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석탄과 철강은 산업의 핵심 자원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경제 재건을 위해 이들 자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시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이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이에 따라 이들 자원이 방대하게 매장돼 있던 자르와 루르라는 두 지역을 자국 국경 내에 두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 결과 점령과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오늘날 EU의 출발점이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석탄과 철강을 프랑스나 독일 어느 한 나라의 자원이 아닌 ‘유럽’의 공동 자원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이후 유럽경제공동체로, 다시 EU로 발전하면서 전후 유럽에서 평화와 공존에 기반을 둔 경제 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얼마 전 어느 국회의원이 개성공단 재가동이 국내 일자리를 없애는 일이라고 비판한 기사가 실렸다. 개성공단 폐쇄 당시 해당 국회의원이 발언했던 바는 잊어버리기로 하자. 개성공단 재가동이 국내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논리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얼마나 허술한 논리인지에 대해서도 일단 논외로 하기로 하자. 다만 현재 세계 3대 경제권 중 하나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EU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EU에 대한 많은 논의는 그 경제적 성과와 한계에 대한 것이지만 그 출발점은 경제적 동기가 아닌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열망, 즉 정치적인 동기였다. 다시 말해 EU 창시자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통해 정치적 공존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유럽은 석탄철강공동체를 통해 어느 한 나라가 이득을 보면 다른 나라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을 두 나라가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분단 후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이 함께 공유한 자원은 무엇이 있었을까. 2000년 착공해 2005년 입주가 시작된 개성공단은 분단 후 남북 간 상호 의존성을 확대·강화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공존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남북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국제 정세는 전후 유럽과는 큰 차이가 있고 따라서 더욱 큰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남북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 확대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이 진전되면 북한은 당연히 한반도 경제권에 포함될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주의는 금물이다. 이미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이 강한 북한이 개방과 함께 중국 경제에 더욱 의존할 가능성이 기우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미국 등 주요 열강들의 관점도 유럽의 예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유럽은 구사회주의권 블록의 위협에 대항해 서유럽 경제 재건을 신속히 진전시켜야 한다는 광범위한 동의가 있었고 마셜 플랜과 OEEC(OECD의 전신) 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다양한 지원이 존재했다.
반면 한반도는 우리 스스로가 국제사회에 한반도 내 경제적 상호 의존성의 확대가 핵폐기 등 동아시아 내 평화와 공존을 이끌어 내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지속돼 온 갈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장 모네가 일찍이 설파했듯이 ‘대담하고 건설적인 행동’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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