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관전 포인트…민주당 겉으론 ‘황나땡’이지만 우파 결집에 촉각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자유한국당의 차기 당 대표를 뽑는 2·27 전당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궤도에 올랐다. 초반 주요 주자들이 대거 참가하는 진검 승부 전당대회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전대는 홍준표 전 대표, 정우택·안상수·심재철 의원들이 불출마로 돌아서면서 흥행 효과가 반감됐다. 특히 ‘입심’ 좋기로 소문난 홍 전 대표의 중도 사퇴는 TV 토론회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기대했던 관전자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2월 12일부터 2주간의 레이스에 들어간 한국당 전당대회는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 등 3파전으로 진행된다. 당권 주자는 3인이지만 황 전 총리와 오 전 시장 간 사실상 양자 대결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초반 강고해 보이던 황 전 총리의 ‘대세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유일하게 접견하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의 발언을 계기로 미묘한 균열을 보이고 있다. “황 전 총리가 친박인지는 국민이 알 것”이라는 유 변호사의 발언 이후 한국당 내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황 전 총리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번 전당대회에 여전히 ‘박심(朴心)’이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년 임기의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대는 권리당원의 표심이 절대적이다. 권리당원 표심 75%, 일반 여론조사 25%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당 권리당원은 약 32만 명이고 이 가운데 박심의 영향을 받는 대구·경북(TK) 권리당원이 약 10만 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황 전 총리가 오 전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 근거도 이 같은 권리당원 구조 때문이다. 황 전 총리 측은 “권리당원 표심은 절반 이상이 우리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한국당 내에서도 대체적으로 이번 전대가 황 전 총리에게 유리한 구도 속에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관건은 6번의 TV 토론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신인인 황 전 총리와 서울시장 국회의원을 지낸 오 전 시장 간 TV 토론에서 두 후보의 정치 내공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월 14일부터 시작된 합동 토론회는 TV 토론의 전초전이다. 이날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첫 합동 연설회를 시작으로 총 4회가 열린다. 누가 2020년 총선 승리, 나아가 정권 탈환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적합한 인물인지를 놓고 권리당원들에게 호소하는 자리다. 황 전 총리에게는 사실상 첫 대중 정치 신고 무대인 셈이다.
황 전 총리는 ‘황교안 대세론’과 ‘보수 우파 통합’을 이번 선거전의 화두로 내걸고 있다. 황 전 총리는 “당이나 한국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당원과 국민이 화합하고 하나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핵에 이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이은 패배로 찢어진 보수 우파 세력을 규합하는 구심점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1월 29일 출마 선언 이후 문재인 정권에 각을 세워 왔지만 보수 대통합을 강조하면서 보수 우파 진영 내에선 네거티브 공세를 자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황교안 “당원과 국민이 하나 돼야”
추격자 처지인 오 전 시장은 개혁 보수와 중도 우파를 아우르는 확장성을 무기로 2주간 대역전극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탄핵 국면에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 후보가 당의 전면에 나선다면 당이 ‘박근혜 프레임’에 갇혀 2020년 총선에서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은 각종 언론 인터뷰 등에서도 황 후보와 김진태 후보를 강경 보수 프레임에 갇힌 ‘이념형’ 정치인이라고 비판해 왔다. 오 전 시장 측 인사는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이기려면 중도 우파와 개혁 보수 어젠다를 선점하고 있는 오세훈 후보가 당의 얼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전 시장은 국회의원 선거와 서울시장 재선 등 여러 차례 선거 경험이 있는 만큼 대중 연설과 TV 토론에서 경쟁력을 내세워 본격적인 표몰이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황 전 총리와 오 전 시장은 경력과 정치적 스펙트럼 측면에서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인물이다. 검찰 출신으로 박근헤 정부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지낸 황 전 총리는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반면 변호사 출신인 오 전 시장은 중도적 성향의 보수 인사로 분류된다.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한국당의 색깔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애기다.
황 전 총리는 전통적 지지층을 규합하는 등 보수 우파의 재건을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탄핵 정국 이후 지리멸렬한 보수층의 구심점 역할을 통해 내년 총선, 차기 대선까지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역적으로는 TK의 지지 기반이 한층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전대를 치르는 황 전 총리의 선거 전략은 이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우선 집토끼부터 확실히 잡아두는 전략으로 전대 승리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보수 색채 강화에 따른 확장성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총선 정국에서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과의 단일화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오 전 시장이 ‘중도 확장성’을 내걸고 파고드는 대목이다. 당내 비박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오 전 시장은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한 잠재 주자들의 중도 사퇴로 사실상 비박 단일 후보 효과를 누리게 됐다. 여기에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이 황 전 총리의 지지층과 겹치는 부분도 주목하고 있다. 친박 표심이 분산되면 해볼 만한 구도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막강한 총선 공천권이 ‘핵심’
차기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막강한 총선 공천 권한을 쥐게 된다.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계산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고민의 핵심은 두 가지다. ‘누가 나의 공천을 보장해 줄까’, ‘총선 당선에는 어느 쪽이 도움이 될 것인지’다. 아직까지 한국당 내 의원들의 특정 후보 줄서기 현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추경호·박완수 의원 등 일부 TK 지역 기반의 친박계 의원들이 황 전 총리를 돕고 있지만 친박계나 비박계가 세를 이뤄 특정 후보를 돕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황 전 총리는 입당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고 오 전 시장은 오랫동안 당을 떠나 있다가 복귀해 당내 인사들과의 유대 관계가 강고하지 않다는 평가다. 서로에게 일종의 탐색 기간인 셈이다.
총선에서 자웅을 겨룰 더불어민주당도 한국당의 전당대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누가 제1 야당의 당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총선 전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느 쪽을 선호할까. 표면적으로는 ‘황나땡(황교안 나오면 땡큐)’ 분위기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황 전 총리가 한국당의 차기 당 대표가 되는 게 오 전 시장보다 구도를 짜는 데 수월하다”며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탄핵’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을 비롯해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당 대표의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서울시장을 지낸 오 전 시장보다 황 전 총리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반면 황 전 총리가 보수 우파의 재건을 통해 정부여당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황 전 총리의 그간의 행보를 볼 때 일반 관료 출신 정치인 정도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며 “보수 지지층을 결집해 공세에 나서면 정부 여당이 고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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