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반도체 코리아' 업그레이드 전략은]
메모리 분야 ‘초격차’ 유지하고 비메모리 기술 개발 서둘러야
‘2030년 위기설’…‘반도체 코리아’ 업그레이드 전략은
(사진)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의 상하이 본사 로비에 있는 '특허의 벽'. SMCI가 취득한 1만여개의 기술 특허가 벽에 걸려 있다. /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이정흔기자] 2020년을 전후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반도체발(發) 경기 침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1월 13일 ‘2018 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2020년 중국발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줄곧 세계 반도체업계 1위 자리를 지켜온 미국의 인텔을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했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매출 기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위기’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꼽히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올해부터 메모리 본격 양산 돌입

2017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호황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였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구글과 페이스북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현재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서버에 사용되는 메모리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문제는 향후 중국에 의한 반도체 공급과잉 우려다. 중국 정부는 현재 10%대 초반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리는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총 1조 위안(약 170조원)을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중국의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2016년부터 우한에 건설 중인 3차원 낸드플래시 양산 시점을 올해 말로 잡고 있다. 푸젠진화반도체는 370억 위안(약 6조원)을 투자해 올해 9월부터 20나노 후반 또는 30나노급의 D램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창장메모리도 2019년 상반기에 32단 낸드플래시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현재 상황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불안한 호황’”이라고 표현했다. 2019년 이후 ‘중국의 역습’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해 놓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10년 이내에 한국을 제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는 품질이나 생산량이 미흡하기 때문에 당장 세계 메모리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며 “다만, 중국이 기술 수준을 높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엔 여파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3D 낸드플래시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는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 또한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기 위해 ‘기술혁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주 연구위원은 “전 세계 국가들은 IoT를 통해 인구 증가·고령화·도시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며 “향후 IoT 산업 발전에 따라 반도체 산업 또한 ‘신메모리 시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신메모리로 기대되는 품목은 강유전체 메모리(FeRAM), 스핀 주입형 자기저항 메모리(STT-MRAM), 상변화 메모리(PRAM), 저항 변화형 메모리(ReRAM), 강유전체 게이트 전계효과 트랜지스터(FeFET) 메모리 등이다. 한국 반도체업계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신메모리 시대’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 50대 팹리스 중 11개가 중국 기업

한국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위기 요인은 ‘메모리 분야에 대한 지나친 쏠림 현상’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메모리는 확고한 시장점유율 1위인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사정이 다르다. 연산·논리 등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처럼 데이터의 해석과 계산까지 수행하기 때문에 ‘기기의 뇌’라고 불린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대략 연간 400조원이 조금 넘는 규모인데,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30% 미만이다.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시장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국내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주 연구위원은 “한국 반도체의 메모리 분야 편중 문제는 1990년대부터 거론되고 있는 문제”라며 “한국 기업들의 강점이 기본적으로 설계 기술(시스템 반도체)보다 제조 기술(메모리 반도체)에 더 우위가 있기 때문에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도록’ 촉진해 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정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시스템 반도체’는 포기해야 할까. 주 연구위원은 “시스템 반도체는 회로 설계 기술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바탕으로 이뤄져 있다”며 “한국은 SW 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선진국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시스템 반도체 분야 가운데서도 특정 품목은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이미지 센서(CIS) 등이다. 주 연구위원은 “향후 시스템 반도체의 강화 역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분야를 중심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인공지능 반도체, 그래픽용 반도체, 각종 센서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 상무는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생산액을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의 비율이 9 대 1”이라며 “‘지나치게 메모리 반도체 비율이 높다’는 표현보다 ‘지나치게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이 낮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향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시스템 반도체를 강화해 균형 성장을 지향하는 것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인 팹리스 산업(반도체 설계)을 육성하는 것은 미래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더욱 위협적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제조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와 소재 등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이미 한국이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앞서가 있다.

한국과 비교해 시장 규모가 16배 정도 클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2017년 IC인사이츠가 전 세계 상위 50대 팹리스 업체를 발표했는데 그중 11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안 상무는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는 중국의 정책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며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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