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열 막는 필수 부품으로 공급난 심화
갤럭시 S10·폴더블폰 초도 물량도 ‘겨우 확보’

[단독] 비상 걸린 삼성전자, '히트 파이프'를 구하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며 모바일 혁신의 역사를 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에 비상이 걸렸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필수재인 ‘히트 파이프(heat pipe)’ 수급 문제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납품받고 있는 생산 공장은 모두 외국계 기업으로 중국에 있는데,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과열되며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3월과 4월 출시하는 갤럭시 S10과 폴더블폰만 하더라도 필요한 히트 파이프 초도 물량만 3000만 개인데 구매팀이 에이전트를 총동원해 가까스로 물량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후 추가 생산이 필요할 경우 히트 파이프 수급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측은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히트 파이프 업체를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기업 중 스마트폰용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는 업체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갈수록 히트 파이프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안정적으로 히트 파이프를 공급받기 위해 국내 기업을 최우선으로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땅한 기업이 없다”고 말했다.

◆ 중국 스마트폰 생산량 늘면서 수급 차질

삼성전자의 히트 파이프 수급 어려움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8월 출시된 갤럭시 노트9에 들어가야 하는 히트 파이프 중 약 300만~400만 개를 제때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관련 부서 관계자들을 급히 중국 현지 생산 업체로 보내 라인 증설을 요청하기도 했다.

히트 파이프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열을 분산하는 장치로, 현재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모든 스마트폰에 장착된다.

스마트폰이 고사양화되면서 기기에서 발생하는 발열을 잡아주는 중요한 부품이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업체가 없다 보니 중국에 있는 공장으로부터 전량 납품 받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히트 파이프를 에이전트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제품이 출시될 때 디자인과 성능 등을 내부 설계한 후 에이전트를 통해 공급 루트를 확보한다. 이렇게 확보한 공급망은 현재 중국에 있는 4곳의 공장이다.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 2곳과 일본 기업이 운영하는 중국 공장 1곳, 대만 기업이 운영하는 중국 공장 1곳이다. 이들 공장으로부터 삼성전자는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약 1000만~2000만 개의 히트 파이프를 공급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16년 갤럭시 S7 때부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식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위에 수랭식 히트 파이프를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수랭식 히트 파이프 제작이 가능한 이들 공장과 계약하고 공급받고 있다.

수랭식 히트 파이프는 파이프에 소량의 물을 채운 히트 파이프로 AP의 온도가 올라가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 AP와 먼 곳으로 이동시키며 AP 온도를 낮추는 기능이 담긴 부품이다.

이 수랭식 히트 파이프가 귀해진 것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 등이 프리미엄 스펙을 갖추고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면서 수랭식 히트 파이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수랭식 히트 파이프 공장에서 서로 공급을 받다 보니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유해 가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IDC가 발표한 2018년 3분기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보면 1위는 삼성전자(20.3%), 2위 화웨이(14.6%), 3위 애플(13.2%), 4위 샤오미(9.7%), 5위 오포(8.4%)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여전히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전년 동기(2017년 3분기) 대비 1.8%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화웨이는 전년 동기 대비 4.2%포인트나 성장하면서 2017년도 2위였던 애플을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샤오미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점유율이 2.2%포인트 상승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고사양 스펙을 갖춘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히트 파이프 수급에 어려움이 생겼다”며 “이 때문에 에이전트를 대폭 늘리고 신규 생산 업체를 알아보는 등 수량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용량 늘어날 수밖에 없는 히트 파이프

문제는 앞으로다. 히트 파이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불리는 5G 전용 스마트폰을 개발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가장 앞선 기술을 확보한 상태로 3월과 4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 S10이나 폴더블폰에 일부 기능을 적용해 상용화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AP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발생하는 열이 높아진다. 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진일보한 히트 파이프를 개발하거나 아니면 수량을 늘리든지 크기를 키울 수밖에 없다.

만약 5G로 사용되는 AP 속도를 히트 파이프 성능이 따라가지 못하면 5G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 된다. 스마트폰은 뜨거워지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AP는 사람 뇌처럼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면 열이 난다. 스마트폰 발달로 사용자는 한꺼번에 더 많은 앱을 켜 빠르게 여러 기능을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원활한 성능을 내기 위해선 AP 과열을 막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모델의 히트 파이프는 생산이 어려운 상황이다. 기술적 한계다. 지금 사용되는 수랭식 히트 파이프도 발열을 잡기 위한 최첨단 소재와 솔루션이 집약돼 있다.

앞서 설명한 파이프에 물을 채워 수증기를 이용한 방법 외에도 전도성이 높은 탄소섬유까지 보강해 열 분산율을 높이고 있고 열전달 물질 사이에 구리를 추가해 효율적으로 열을 방출하는 쿨링 시스템까지 적용해 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가장 최근에 출시한 갤럭시 노트9에도 새로운 기술이 아닌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번에 출시 예정인 갤럭시 S10이나 폴더블폰 역시 성능은 비슷하고 크기와 디자인이 바뀐 히트 파이프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국내 히트 파이프 생산 업체가 필요하다

더 심각한 것은 필수재인 부품이 전량 중국에서 생산돼 공급된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스마트폰용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가 없다.

이유는 단가 때문이다. 인건비와 원자재 수급 단가가 중국 기업에 밀리기 때문에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업체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현재 삼성전자가 중국 공장으로부터 납품 받고 있는 가격은 1000원 수준인데 국내에서 생산하면 최소 2배 이상 가격차가 벌어진다.

기술력도 중국 업체에 비해 밀린다. 세계 최고의 굴뚝 공장이라는 명성만큼 중국은 제조 산업, 그중에서도 금형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기술자들도 중국에 대거 모여 있다. 구조상 한국 업체가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히트 파이프는 단순한 제조 산업이 아니다. 정보기술(IT) 발달과 함께 스마트폰이 고사양화되면서 함께 발전하고 있는 하이테크 제조 산업이다. 더욱이 스마트폰이 고사양화될수록 히트 파이프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가령 지금과 같은 성능에 크기만 줄일 수 있어도 스마트폰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모든 제조사들이 가져다 쓰는 구조에서는 차별화할 수 없다.

삼성전자도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직접 생산하자니 효율성이 떨어져 어려운 구조이고 국내 생산 업체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업체와의 기술력과 단가 차이도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측은 스마트폰용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기업이 히트 파이프 기술을 축적해 발전시킨다면 이는 곧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내 컴퓨터용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는 업체 몇 곳과 만나봤지만 생산 라인이나 기술력이 부족해 함께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만약 생산 라인이나 기술력이 확보된 기업이 있다면 최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