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M&A 시장의 '4분의 1' 차지
손댄 기업들 실적도 주가도 '쑥쑥'

'M&A 시장 큰손' PEF의 마법 계속될까
2013년, MBK파트너스는 1조8400억원에 ING생명 본사로부터 한국 법인 지분 100%를 사들였다. 그리고 5년 뒤인 2018년 9월, MBK는 ING생명의 사명을 오렌지라이프로 바꾼 후 지분 59.15%(보통주 4850만 주)를 2조2989억원(주당 4만7400원)에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하기로 했다.

MBK는 이미 작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보유지분 중 40.85%를 구주매출로 매각, 1조1055억원을 회수했다. 이와 함께 당기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배당으로 할애하며, 총 6140억원의 배당금을 챙기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오렌지라이프 주식을 담보로 1조2500억원 규모의 자본 재조정(리캐피털라이징)을 통해 6200억원을 회수했다. 이번 매각 전 이미 투자 금액을 모두 회수한 만큼 신한지주가 지급하는 2조3000억원가량이 거의 ‘순수투자이익’이 되는 셈이다. 어림잡아도 투자수익률 100%를 웃돈다.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투자집합기구(PEF)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이번 거래로, PEF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 웅진식품·태림포장·대한전선 등 대형 매물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미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와 텍사스퍼시픽그룹(TPG) 같은 글로벌 운용사들도 국내 PEF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PEF 시장의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2005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PEF는 올해로 13년째를 맞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국내 PEF 전문 운용사 501개, 출자 금액은 66조4828억원에 달한다. 부동산 자산 등을 제외하면 64조원 수준이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PEF가 성장하기 시작한 2009년과 비교하면, PEF 운용사 수(110개)는 약 5배, 출자 금액(20조원)은 3배 이상 커졌다. 2014년 처음 50조원을 넘어선 PEF 출자 금액이 2016년 60조원을 넘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시장을 키워 가고 있다.
'M&A 시장 큰손' PEF의 마법 계속될까
◆64조 규모로 성장한 국내 PEF 시장

불어난 시장의 규모만큼 눈에 띄는 것은 그 사이 늘어난 사모펀드 운용역(GP)의 숫자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2017년 국내 PEF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을 기준으로 PEF를 운용 중인 GP는 209개로, 전년도인 2016년과 비교해 19개가 늘었다. 이 중 전업GP가 66%(138개)를 차지한다. 늘어난 GP의 숫자만큼 신설 PEF 수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7년 중 신설된 PEF 수는 총 135개로 전년 대비 26개가 증가했다.

국내 PEF 시장이 양적으로만 성장한 것은 아니다. 펀드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래 사이즈 또한 커지고 있다. 해외로 손을 뻗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MBK파트너스는 현재 자산 규모 17조원의 아시아 최대 규모 사모펀드사로 성장했다. IMM프라이빗에퀴티(PE)·H&Q코리아·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스틱인베스트먼트·VIG파트너스 등 대표적인 토종 사모펀드들도 탄탄한 트랙 레코드를 쌓아 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PEF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 4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KKR는 올해 초 KKR 한국사무소의 인력을 확충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내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 TPG는 올해 3월 서울에서 TPG아시아 지역 총회를 개최했다. TPG가 진출해 있는 여러 국가 가운데서도 향후 한국에 힘을 더 실어 주기 위한 움직임이다.

◆가업승계 대신 PEF 택하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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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는 지난 7월 한국 PEF 시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PEF 시장 중에서도 ‘한국 PEF 시장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현재까지 투자한 금액은 890억 달러(약 100조원)가량으로 870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됐다. 그중에서도 전체 투자액의 62%에 달하는 540억 달러가 2013~2017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진 시기와 맞물린다.

2011년 이후엔 1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해마다 증가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투자액 기준으로 봤을 때 PEF가 한국 내 인수·합병(M&A)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킨지는 한국 PEF 시장의 급성장 요인을 크게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금융위기로 인해 기업들의 주요 자금조달 창구였던 증권시장이 흔들리면서 사모펀드가 기업들의 새로운 돈줄로 부상했다. 2015년 국내 증시에서 IPO 등으로 조달된 자금은 80억 달러가 채 안 됐지만, 사모펀드는 그 2배가 넘는 170억 달러에 가까운 자본을 기업들에 투입했다. 금융위기 이후 다국적기업들이 모회사의 자금난으로 인해 한국 시장에서 잇달아 철수한 것도 기회가 됐다. 2015년 영국의 유통 기업 테스코가 국내 대형 할인점 홈플러스를 국내 사모펀드 MBK에 60억 달러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로 대기업들이 핵심 사업 외의 자회사를 PEF를 통해 처분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 또한 주요한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매킨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상속세를 언급하고 있다. 국내 1세대 기업 오너들과 2세대 기업 오너들의 세대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가업승계 대신 PEF가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의 보유지분이 50% 이상인 최대주주의 최고 상속세율은 65%에 이른다. 가업승계를 하면 할수록 최대주주의 지분이 줄어드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PEF에 지분을 매각하고 실리를 택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이 대표적인 경우다. 작년 8월 보유 주식 전량(63%)을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5억61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굳이 락앤락의 경우처럼 사모펀드에 지분을 전량 넘기지 않아도, 중소기업들 중에서는 지분 일부를 PEF에 매각한 뒤 경영에 참여토록 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에 다시 지분을 재매입하는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PEF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것은 수익률이다. 540건의 PEF 투자수익률을 분석한 매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코스피 수익률은 마이너스 41%로 곤두박질쳤지만 PEF는 9%를 기록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졌던 2011년에도 코스피는 -11%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PEF의 수익률은 40%에 달했다. 2005~2016년까지 PEF의 연평균 수익률은 25%로 코스피 수익률(10%)의 2.5배 정도로 나타났다.


◆‘기업사냥꾼’에서 ‘경영해결사’로

최원식 매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미국·유럽 등에서 글로벌 PEF의 경쟁이 심화되며 최근 아시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한국은 좋은 투자 대상이 많아 투자 매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투자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서 PEF 운용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사라지는 추세다. PEF의 가장 큰 목적이 돈을 버는 데 맞춰져 있다 보니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기업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PEF들이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경영가치를 높여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는 실제 PEF 투자 기업들의 주가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노동길·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펴낸 ‘사모펀드가 선택한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이후 PEF에 매각된 기업을 분석한 결과, PEF가 경영을 시작한 뒤 4주가 평균은 4년 후 65.5%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EF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여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투자 경험이 쌓을수록 기업 경영에 대한 노하우와 네트워크 또한 축적될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폭넓은 안목으로 시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PEF의 장점이다. 이들이 기업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기업들은 크게 세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성 제고, 그리고 해외 진출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주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PEF 기업들의 주가 흐름이 상승세를 타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PEF 투자 기업들은 주가도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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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는 2016년 미국계 PEF인 베인캐피탈에 경영권을 넘겼고, 작년 9월 약 3조원에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유니레버의 품에 안기며 해외 진출까지 이뤘다. 이 과정에서 베인캐피탈은 1년여 만에 1조5000억원의 투자 수익을 챙겼다. 세계적인 PEF에 인수된 기업은 해당 PEF의 투자 대상이 됐다는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기업의 주목을 받게 돼 해외 진출이 쉬워진다.

마찬가지로 국내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에 PEF가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증명되고 있다. 국내 PEF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인수해 회사 실적을 반등시킨 대한광통신이 대표적이다. 국내 최대 광섬유 및 광케이블 제조업체인 대한광통신은 모회사인 대한전선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며 경영 위기에 처했다. 2012년 큐캐피탈에 인수됐을 당시 대한광통신은 8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100억원에 가까운 금융비용으로 인해 당기순손실만 44억원에 이르렀다. 큐캐피탈은 대한광통신을 인수한 뒤 의약품 연구·개발(R&D) 사업인 케미존을 정리하고 광섬유와 광케이블 사업에 집중했다. 50억원이 넘는 비용 지출을 줄이며 동시에 설비 증설·신소재 개발 등에 250억원이 넘는 돈을 적극적으로 투자해 의료용 광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대한광통신의 기업 가치를 올린 큐캐피탈은 작년 주식 900만 주를 전량 매각하며 400억원가량의 차익을 냈다.

곽현수 애널리스트는 “최근 정부가 모험 자본 공급을 강조하며 PEF 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데다, 연기금과 같은 국내 PEF 시장의 주요 출자자(LP)들 또한 최근 들어 대체투자 규모를 확대해 가고 있다”며 “향후에도 국내 PEF 시장이 더욱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M&A 시장 큰손' PEF의 마법 계속될까
◆용어 설명

1) 경영참여형 사모투자집합기구(PEF)
쉽게 말해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지분에 투자하거나 경영권을 인수해 매각하는 방식의 투자 기법을 말한다. 전략과 투자 대상에 따라 벤처캐피털(VC)·바이아웃(BO) ·메자닌(mezzanine)·부실채권투자 등으로 구분된다.

2) 바이아웃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PEF로, 투자 기업의 지분이나 핵심 자산 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기업 가치를 증대시켜 이후 자본이나 자산을 매각해 수익을 실현하는 투자 기법이다.

3) GP와 LP
GP(general partner)라고 불리는 PEF 운용사들은 투자 자금 조달과 투자 집행 기능을 하며 채권자에 대해 무한 책임을 부담한다. 이와 비교해 LP(Limited Partner)는 PEF에 자금을 위탁하는 투자자를 말한다. 투자한 금액만큼 책임을 진다고 해서 유한책임사원이라고도 부른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