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인’ 상황 만들어 궁지로 몰고 협상 시작…공포와 상황 회피 심리 활용

상대 약점 교묘하게 파고드는 ‘야쿠자 협상술’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조직폭력단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음모와 배신의 스토리가 스릴 넘치는 액션으로 포장되고 충성과 의리의 비장함이 더해져 감동을 준다. 자극적인 유흥과 범죄가 야릇한 색깔로 등장하고 처절한 생존 투쟁의 현장에 순애보가 피어나면 재미와 감동은 더 커진다.


199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는 주인공들을 동경한 청소년들이 조직폭력단 두목과 검사를 장래 희망 직업으로 나란히 꼽은 일도 있었다. 미국의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 역시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소설·만화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조직폭력단의 조직 구성과 운영은 정치나 기업의 현실과도 비슷한 면이 많아 복잡하게 얽힌 이해 다툼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잘 만들어진 조직폭력물에서 생각의 밑천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마피아나 야쿠자를 전문으로 다루는 작가나 매체가 꾸준히 독자를 확보하고 있고 경영학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사례로 다뤄지기도 한다.


◆경영학의 상식을 뒤집는 ‘야쿠자 협상술’


조직폭력단 두목은 대기업 사장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대기업 사장은 첨단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국제적 사업을 위해 외국어 실력이나 견문도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부리기 만만해 오래 살아남은 ‘대주주의 가신’도 있고 무책임과 비굴함이 특기인 ‘회사 공무원’도 있다.


법과 제도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영역에서 거칠고 험한 사람들과 함께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조직폭력단 일이 훨씬 어렵다. 물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험한 사람들 상대하며 세계를 상대하는 대기업으로 키운 사람들이 당연히 더욱 훌륭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법적 폭력에 의존하는 조직폭력단 일이 무엇이 힘드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협박범이 되고 작은 신체 접촉에도 폭력범이 되는 세상에 영화와 같이 떼거리로 무기를 휘두르며 날뛰면 당장 잡혀간다.


‘배경’을 팔아 위협하거나 회유하려면 꾸준하게(때론 쓰이고 버려지면서도) 정치적 활동에 끼어야 하고 ‘조직’을 유지하려면 합법의 세계에 있는 멀쩡한 회사들과도 경쟁과 협력의 게임을 풀어가야 한다.


일본의 야쿠자 전문 작가인 무카이다니 다다시 씨는 그의 저서에서 야쿠자 특유의 협상 기법을 재밌게 정리한 바 있다. 협상이 전략의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고 관련 연구도 많은데 왜 구태여 야쿠자 얘기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겠지만 경영학 분야의 협상은 ‘안정된 상황에서의 합리적 분석’을 주로 다룰 뿐이다.


협상 상대의 심리를 활용하는 전략도 있지만 역시 ‘상대를 이해하고 타협하는’ 착한 이야기들이다. 야쿠자 협상술은 국면을 주도하고 사람을 뒤흔드는 ‘나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룬다.


전략은 구체적으로 협상을 통해 실현된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을 계획해도 결국 사업장을 확보해 필요한 설비와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땅 주인이나 설비 업자나 지역정치나 다들 이해관계와 속사정이 있으니 서로의 의견을 맞춰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사람들이 경영학 책에 나오는 합리적이고 선한 사람들이란 보장이 없다. 폭주 차량을 피하는 방어운전, 불량배의 행패를 막는 호신술이 필요하다면 야쿠자 협상술도 살펴볼 일이다.


야쿠자는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강압적인’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협상을 시작한다. 약점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고 없으면 최소한 트집이라도 잡아 기선을 제압하고 굴복을 강요한다. 자신들이 유리한 장소로 불러 야쿠자 특유의 몸짓과 말투로 공포감을 자아내고 적절한 시점에 ‘격분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요란한 문신과 ‘특별한’ 의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무서운’ 이미지를 고스란히 활용할 수도 있다. 폭력의 실체를 몰라 겁먹지 않는 상대의 기를 꺾기 위해 옆에 있는 자기 조직원들을 심하게 때리는 경우도 있다(국내 영화에도 가끔 나오는 장면이다).


생각이 많으면 싸움에서 진다. 피해가 예상되면 득실 계산이 작동하고 타협이나 철수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잃을 것이 없는’ 야쿠자는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 ‘독한 놈’이라는 평을 쌓으면 상대는 버틸 의지를 잃는다. 손해가 분명한데도 과격한 폭력 행위를 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라고 알려지면 더욱 유리하다. ‘조직 내 절대 복종, 물러서면 처단’ 같은 나름의 규칙을 내세우면 상대는 “어디 끝까지 해볼까요”라는 말 한마디에 물러서기 시작한다.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상대를 휘두르는 전술은 부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역시 트집 잡기와 격분 퍼포먼스가 종종 사용된다.


따뜻한 말투로 부하에게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고는 어느 순간 “진즉에 자신 없으면 말을 하지 이제 와 어쩌란 말이냐, 책임져라”고 떠넘기기도 한다. 쓸모없는 부하는 경쟁 조직에 트집을 잡기 위해 ‘기웃거리다가 맞고 오는 총알’로 쓰는 경우도 있다.


야쿠자 부하들도 생존의 지혜가 있다. 책임을 떠넘기는 보스에게 적절한 중간 보고와 지원 요청으로 트집거리를 없애고 보스의 명령이 주변에 알려지게 만들어 여론을 작동한다.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널리 인정받을수록 보스의 트집과 격분은 치졸한 일이 되고 만다. 망하는 조직에서는 과감하게 측근들을 모아 탈출하거나 스스로 조직을 접수한다.


◆겁부터 먹는 노예 마인드로는 전략 무의미


언어는 수학이 아니다. 같은 말도 분위기와 앞뒤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니 유능한 야쿠자는 철저히 계산하고 연출해 말을 꺼낸다. 말 중간에 멋대로 “그러니까 이런 얘기군요”라고 하며 결론을 지어버리기도 한다.


생트집에 억지 논리로 시작해 사정 봐주는 듯 살짝 물러서면 순진한 상대는 오히려 고마워한다. 반대로 작은 요구를 관철시켜 발을 들여 놓은 후 계속 판을 키우면서 뜯는 경우도 있다.


같은 사안도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10억원 드는 작업에 착수금 5억원을 덜컥 요구하면 정말 깡패로 보이지만 “우선 절반을 책임지고 시작할 테니 같이 부담해 달라”고 하면 배려하는 사업가로 보인다.


접대 연회는 상대에게 야쿠자가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모아 보여주고 환대 받았다는 빚을 안겨주는 중요한 행사가 된다. 물론 나중에 트집거리로 삼을 상대의 말과 행동도 잔뜩 확보한다.


무작정 몰아붙이고 트집만 잡으면 순진한 상대도 정신 차리고 도망갈 수 있다. 그래서 야쿠자는 슬쩍 자신의 사소한 억지를 인정하면서 핵심 이슈에 집중한다. 겁먹은 민간인이 어설프게 수긍하거나 사과하면 그대로 트집거리가 된다.


부하에게 고함치며 윽박지르게 하고 막상 보스는 점잖은 말투로 요구 내용을 제시하면 순진한 상대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마음에 덜컥 받는다.


야쿠자 협상술에 나오는 기법들은 게임 이론이나 심리학 입문서에도 다 나오지만 사람들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기 때문에 여전히 효과적이다. 마피아나 야쿠자는 자신들의 잔인한 행동이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를 사업 밑천으로 삼는다.

상대 약점 교묘하게 파고드는 ‘야쿠자 협상술’


대중이 조직폭력단을 두려워할수록 트집과 억지에 취약해지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약한 마음에 쉽게 물러서기 때문이다. 그들이 멋있게 나오는 영화도 역시 도움이 된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 그들의 따뜻한 말과 표정에 덜컥 마음을 풀고 순진한 젊은이들이 화려한 인생을 동경해 모여들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약해서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겁을 먹어 판단이 흐려지거나 자기 약점을 인정하기 싫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른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야쿠자 협상술은 공포나 상황 회피 같은 마음의 빈틈을 폭력조직에 대한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을 쐐기로 삼아 파고든 것이지만 정치나 기업의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사장도 대주주 경영자 앞에서는 혼이 빠져 헤매기도 한다. 일부러 쩔쩔매는 척하는 처세의 달인도 있지만 많은 경우 길들여진 행동 반응이 공포감으로 이어져 머릿속이 하얘진 결과다.


숨길 것은 많고 가진 것은 잃기 싫어 두뇌 회로가 엉켜버리는 결과일 수도 있다. 과중한 일에 시달리다 보면 기가 꺾이고 상황에 순응하게 되는데 말 많은 교수들에게 연구 업적 부담을 잔뜩 줘 길들였다는 무용담도 있거니와 현실감 없는 장관을 공무원들이 강행군 일정으로 돌려 길들였다는 후일담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의 빈틈이 뚫려 휘둘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우선 스스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 찾으면 3분이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을 한 학기 내내 외워 몸과 마음을 시들게 하지 말고 어떻게든 운동을 하고 기백을 키워야 한다.


한때 온 국민의 존경을 받던 모 기업인은 ‘주눅 들지 않고 버티는 깡’을 인재의 요건으로 꼽은 바 있다. 격투기는 남을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맞고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수련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쉽게 무릎 꿇고 포기하는 생각의 습관은 늘 휘둘리는 노예의 삶을 가져오게 된다.


숨기고 변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능력을 넘어서면 결국 마음의 빈틈은 더 커지고 영악한 상대에게 더 휘둘린다. 시키는 일에 짓눌려 헤매다 보면 기가 꺾여 길들여지고 소모품이 된다.


그럴수록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고 같이 생각해 볼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 겁먹어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문제를 피하려고만 드는 노예 마인드에 전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