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리콜 건수 6년 만에 13배 증가
- ‘한국형 레몬법’ 도입했지만 수입차 참여 낮아
대한민국은 지금 ‘자동차 불신’의 시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다. 성능·가격·애프터서비스(AS) 등 자동차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이 모두 불만족스럽다.

특히 일부 수입차 브랜드들이 국내와 해외에서 가격과 리콜(결함 시정) 등 AS에 차별을 두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결국 정부가 나서 불량 자동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는 ‘한국형 레몬법’을 선보이기에 이르렀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아직 여전하다.

자동차 리콜 대수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리콜 대수는 271만5495대에 이른다.

올해도 두 달(1, 2월) 만에 34만6226대가 리콜 처분을 받았다. 2012년 리콜 대수는 20만6237대 수준이었다. 불과 6년 만에 1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리콜이 나쁜 것이 아니다. 차에 문제가 있으니 제조사에서 판매한 차량을 책임지고 고치라는 정부의 시정 조치다. 하지만 문제는 잘 이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리콜 조치 이행률이 낮은 이유는
대한민국은 지금 ‘자동차 불신’의 시대
이는 2015년 9월 벌어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폭스바겐은 국내에서 소비자들이 제기해 진행 중인 법적 다툼을 떠나 한국 정부에 약속했던 리콜조차 마무리 짓지 못했다.

애초 지난해 7월 끝내기로 한 1차 리콜(2만7010대)은 현재까지 이행률이 70%에 그쳤다. 정부에 약속한 85%를 한참 밑돈다. 아우디 모델 등이 포함된 2차 리콜(8만2290대)과 3차 리콜분(1만6215대)도 각각 64.5%, 58.2%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폭스바겐은 해외와 국내에서 다른 이중적인 대응으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폭스바겐은 4조원의 과징금을 물어낸 미국에선 예정 기한보다 1년 앞당긴 지난해 5월 이미 리콜 이행률 85%를 넘겼다.

2016년부터 주행 중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잇따랐던 BMW도 마찬가지다. BMW는 화재 발생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조사가 착수되자 차량 결함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시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BMW 화재 원인을 조사해 온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요청한 기술 분석 자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150여 일이 지난 지난해 말 제출했다. 이 과정에 진행한 리콜도 축소했다.

지난해 7월 1차 리콜로 10만6000여 대를 진행했지만 화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을 사용하는 차종을 제외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2차 리콜이 진행됐지만 리콜 대상 차량 중 50% 정도만 현재까지 조치를 받았다.

국내 수입차 1위인 벤츠도 리콜에는 지지부진하다. 벤츠코리아는 ‘죽음의 에어백’이라고 불리는 다카타 에어백을 탑재한 2017년 생산 차량 3만2000여 대에 대한 리콜 계획을 지난해 말 밝혔지만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다. 올해 2분기쯤 진행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벤츠 측의 공식 발표는 없는 상태다.

이 밖에 지난해 12월 피아트와 지프 일부 차종에서 배출가스 불법 조작이 적발되며 인증 취소와 리콜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리콜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 엄격하지 못한 법을 악용하는 업체들

자동차 제조사들의 리콜 이행률이 낮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이 불법 이익을 얻으면 그보다 훨씬 큰 천문학적 금액을 징벌의 의미로 부과하는 제도다.

한국에선 생명과 신체에 대한 피해에만 소액 배상하는 데 그치고 있다. 반면 엄격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존재하는 미국 등에서는 기업들이 소송에 돌입하기 전에 서둘러 피해자들과 적극 합의에 나선다.

소송에 들어가면 엄청난 배상액을 물게 될 수 있으니 최대한 소비자 요구에 맞춰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피해가 명백하더라도 기업들이 일단 문제를 숨기고 최대한 시간을 끈다. 걸핏하면 소송까지 진행하며 배짱을 부린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대부분이 소액 배상에 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발생 약 9개월 만인 2016년 6월 미국 정부에 배상안을 발표했다. 총 보상금만 18조원으로 차량 환불에 11조원, 차주 1인당 보상금 1162만원, 오염 제거와 친환경기술진흥금 5조5000억원을 내놓았다.

반면 한국에선 과징금 141억원만 납부했을 뿐 소비자에 대한 배상안은 내놓지 않았다. 사과의 뜻으로 100만원짜리 쿠폰만 건넸을 뿐이다. 소비자들이 2015년 자발적으로 진행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데 아직 1심 판결조차 나오지 않은 채 소송 기간만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화재 사고로 리콜 처분을 받은 BMW에 대한 국내 처분도 밋밋하다. 대상 17만 대 중 2만2000여 대에 대해서만 112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을 뿐이다. 이는 BMW가 해당 차종을 판매한 금액의 1%에 불과하다.

현재 BMW 차주들 중 일부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처럼 엄격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다 보니 자동차 제조사들은 문제가 발생해도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이나 BMW 사례처럼 소비자들이 별도로 제기하는 민사소송이 현재 법원에 수십 건 계류돼 있다.

둘째는 ‘자기 인증 제도’의 문제다. 현행 자동차관리법 30조는 자기 인증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자동차를 제작·조립 또는 수입하는 자는 그 차의 형식이 자동차 안전 기준에 적합함을 스스로 인증해야 한다.

정부가 아닌 제조사나 수입사가 자신들이 만들고 수입한 차가 ‘안전한지’, ‘규정에 맞는지’ 스스로 인증한 뒤 문제가 없으면 별도의 검사 없이 판매할 수 있다. 한국은 2003년 이전까지 정부가 인증하는 ‘형식 승인 제도’를 유지했지만 이후 자기 인증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자기 인증 제도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강력한 요구에 시행됐다. 한 해에도 수십 대의 새 모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인증이 늦어지면 판매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정부는 일정 규모의 성능 시험 시설을 갖춘 기업은 스스로 인증해 차량을 팔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자기 인증 제도는 오히려 독이 됐다. 자기 인증 제도로 기업들에 자율성을 부여했지만 기업들은 이에 따른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차량의 자기 인증이 적합했는지 수시로 진행하는 ‘자기 인증 적합 조사’에서 매년 수천에서 수만 대의 차량이 인증 부적합으로 적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에만 현대차·기아차·한국GM·닛산·BMW·푸조·재규어·벤츠 등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기 인증 결과와 실제 차량 성능이 달라 리콜 명령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동차 불신’의 시대
◆ “이제는 바꾸자” 한국형 레몬법 시행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급기야 정부가 나섰다. 올해 1월부터 국토부는 새 차 하자 발생 시 교환·환불이 가능하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일명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을 근간으로 새로 산 자동차에서 반복적으로 고장이 발생하면 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이다. 레몬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하자 있는 상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도된 지 1년 이내이고 주행거리가 2만km를 넘지 않은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되면 자동차 제작사가 이를 교환 또는 환불해 주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원동기·동력전달장치·조향장치·제동장치 등 주요 부위에서 똑같은 하자가 발생해 2번 이상 수리했는데도 문제가 또 발생하면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또한 이처럼 주요 부위가 아닌 구조와 장치에서 똑같은 하자가 4번 발생하면 역시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주요 부위든 그렇지 않든 1번만 수리했더라도 누적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으면 역시 교환·환불 대상이다.

이런 하자가 발생하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탁 운영하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중재에 나서게 된다. 법학·자동차·소비자보호 등 전문가(최대 50명)로 구성되는 심의위는 필요하면 자동차 제조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성능 시험을 통해 하자 유무를 밝혀낼 수 있다.

국토부는 이 같은 레몬법이 시행되면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문제가 있으면 자동차 제조사와 직접 담판을 짓거나 민사소송 또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레몬법에는 심의위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재 판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는 점도 포함됐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으면 강제집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레몬법은 또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되면 당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소비자가 하자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하자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환불 기준도 개정안에 명시됐다. 계약 당시 지급한 총판매 가격에 필수 비용을 더하고 주행거리만큼의 사용 이익을 공제하되 차량 소유자의 잘못으로 자동차의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했다면 중재부에서 별도 검토해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 이익을 계산할 때 한국 승용차 평균수명을 주행거리 15만km로 보고 그에 비례해 산정하도록 했다.

만약 소비자가 3000만원에 구입한 차량으로 1만5000km를 주행하고 나서 환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차량의 10%를 이용했다고 보고 3000만원에서 300만원을 제한 2700만원을 받는 식이다.

여기에 신차 구입 당시 냈던 취득세와 번호판 값도 자동차 회사에서 받을 수 있다. 또한 자동차 제조사는 소비자와 신차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교환·환불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 강제성 없고 모호해 ‘반쪽’ 우려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형 레몬법이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한국형 레몬법은 징벌적 배상이나 처벌 등의 내용이 미국보다 다소 빈약하고 강제성보다 권고 성향이 강해 도입을 미루더라도 제재나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입차 브랜드들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의 허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중재 결과는 강제성을 띠지만 중재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 △도출된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문제 제기 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점 △하자 원인 규명을 출고 6개월 이내만 제조사가 책임지고 이후는 소비자가 증명 △교환 환불 기간이 1년에 불과한 점 등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새로운 제도가 실질적인 법적 효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상의 기준이 되는 결함 규정을 구체화하고 제조사에 책임을 선제적으로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년 신차 출고 후 하자 발생으로 교환 환불을 요청하는 건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교환·환불은 4~5건만 배상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선 자동차 분야에서 아직도 많은 법적 부분이 소비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결함에 대한 중요성을 나누는 기준이 모호해 논쟁의 여지가 많다”며 “특히 결함 원인을 별도 기관이 아닌 제조사나 소비자가 직접 밝혀내야 한다는 점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그동안 자동차의 하자가 발생하면 운전자와 소유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한국형 레몬법은 다소 발전된 법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입법 당시부터 무용론이 언급된 바 있다.

이 밖에 레몬법 도입이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한국형 레몬법은 도입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참여 기업들의 수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수입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요지부동이다. 현대차·기아차·쌍용차·르노·한국GM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지난 2월 도입을 확정한 반면 수입차 업체들은 절반도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국내 수입차 시장의 ‘빅3’로 불리는 벤츠·BMW·폭스바겐&아우디 중에는 BMW만 레몬법 도입을 결정했을 뿐이다. 물론 볼보·닛산·도요타·롤스로이스 등 일부 수입차 브랜드가 참여하긴 했지만 참여하지 않는 수입차 브랜드가 더 많다.

수입차업계는 일부 부품의 경우 국내 조달까지 한 달이 걸리는 것이 종종 있어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을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소비자 환불 조항에 대해 완화를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수입차 업체들의 참여가 부족하자 국토부는 1월에 이어 3월에도 참여하지 않은 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갖고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 [돋보기] 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불신의 늪’
- 누구는 얼마에 샀는데 나는 왜?…‘고무줄 차 값’ 이유는

많은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불신에 빠져들 때가 많다.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는 차량의 가격이 실제 현장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자동차의 판매 구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국산차는 공식적으로 할인 혜택을 제공해 그나마 덜하지만 수입차는 판매 시기, 딜러에 따라 판매 가격이 제각각이다. 이유는 국내 유통 단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만들어진 수입차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팔리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수입차는 제조사와 직접거래가 아닌 국내에 별도로 설립한 법인에서 수입한다. ‘○○코리아’라는 곳이다.

이후 이곳은 국내 딜러사에 차량을 배정하며 중개·판매권을 넘긴다. 소비자들이 직접 대면하는 곳이 바로 딜러사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입차들의 딜러사는 한 곳이 아니다. 지역·권역별로 여러 개 업체로 나눠져 있다.

특히 판매량이 많은 벤츠·BMW·폭스바겐&아우디 등은 딜러사 숫자가 10개도 넘는다. 당초 이들 딜러사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만 판매해 왔지만 경쟁이 심화되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한 정보가 공유되면서 시장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보에 취약한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똑같은 차량을 구입하는데 정보의 습득 노력과 능력에 따라 차 값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또 ○○코리아와 각 딜러사들 간의 이해관계와 판매 목표에 따라 매달 달라지는 프로모션 때문에 차량을 구매하는 시점에 따라 동일 차종의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수입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가격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원성이 예전부터 빗발쳤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상황이다. 수입차 업체들은 폐쇄적인 경영으로 일관하며 가격 결정과 판매 정책에 대한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5호(2019.03.11 ~ 2019.03.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