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자본주의 길로 향해 가는 북한…잠재성장률 5%로 끌어올릴 ‘유일한 희망’
북한 특수는 ‘투자 테마’ 아닌 ‘구조 변화’
[한경비즈니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지금 함께 넘어가 보시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으로 이끌었다. 남한과 북한이 마음을 합하면 모든 게 순조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속도는 더디다. 경협 관련주도 이를 반영하듯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018년 초반부터 북한은 증시의 주된 화두였다. 2017년 12월 시작된 북한과의 대화부터 4월 남북 정상회담, 6월 북·미 정상회담까지가 북한발 모멘텀의 절정이었다. 증시는 앞서 기대를 반영했지만 그 기대에 못 미치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북한 모멘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벌써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아직 평화 체제 정착은 요원하다. 첫 관문인 종전 선언 합의조차 난항이다. 북한 특수의 출발점인 ‘유엔의 경제제재가 풀릴 수 있느냐’라는 질문도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미래가 아닌 과거로 시선을 돌려보자. 불과 1년 전만 해도 ‘김정은 참수 작전’, ‘제한적 북폭’ 등이 언론의 헤드라인이었다. 역사는 카오스가 나타나는 시공간이다. 카오스적 상황은 구조를 바꿀 수 있다. 4월 27일의 시간과 판문점이라는 공간은 이후 100년 평화 체제의 출발점일 수 있다. 북한 특수는 테마가 아닌 구조의 변화다.

◆구조 변화의 시작점 ‘2002년’

구조 변화의 출발점은 2002년이다. 2002년 초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며 북·미 대립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붉은 악마의 ‘오 필승 코리아’ 함성 속에서 월드컵 3~4위전(한국 대 터키)이 열리던 6월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표면적으로는 난항이었지만 내부는 달랐다. 북한의 변화 때문이다. 2002년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는 북한이 자본주의로 한 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농업에서 국가 수매량을 축소하는 동시에 일부 협동농장에서 포전제를 실시한 이 정책은 결국 사유재산의 인정과 노동생산성에 따른 인센티브라는 두 가지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들어 있다. 수확한 양의 일정 부분을 자신이 가진다는 것은 더 생산하면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사유재산제도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이 2003년 공식 출범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북한의 사유재산제도 도입이 있다.

개성공단은 2003년 이후 남북 경제협력의 리트머스다. 2002년의 북·미 관계 위기에도 북한은 군부대를 후퇴시켰고 개성공단으로의 육로를 열었다.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개성공단의 순조로운 진행은 남북 관계 개선을 상징했던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07년 991만7355㎡(300만 평)에 달하는 1단계 부지 조성 공사 완료 시점에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푸른 자유로를 달리다가 북한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민둥산이 늘어서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북으로의 이동이 ‘출국과 입국’이 아닌 ‘입경과 출경’이라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북한 특수는 ‘투자 테마’ 아닌 ‘구조 변화’
북한 특수는 ‘투자 테마’ 아닌 ‘구조 변화’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이 결합된 경제구조다. 낮은 임금만이 강점이 아니다. 저렴한 토지를 국가가 공급하고 우리말을 함께 쓰는 양질의 노동력도 국가가 제공하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실제 남한의 기업인들을 개성공단으로 유인한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 있었다. 동시에 가장 큰 위험도 여기에 있었다. 2016년 개성공단 철수에서 국가 정책에 좌우되는 개성공단의 태생적 한계를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함께 현실화됐다. 새 정부는 북핵 문제와 개성공단 확대를 연동했고 2010년 천안함 사건, 연이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자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지하는 5·24조치가 내려진다. 이후 2013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의 잠정 중단이 결정됐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이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 경협이 좌초되는 시기였음에도 북한은 자본주의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2010년 5월 26일 발표된 ‘최근 북한 식량 상황과 5·26 당 지시’는 암묵적으로 묵인해 주던 시장을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허용한 사건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 온 ‘장마당 경제’의 탄생이다.

장마당은 북한 내에서 음성적으로 생성된 암시장 체제의 일부를 양성화한 개념이다. 남한의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시장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장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가장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형태다. 자신의 사유재산을 갖고 나와 판매하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매겨진다. ‘돈주’라는 생소한 계급은 장마당에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 혹은 장부를 통해 지역 간 외상 거래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장마당 제도를 양성화했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변화

북한의 변화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미 북한 경제 대부분이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고 있고 북한 정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는 정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카드 사용을 제도화하고 있고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360만 명으로 북한 인구의 15% 수준이다. 북한이 과거와 같이 개방 의지를 돌리거나 배급제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투자자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투자자의 기대는 개방 이후 교통의 연결지로서의 역할, 외국인직접투자(FDI) 등을 통한 제조업 공장으로서의 역할, 자원의 보고로서의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혹은 이 모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제재 대상이고 미국이 이 제재를 서둘러 풀어 줄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개방 속도를 늦춰 온 북한의 핵무기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인지’했지만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은 미국과의 ‘우호’를 원하지만 바로 ‘수교’라는 손을 덥석 잡을 수는 없다. 남과 북은 평화 공존이 우선이지만 미국의 이익은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구조의 틀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미국이 서두를 이유는 없다.

좋은 사례가 있다.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개선 과정이다. 베트남과 미국은 1990년 8월 대화를 시작했다. 국교 정상화 교섭을 개시한 것은 1991년 11월이고 미국이 국제 금융회사에 베트남 융자 재개를 허용한 것은 1993년 7월이다. 대화 재개에서 국교 정상화 교섭까지 1년, 융자 재개 허용까지 3년, 국교 정상화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2018년 6월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의가 열린 이후 2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우리 모두 너무 조급하다.

북한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지만 자본주의의 길로 돌아선 것은 분명하다. 바로 북한 특수가 일시적 테마에 머무르기보다 구조적 변화를 반영해 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언제쯤 가시화될 것인지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 원론적으로는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시설을 폐기하고 모든 핵 관련 리스트를 제출하고 이후 미국이 제출한 리스트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유엔의 북한 제재가 풀릴 수 있다.

하지만 투자의 시각에서 보면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이 중요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 수용과 핵시설 명단 제출 등 비핵화를 위한 초기 작업이 구체화되는 시점부터 북한 경제는 해외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IAEA 핵사찰 이후 북한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등 융자가 재개되면 북한의 인프라와 도시 건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해외 투자자보다 우리의 행보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항구·철도·도로·전기의 연결이 필요하고 북한으로의 투자는 불가능하더라도 남한 내부의 선제적 투자는 가능하다. 2018년 하반기 북한 관련 투자는 북한으로의 투자가 아닌 남한에서의 경협 준비 투자가 메인이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전에 이미 경원선 남측 구간에 대한 개·보수 작업이 이뤄졌듯이 점점 더 많은 선로와 도로 준비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 비무장지대(DMZ) 남측 작업도 선행돼야 할 투자 작업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오늘이 어제가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된다. 역사는 지나간 현재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분열에서 평화 정착이 시작된 100년 역사의 시작점에 있을지 모른다. 가을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면 다시 기대의 구간이 시작될 것이다. 성장이 멈춘 시대, 우리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1970년대의 중동 특수, 2000년대 중국 특수, 이제 북한 특수를 기대해야 한다. 북한 모멘텀은 3%대의 잠재성장률을 5%대로 올릴 수 있다. 증시가 미래의 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북한 특수의 가능성은 한국 증시의 상단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촉매제인 것은 틀림없다. 북한은 우리의 미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