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난해 국내 23개 증권사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5억원 이상 연봉자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업무 분야는 ‘부동산 금융’이었다. 김진영 하이투자증권 투자금융총괄 부사장(약 27억원), 박정준 부국증권 IB사업본부 부사장(약 19억7000만원), 김철은 유진투자증권 IB본부장(19억 7000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증권맨들 사이에서 ‘잘나가는’ 부서를 꼽으라면 단연 투자은행(IB) 부문, 그중에서도 부동산 금융 업무다.
은행과 자산운용 업종도 마찬가지다.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분야가 ‘부동산’이다. 부동산펀드와 리츠 등 부동산 관련 금융 상품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 부동산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동산대학원’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대학원인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지난해 경쟁률은 7 대 1을 기록했다.
◆증권업계 고액 연봉자 대부분 ‘부동산 금융’
국내 대형 증권사에 근무하는 A팀장은 지난해부터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이다. 현재 그의 주 업무는 외환채권 거래다. 채권 전문가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 온 그가 ‘부동산’에 눈을 돌린 이유는 최근 증권업의 수익 구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A팀장은 “증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큰 수익’을 내는 곳은 결국 부동산 투자금융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위험이 높지만 그만큼 보상도 커 관련 부서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A팀장도 부동산 금융 관련 부서의 문을 두드려 보려고 했지만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 최근 증권사들은 부동산 금융 부문을 강화하며 꾸준히 인력을 확충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제 건설사나 부동산 신탁사 등에서 경력을 쌓은 외부 인재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A팀장은 “부동산 금융 쪽은 업계 네트워크가 워낙 중요한 분야여서인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 다른 업무를 하던 이들이 쉽게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며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성도 쌓고 업계 관계자들과 인맥을 다지면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동산대학원이 부동산 금융 부서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부동산 금융 부서에서 밑바닥부터 경력을 다시 쌓아 올라가는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미 팀장 직급까지 단 그로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방법이다. 실제로 A팀장의 동료 중 부동산 금융 업무로 옮겨갔지만 적응에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요즘 A팀장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동산대학원이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입학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이다. 2001년 일찌감치 설립돼 ‘업계 내 졸업생들의 영향력’이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승우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금융투자 주임교수는 “졸업생들 가운데 국내 주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서 부동산 금융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부사장·전무 등 임원급으로 승진한 이들이 적지 않다”며 “여의도에서 월급 을 많이 받는 임원들 중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출신들이 많은데 이들이 롤모델이 돼 좋은 인재가 몰리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이 이처럼 인기가 치솟으면서 최근에는 ‘재수·삼수는 기본’이라는 입학 후기가 넘쳐날 정도다. 8전 9기 끝에 입학에 성공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특히 최근 들어 은행·자산운용사·증권사의 상무·전무급 임원 중에서도 부동산대학원 진학을 택하는 들이 상당수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금융업계 경력으로는 부동산대학원 입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경쟁률은 7 대 1을 기록했다. 신입생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전체 88명 중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계 출신의 비율은 대략 25% 정도다. 선발 당시부터 지원자들의 직업별 분포를 고려하는 만큼 금융계 출신 지원자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셈이다.
신승우 부동산대학원 금융투자 주임교수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금융업계에서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며 “최근에는 금융업 전반적으로 부동산 금융 등 대체투자가 중요하지면서 경쟁률이 더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 부동산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근에는 한양대 등에서도 부동산 관련 전문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금융도 AI 시대, ‘부동산’이 더 뜨는 이유
신 교수는 특히 최근 금융업계에서 부동산대학원에 관심이 높아진 배경으로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의 발달을 꼽았다. 이미 금융 업무의 상당수를 AI와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체하고 있다. 반면 부동산은 AI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은 성격상 각 지역이나 물건마다 특징이 다양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AI 활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분야는 자기 전문성만큼이나 다양한 각계 전문가와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부동산 업무의 특성상 단계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강점으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 기회’다.
현재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금융투자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찬익 KEB하나은행 차장은 재수 끝에 입학했다. 김 차장은 “은행에서 거의 30년 근무했는데 최근 업무 환경의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미 은행 업무의 상당 부분이 비대면 온라인 거래로 넘어갔다. 영업점 숫자가 줄고 업무 방식도 달라졌다.
김 차장은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줄면서 은행원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영업점에서도 예전과 비교해 거액 자산가들에 대한 자산 관리나 영업이 중요해지는 분위기여서 부동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가들은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2003년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한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의 B 상무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B 상무는 “최근에는 부동산 펀드나 리츠처럼 ‘부동산’을 기본 자산으로 한 금융 상품이 앞으로 더욱 많아지고 있다”며 “이와 같은 상품들이 많아질수록 금융계에서도 부동산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자산을 기초로 한 금융 상품들이 더욱 많아지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 ‘고령화’ 흐름이다. 변동성이 큰 주식과 비교해 부동산을 기초 자산으로 한 금융 상품은 월 단위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상무는 “여기에 더해 최근 금융회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아무래도 해외 부동산으로도 적극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며 “부동산 금융과 관련해 더욱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내 부동산금융투자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신혜영 이케아 코리아 부동산 자산 매니저는 “개인적으로는 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대학원 진학이 금융회사의 부동산 금융 부서로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실제로 주변에도 비슷한 계획을 갖고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대학원 진학에 성공한다고 해서 ‘부동산 금융’으로의 진출이 무조건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업계 전문가 혹은 재학생들 간의 ‘교류’를 중심으로 학업이 진행되는 만큼 이와 같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중간에 낙오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건대 부동산대학은 네 개의 전공 과정으로 운영된다. 부동산경영·부동산건설개발·부동산금융투자·글로벌프롭테크다. 금융계 출신들은 대부분이 ‘부동산금융투자’를 전공한다. 모기지와 같은 주거용 부동산 시장부터 상업용 부동산 시장까지 폭넓게 다룬다. 부동산 파이낸싱 외에 여기에서 파생된 주택저당증권(MBS)·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부동산펀드·리츠 같은 상품까지 폭넓게 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 네트워크 통로 역할
이와 같은 이론 교육 바탕 위에서 ‘학회’나 ‘세미나 활동’이 매우 활발히 진행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학생들 간의 정보 교류나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방점을 찍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 금융과 관련한 가장 최신의 정보나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는 이미 실무에서 뛰고 있는 재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진행되는 세미나에서는 학생들 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특강을 통해 업계 최고 전문가와 만나 그들과 의견을 나누는 기회도 자주 주어진다. 이와 같은 특강 요청은 교수들이 주선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특강을 요청해 만나는 것도 적지 않다.
김 차장은 “부동산대학원 진학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각계각층 부동산 전문가들과 접점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업무 중 누군가가 그에게 부동산과 관련해 문의하면 그중엔 그가 직접 답을 주지 못하는 것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럴 때 ‘누구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는지 알고 또 그 ‘누구’와 연락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업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돋보기-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 “국내 부동산업계의 와튼스쿨로 키울 겁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은 2001년 국내 최초의 부동산학 교육 전문 특수대학원으로 설립됐다. 15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내며 금융을 비롯해 국내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부문에 탄탄한 영향력을 구축하고 있다. 4월 10일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해봉관에서 고성수 원장을 만났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이 최근 금융업계 전문가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일본·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동산 규제가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부동산학’이라는 학문 또한 행정대학원 또는 도시공학이나 도시개발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경향이 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경영학의 관점에서 부동산이라는 산업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학원이라는 데 차별점이 있다. 부동산 산업에서 금융시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대규모의 부동산 개발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고 금융이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쟁률이 높아 재수·삼수를 택하는 이도 많다고 들었다. 학생 선발의 기준이 있나.
“지난해에는 경쟁률이 7 대 1이었고 경쟁률이 높을 때는 14 대 1에 달했던 적도 있었다. 국내 부동산 관련해서는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정말 많이 지원한다. 특히 변호사·회계사와 같은 전문직들도 많고 최근에는 금융업계에서 지원하시는 이들도 정말 많이 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력과 열정이다.
기본적으로는 한 학기의 학생을 선발할 때 ‘재학생들만으로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참여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중개업자도 필요하고 시행사와 시공사도 필요하지만 변호사·회계사 그리고 부동산 금융 전문가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 법대 출신의 변호사가 재수·삼수를 하는 이도 있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가 한 번에 덜컥 합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원에 참여했을 때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동문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팁을 주면, 재수·삼수를 하는 이들도 많은데 그만큼 열정을 보여준 이들에게는 가산점이 붙기도 한다.”
-국내 부동산 금융시장이 성장해 갈수록 해외 대학이나 기관과의 교류도 확대되고 있나.
“부동산 금융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미국 조지아대와는 오래전부터 교환학생 제도를 운영 중이다. 그 외에 미국의 위스콘신대와 복수 학위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그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CCIM 등 국제적인 부동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CCIM은 미국이나 영미권 국가에서 부동산 업무를 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격증이다. 미국 CCIM협회와 협약체결을 통해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재학생 및 졸업생은 CCIM 핵심과정 4과목(CI101~104)중 3과목을 50% 할인된 금액으로 들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 왕립평가사협회(RICS)에서도 자격을 인증 받았다. 영국은 지정된 몇몇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만 부동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우리 학교가 그 리스트 안에 들어간 것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금융업계에서 해외 부동산 딜이 많아지며 더 많은 이들이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 관심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향후 발전 방안이나 포부는 무엇인가.
“금융시장에서 부동산 전문 인력의 수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 인력 양성소’로서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사명감이 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은 국내 유일의 전문적인 ‘부동산 스쿨’로서 자부심이 크다.
포부를 말하자면 미국 유펜의 와튼스쿨처럼 키우고자 한다. 와튼스쿨은 유펜대의 명성이 아니라 경영대학원으로서 훌륭한 교수진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독립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건국대 대학원은 이미 국내 부동산업계에서 우수한 인력들을 배출해 내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내 부동산업계의 와튼스쿨처럼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들을 추진 중이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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