됐던 것이다. 1960년대의 황금시대(golden age)는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 상승이 기반이었다.

◆ 미래 성장은 제약·바이오 및 게임이 주도할 것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J노믹스의 경제정책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임금 상승을 유도하고 혁신 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임금 상승 이상의 생산성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 글로벌 경제 환경은 이와 부합하지 않는다. 고용이 개선돼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슬로건 역시 생산성 개선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국은 더 외통수에 몰려 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이미 0%대로 감소했다. 2020년 이후에는 마이너스의 영역으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노동생산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면 생산성 개선 방법은 자본의 투입과 총요소 생산성(TFP)의 증가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을 투입한다고 그만큼 자본 생산성이 개선되기도 힘들다. 한국이 주력 산업은 공급과잉과 경쟁 격화에 노출돼 있다. 기업이 설비투자를 늘린다고 생산성 증가로 연결되기 쉽지 않다.

남은 것은 총요소 생산성의 개선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총요소 생산성은 흔히 기술 진보에 의한 혁신으로 해석한다. 4차 산업혁명이 혁신의 원동력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과거 인터넷 및 컴퓨터가 가져온 혁신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왜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 내 무형재(intangible goods) 비율 증가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무형재 생산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보다 무형의 투입물이 중시되는 상품이다.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이 대표적이다.

무형재는 직접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창출한다. 물론 게임 개발에도 노동시간이 투입되고 자본도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과 자본이라는 전통적 생산요소는 부차적인 것일 뿐 아이디어 자체가 가치와 생산의 중심이다.
대한민국 신경제, '크로노스(제조업 경제)’에서 ‘카이로스(무형재 경제)’로
(그래프) 업종별 순위는 반도체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으며 제약 부문의 약진과 건설, 조선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크로노스가 제조업 중심 경제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무형재 경제의 시간이다. 시간이 생산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부가가치의 창출이 필요하다. 부가가치 창출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도 이를 반영해 왔다. 이미 제약·바이오가 정보기술(IT)에 이어 둘째로 많은 시가총액을 차지한다. 게임과 인터넷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을 점하고 있다. 게임 체인저는 이미 출현했고 더 거세게 게임을 바꿀 것이다. IT, 헬스케어, 게임, 인터넷, 미디어 등이 말이다.

새로운 가치들이 창조적 파괴를 진행할 때 한국 경제는 58년 개띠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 그 변화의 속도는 더디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