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 진입이 비트코인 선호 현상 높여
- 미래엔 각 프로젝트의 가치 인정받을 것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비트코인 도미넌스(dominance)’다. 비트코인 도미넌스는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 중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퍼센트로 표시하는 지표다.
비트코인 도미넌스는 2017년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있기 전까지는 80~90% 수준으로 유지됐다. 10년 넘게 비트코인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새 암호화폐들이 등장하면서 2018년 1월 이 수치는 약 34%까지 내려왔다.
그 후 2018년 한 해 동안 거의 모든 암호화폐 가격이 계속 떨어졌지만 비트코인은 다른 암호화폐(이하 알트코인) 대비 상대적으로 적게 떨어지면서 비트코인의 도미넌스가 증가하게 된다.
2019년에 들어서면서 암호화폐 가격은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여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7년 상승 때와 달리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약 68%로 한때 70%에 가깝게 오르기도 했다. 이는 암호화폐 열풍이 막 시작되던 2017년 4월과 같은 수치다. 그러면 이 같은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비트코인의 시가총액 비율이 높아졌다는 사실 이외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시장의 어떤 변화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올 들어 비트코인의 가격은 1월 약 4000달러(483만원)에서 8월 현재 약 1만 달러(1207만원) 수준으로 250%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대부분의 알트코인은 이만큼 가격이 오르지 못했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1월 기준 134달러(16만원)에서 8월 현재 185달러(22만원)로 34% 정도만 올랐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많은 사람이 알트코인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알트코인은 비트코인 이외의 모든 암호화폐를 의미한다. 비트코인이 계속해 독주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성공 사례가 없는 알트코인들
단순히 가격 상승 폭이 낮다고 이러한 지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알트코인이 등장하고 지지를 받은 것은 비트코인과 다른 새로운 가치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트코인의 성능을 개선하겠다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용 시나리오 자체를 비트코인과 차별화한다. 이를테면 1위인 비트코인은 누구나 기록이 가능한 단순한 분산 원장으로 설계됐다면 2위인 이더리움은 확장성 있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강조했다. 3위인 리플은 빠른 국제 송금 등의 기능을 차별화 요소로 제시했다.
다른 알트코인들도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알트코인이 끝났다’라는 주장은, 즉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블록체인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에 대한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불신이 난데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는 2017~2018년 동안 조성된 블록체인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실망에서 비롯된다. 급격히 형성된 거품 속에는 기회주의적으로 만들어진 속 빈 강정 같은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사실 제대로 된 사업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곳도 상당하다.
블록체인의 실사용 사례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스마트 콘트랙트를 강조하던 이더리움이 크게 주목받은 2017년 초부터 2년 반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이렇다 할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대감은 배신감이 됐다. 여기에 비트코인만 독주하며 언론에서 연일 비트코인만 조명하는 상황이 이어지니 알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식는 것은 이해가 된다. 실제로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증가한 것에는 알트코인에 대한 실망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크게 바뀌는 현재 상황을 알트코인의 몰락으로 전부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수의 알트코인이 2019년 초 대비 가격 상승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가총액 상위 10개 중에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인 USDT를 제외하면 모두 2019년 초 대비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특히 아직은 전체 규모 면에서 전통 금융 대비 미미하지만 탈중앙화 금융(DeFi)과 같은 영역들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알트코인의 몰락이 아니라면 더 적절한 설명은 무엇일까. 비트코인은 처음에 P2P 전자화폐 시스템으로 제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은 세상에 나온 이후 대안 화폐로서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항상 도전을 받아 왔다. 수년에 걸친 여러 가지 논쟁과 사고 실험 끝에 현재 대부분의 지지를 받는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는 바로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이다. 쉽게 말해 디지털 금(Digital Gold)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류에 맞춰 비트코인과 같은 토큰을 설명할 때 암호화폐(Cryptocurrency)보다 암호자산(Cryptoasset)이나 가상자산(Virtual Asset)이라는 단어를 쓰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비트코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소비자 집단도 달라졌다. 약 10년간 개발자·공학자·소매투자자들이 주로 구매하고 소유하던 비트코인이 이제는 전통적인 금융권 기관투자가들의 흥미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의 상관관계 낮아질 것
기존 암호화폐 시장은 개인 투자자 중심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중심에 놓고 알트코인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비트코인의 개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많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이 많이 오르면 그만큼 알트코인에 유입될 수 있는 자본금이 늘어나므로 일종의 낙수효과가 생겼다.
하지만 전통 기관투자가는 개인 투자자들과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 금융권에서는 주식·채권·부동산 등의 다른 자산과 비교하며 비트코인을 바라볼 것이다. 비트코인을 기존 자산들과 다른 리스크 구조를 가진 자산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리스크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자산에 편입했을 때 전체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전통 기관투자가는 어떤 식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할까. 아마도 일종의 헤징 목적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아주 낮은 비율을 암호화폐에 할당할 것이다.
또 여러 가지 암호화폐 중에서 당장 비트코인만을 투자 대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알트코인들은 위험도가 훨씬 높고 각각의 고유한 리스크가 있으며 개별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비트코인에 몰릴수록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높게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우리가 비트코인 도미넌스를 주의 깊게 보는 이유는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들의 가격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트코인과 비트코인의 상관계수는 0.5~0.9다. 각각의 차별성을 감안할 때 실제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의 가격 상관관계는 점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것은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이라는 표준에 의해 관리되는 자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토큰은 그릇에 지나지 않고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은 각 자산마다 천차만별이다.
비트코인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그 가격에 대한 예측이 수요의 근원인 자산도 있다. 반면 소각 모델이 존재해 일정 기간당 소각량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전통적인 주식 가치 평가 모델인 현금흐름 할인법(DCF) 같은 것을 사용해 가치 평가가 가능한 자산들도 있다. 또 워크토큰(Work token)이라는 모델은 보유한 토큰 양에 비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 기대 수익을 가지고 토큰의 가치를 역산해 볼 수도 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암호화폐의 본질과 가격 형성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다양한 자산들이 단순히 비트코인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언젠가는 비트코인 도미넌스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각 투자자의 성향과 철학에 따라 다른 자산들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관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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