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연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검은 10월’…엇갈리는 ‘신중론 vs 낙관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공포가 한국 증시를 잠식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검은 목요일' 이후 국내 증시의 폭락이 이어지며 29일에는 급기야 우려하던 2000선이 붕괴됐다.
10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2300선을 유지하던 코스피지수는 11일 하루 동안에만 전주 대비 4.66% 하락하며 2100선(종가 기준 2129.67)으로 주저앉았다. 이날 하루 동안 증발한 시가총액만 65조원으로 35년 유가증권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후 조금씩 안정세를 찾아가던 주식시장은 10월 23일 또다시 2.57% 급락하며 장중 한때 2100선마저 붕괴됐다. 코스피지수 2100선이 무너진 것은 1년 7개월 만이다. 이후에도 코스피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며 10월 25일 기준 2063.30까지 밀려나는가 싶더니 10월 29일 2000선 아래로 무너졌다. 코스피가 2000선 아래에서 장을 마친 것은 2016년 12월 7일(종가 1991.89) 이후 22개월여만에 처음이다.
10월 들어서만 코스피지수 하락률이 13.48%에 달한다. 코스피지수가 한 달 동안 10% 이상 급락한 것은 2011년 8월(11.86%) 이후 7년 2개월 만이다. 지난 1월 고점 대비 하락 폭은 20%를 넘어섰다. 코스닥지수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처음 700선을 넘어선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700선 아래로 떨어졌고, 10월29일 기준 629.7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발 악재 강타, 공포지수도 최고치
국내 증시가 이토록 급락한 배경에는 ‘미국발 쇼크’가 도사리고 있다. 10월 10일 뉴욕 증시는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기술주 불안 우려가 겹치며 미국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3.1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3.29%), 나스닥지수(-4.08%)가 일제히 하락했다. 불과 2주 만인 10월 24일 미 증시가 또다시 급락해 전일 대비 다우지수 2.41%, S&P500지수 3.09%, 나스닥지수는 4.43% 떨어졌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이날 급락으로 올 한 해 상승 폭을 모두 반납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나스닥은 2011년 8월 18일 이후 약 7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특히 미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기술주의 급락은 월가 투자자들의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따라 일본·대만 등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내 증시는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실제로 신흥국 불안으로 ‘외국인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며 최근 국내 주식시장의 폭락을 주도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 금액은 2조2458억원에 달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25일까지 3조4000억원 이상의 순매도를 기록하며 증시 급락을 주도했다. 올 들어 최근까지 주식시장 순매도 금액은 5조6000억원을 넘어서는 셈이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연간으로 순매도를 보인 것은 3년 만이다. 특히 지난 9월엔 올 들어 처음으로 상장 채권에서 1조332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된 것으로 파악되며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읽히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코스피200변동성지수(VKOSPI)다. 미 증시가 폭락한 다음 날인 10월 25일 VKOSPI는 장 초반 20% 이상 급등했다. 장중 22.85까지 기록했는데, 이는 올해 2월 9일(24.18)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VKOSPI는 코스피200옵션 가격을 토대로 한 달 뒤 지수가 얼마나 변동할지 예측하는 지표다. 이 지수가 커질수록 주가가 큰 폭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보통 주가가 급락할 때 이 지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잠재돼 있던 악재 한 번에 터져 나와
글로벌 증시 가운데서도 국내 증시의 급락 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10월 이후 증시 폭락을 이끈 글로벌 금융시장의 악재들은 돌발성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달러 강세 그리고 미·중 무역 분쟁 격화 등은 연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이슈들이다. 문제는 기존에 잠재돼 있던 이와 같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신흥국이고 동시에 무역 분쟁 위험국이다. 이와 같은 여러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안전지대일 수 없는 것이다.
잠재돼 있던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게 된 계기는 지난 10월 3일 미 중앙은행(Fed)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이었다. 시장은 “현 미국의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매파적 발언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강력한 신호로 읽었다. 이는 미 채권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다. 미국 10년물 국채의 금리가 3.2%대로 높아지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빠르게 미국 채권으로 옮겨간 것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인 미 채권에 투자 매력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10월 미국과 글로벌 주식시장 폭락은 미 채권을 사기 위해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그 여파가 신흥시장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맞물려 달러도 연중 최고치를 향해 가고 있다. 미국 채권금리 급등에 따른 불안심리가 달러 강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월 24일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6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49% 높은 96.18을 기록했다. 96.60으로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 8월 이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 강세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요소다.
미·중 무역 분쟁도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 해군의 태평양함대가 중국 영해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고 10월 3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 10월 21일 아세안 국가들과 남중국해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실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무역 전쟁을 넘어 군사적 긴장까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인환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국내 증시는 주가수익률(PER)·주가순자산배율(PBR) 수준으로 보면 저평가돼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반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밸류에이션이 통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단일 변수가 증시의 상승과 하락을 결정지었던 연초와 달리 지금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증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향후 증시의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셜 리포트 Ⅱ=주식 시장 긴급 점검, 연말 주가 향방은? 기사 인덱스]
-‘금리·달러·무역분쟁’ 공포가 집어삼킨 한국 증시
-"대내외 악재 산재, 당분간은 '조정' 불가피"
-"11월 이후 정책 불확실성 해소 기대, 연내 반등 가능성"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6호(2018.10.29 ~ 2018.11.04)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