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먹힐 만한 스토리’ 가진 인물…‘충청권 대망론’도 흡수 가능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2016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한 뒤 난파 상황을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당은 선거 전부터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처절한 공천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된 처지였다. 김무성 당시 대표가 공천 결재를 미루고 부산으로 도피한 ‘옥새 파동’은 공천 싸움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김 대표는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최고위원들도 줄줄이 물러나면서 당은 구심점을 잃고 표류했다. 당 내에선 김동연 당시 아주대 총장(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당을 추스르게 하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원장 겸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던 김광림 의원이 적극 나섰고 충청도 의원들이 거들었다. 김 부총리는 충북 음성 출신이다.
김 부총리와 김 의원은 경제관료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두텁다. 김 의원은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해 1975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차관까지 지냈고 김 부총리는 행정고시 26회에 합격한 뒤 1983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경제부총리까지 올랐다.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라는 것은 김 부총리가 지난해 6월 부총리 후보자로 발탁된 뒤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증명됐다. 김 의원은 “돈·학벌·인맥도 없이 이 자리에 왔고 (김 부총리가 쓴 언론) 기고문을 보면 하도 힘들어서…”라며 김 후보자의 어려운 시절을 소개하던 중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의원은 잠시 감정을 추스른 뒤 “김 부총리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오늘까지 온 것으로 안다”고 말하다가 입을 꾹 다물며 재차 울먹였다.
김 의원은 “현 정부에서 도덕성·능력·전문성을 인정받고 일면식도 없는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다”며 “저를 포함해 선배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믿음직한 공무원이고 그립(주도력)이 강해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함께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했던 동료·선배로서 한국 경제사에 오래 기억될 부총리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으로선 이례적인 덕담이자 격려였다.
이미 ‘김동연 모시기’에 공들였던 한국당
이런 인연을 가진 김 의원은 2016년 6월 김 부총리의 자택 등을 세 차례나 찾아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총장을 그만둘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부총리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무조정실장 자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약 반 년간 야인으로 지내다가 맡은 대학 총장 직 수행에 재미를 붙이던 때다.
김 부총리는 아주대 총장 시절 새로운 시도를 해 대학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해외연수를 가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 달 동안 미국과 중국 등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한 ‘애프터 유(After You)’ 프로그램, 학생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파란 학기제’ 등이 대표적이다. 파란 학기제는 일종의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학생이 지도교수까지 지정할 수 있다.
김 부총리가 끝까지 고사하면서 새누리당의 영입 시도는 없던 일이 됐다. 약 2년 반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김 부총리 영입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9일 개각으로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내정되면서다. 홍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임명되면 김 부총리는 약 1년 반 만에 물러나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김 부총리에게 다시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당내 인물난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열고 새 대표를 선출할 예정이지만 국민에게 신선한 인물로 비칠 만한 인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홍준표 전 대표가 정치권에 복귀하면 대표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당내에선 그의 복귀를 두고 논란이 있다.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거론되지만 아직 딱 부러진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 부총리가 설사 자유한국당 영입 제의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대표 경선에 나설 상황은 아니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2020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대선 주자 풀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아직 현직’ 영입설 시기상조론도
자유한국당이 김 부총리를 눈여겨보는 것은 그의 정치적 상품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판에서 먹힐 만한 스토리를 갖췄다. 열한 살 때 사업을 하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려움 속에서 자랐다.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다가 경기도 광주(지금의 경기도 성남시)로 강제 이주 당해 천막을 치고 지내기도 했다.
김 부총리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가난한 수재들이 진학한다는 덕수상고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은행에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국제대학)에 다녔다. 그가 고시에 뜻을 품은 것은 은행 기숙사 쓰레기통에서 고시 잡지를 발견하면서다. 주경야독 끝에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했다.
자유한국당에서 김 부총리 영입설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같은 충청 출신의 정진석 의원이다. 그는 지난 11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16년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서 김 부총리를 우리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소개한 뒤 “이 나라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김 부총리의 지혜를 빌려 달라”고 적었다.
윤상현 의원은 “현재 상황 속에서 자유한국당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대통령’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며 “현실 경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김 부총리는 아주 좋은 카드”라고 했다. 또 “본인이 와서 우리 당에서 잘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대선)길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그런 섣부른, (영입설은) 진짜 음모”라며 “그분(김 부총리)에게도 명예를 실추시키는 얘기고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비상식적인 정당이 아니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도 “누가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김 부총리를) 2016년 비대위원장직으로 검토한 적은 있다. 그런데 지금 부총리를 그만두고 (한국당으로) 영입을 한다? 이건 말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직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영입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부담일 수 있다.
김 부총리 영입설에 대해 당내에서 이런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실제 성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부총리도 “임기를 마치면 소시민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며 영입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향후 정치권 상황에 따라 영입설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내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선 김 부총리가 “충청권 대망론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부총리의 좌우명은 ‘유쾌한 반란’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 나아가 사회에 건전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만약 그가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유쾌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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