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배터리에 쓰이는 코발트 유통 추적 프로젝트 개시…‘윤리적 문제’ 해결 가능할 것
LG·포드·IBM가 함께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사진) 리튬이온배터리의 우너료로 쓰이는 코발트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오늘날 국제무역은 아주 간단한 제품도 지구 전체를 무대로 생산·유통·판매된다. 미국에서 개발하고 디자인하면 원재료는 동남아시아, 조립은 중국에서 하고 최종 판매는 유럽에서 하는 식이다. 그래서 국제무역이라는 용어 대신 ‘공급 사슬망’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지구 전체를 무대로 펼쳐지는 생산과 유통 경로의 연속성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M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지구적 공급 사슬망 전체를 리스트럭처링하는 수준이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변경 불가능성이 공급 사슬망에 꼭 필요한 ‘신뢰’를 부여하므로 공급 사슬망의 핵심 난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BM은 1월 16일 코발트의 유통을 추적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IBM은 인권과 환경보호를 지원하면서 사회적 책임에 부합되는 공급 사슬망 관리를 강조했다. 미국의 포드자동차, 한국의 LG화학, 중국의 화유코발트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코발트는 노트북, 모바일 기기, 전기자동차의 필수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원료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화유코발트가 자사가 소유한 광산에서 고발트를 채굴하면 LG화학이 자동차용 배터리를 제작하고 포드자동차의 조립 라인에서 자동차를 완성한다.

코발트는 세계 총산출량의 약 60%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온다. 하지만 코발트의 생산 과정에 대한 인권 단체의 비판이 강하다. 아프리카의 코발트 광산은 주로 중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동 노동이 문제다. 엠네스티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발트 채굴에는 일곱 살 먹은 어린이까지 동원된다. 이들은 12시간 이상 일하고 1~2달러만 받았다. 엠네스티는 글로벌 전자 기업들이 배터리 제조에 코발트를 사용하면서도 기본적인 인권 점검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포드나 LG처럼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기업들로서는 어느 때건 반기업 캠페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것이 문제다.

계획에 따르면 콩고의 광산과 제련소, LG화학의 배터리 공장, 미국 포드의 자동차 조립 라인으로 이동하는 전 과정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추적한다. 공급망 곳곳에 검수 절차를 삽입하고 그 결과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한번 기록한 데이터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는 블록체인의 특징 때문에 포드자동차는 자사에 사용하는 배터리가 아동 노동과 무관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홍보에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와 ‘실물’의 간격 좁히는 게 난제

그러면 블록체인으로 공급 사슬망을 관리하는 제품이 윤리적으로 무결하다는 주장을 신뢰할 수 있을까. 우선 한 제품의 공급 사슬망이 하나의 기업에 의해 폐쇄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타당하다.

코발트를 이용한 배터리 생산에서 볼 수 있듯이 공급 사슬 전 과정에 굵직한 다국적기업 몇 개가 개입한다. 블록체인은 여러 당사자가 동시에 정보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시성이 높다. 다수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한 번 입력된 서류를 조작하기 어렵다. 즉 관련 당사자 모두가 동일한 기록을 열람하면서 그 기록이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 변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다.

이렇듯 블록체인이 공급 사슬망을 짓누르는 서류 작업 중 일어나기 쉬운 오류나 의도적인 기만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의 폭이 좁다. 하지만 데이터와 실물의 일체성까지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다이아몬드는 모양이 모두 다르고 그 차이를 40여 개의 변수로 계측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이용해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추방하겠다는 프로젝트는 설득력이 있다. 다이아몬드를 특정하는 변수와 다이아몬드를 보관하는 금고의 비밀 키를 융합한 해시 값은 다이아몬드 공급망을 관리하는 블록체인에서 특정 다이아몬드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다.

마치 은행의 금보관증이 금 자체의 가치와 동일하게 인식돼 유통될 수 있었듯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블록체인 해시 값은 다이아몬드 가격에 거래될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를 수중에 넣고 있지 않아도 해시 값을 확보한 사람이 그 다이아몬드의 사실상 소유주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이아몬드가 원형을 파괴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광물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의 생체 정보를 변형한 해시 값으로 신원 증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절반의 사람이나 혼합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발트는 정형적인 모양도 없고 다른 원료와 혼합돼 하나의 완제품이 된다. 블록체인에 올라 있는 코발트에 대한 기록과 특정 코발트를 연결하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참치처럼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통조림으로 가공돼 유통된다면 참치 공급망 블록체인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옹호론자들은 센서나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 공급 사슬망에서의 기록과 사물의 일체성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훼손하기 어려운 포장과 변경하기 어려운 바코드, 바코드를 인식하는 여러 개의 센서, 센서가 감지한 데이터를 그대로 전송하는 IoT, 이를 기록하고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블록체인, 빅데이터와 연결해 특정 데이터의 오류를 찾는 인공지능(AI)이 협력해 공급 사슬망을 관리하면 기나긴 서류 작업과 치명적인 기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동원하는 기술이 많을수록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무신용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블록체인의 코발트 공급 사슬망을 신뢰할 수 있다면 이는 코발트를 포장하는 기업이나 노동자를 믿는다는 의미다. 혹은 센서를 납품하는 회사를 믿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이 공급 사슬망을 리스트럭처링하고 지구촌 시민들이 블록체인 공급 사슬망을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은 IBM과 같은 다국적기업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IBM의 자금과 기술을 신뢰하기 때문에 IBM이 만들고 운영하는 블록체인 공급망을 믿을 수 있다.

물론 블록체인이 스스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다국적기업의 신뢰에 기대어 풀어야 한다면 블록체인이 신뢰 문제의 종결자라는 주장은 허구가 돼 버린다. 하지만 이 허구를 인정하는 것과 결국에는 블록체인이 공급 사슬망을 혁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 모순은 아니다. 논리상으로는 모순이지만 그런 모순이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아마도 인류는 신뢰를 먹고 살아왔으면서도 그 속성과 작동 원리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해결해 주는 것은 신뢰 문제 이전에 신뢰에 대한 무지라는 인문학적 난제일 가능성이 높다.

[돋보기] 해시와 블록체인
일반인들이 마음을 열고 비트코인을 공부하려고 할 때 처음 부딪치는 난관은 해시라는 용어다. 해시라는 단어는 대마초를 피우던 중세의 비밀결사대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중세 중동의 어지러운 정치·군사적 지형에서 활동했던 무시무시한 청탁 암살 조직인데 의뢰를 받으면 어떤 대상이건 상관하지 않고 암살에 나섰다고 한다. 즉 해시는 비밀결사대를 연상시키는 암호 체계다.

특정한 값을 입력해 특정한 해시 값을 얻는데 원문에서 한 단어만 바꿔도 해시 값은 완전히 달라진다. 블록체인에서 사용하는 해시의 용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파를 가로채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은폐용이고 다른 하나는 긴 문장을 압축하기 위해서다. 정보의 수신자와 특정한 함수를 사용하기로 약속한다면 긴 문장을 압축해 해시 값을 전송해도 수신자는 미리 약속한 해독 체계에 따라 긴 문장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사용하는 해시 함수는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만들어 배포한 SHA256인데 이론적으로 해시는 복호가 가능하다. 다만 계산량이 방대해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므로 안전하다고 간주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