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의 중립성·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트위터·피델리티도 비슷한 움직임
‘오픈 소스’와 ‘비트코인’에 푹 빠진 마이크로소프트
(사진)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활’을 이끌어 낸 사티아 나델라 CEO./연합뉴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텔레그램·JP모간·웰스파고·월마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아직 청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수면 아래서 용의주도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라인이 각각 ‘클레이’와 ‘링크’를 발행해 생태계를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은 디앱(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와 보안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을 뿐 자체 디지털 화폐 출시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이 자사 디지털 화폐의 생태계를 키우는 것을 모색하는 대신 비트코인 개발과 활용 방안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려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이 다소 황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기업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면 비트코인은 망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중립성, 네트워크 효과, 글로벌 인지도를 고려할 때 내수 시장에 국한된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트위터-스퀘어 그리고 피델리티다.

MS가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회사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MS는 악명 높은 독점기업이었다. PC 시장의 지배력과 자본을 활용해 경쟁사를 인수하거나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 잠재적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 MS의 방식이었다. ‘수용하고 확장하고 멸종시켜라’는 MS의 전략은 유명하다. 개방성·다양성·혁신성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에서 MS의 지위는 존경받지 못하는 졸부의 그것과 비슷했다.

한때 MS 경영진은 오픈 소스를 규탄했다. 오픈 소스는 저작권자가 소스 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이를 자유롭게 열람·수정·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뜻한다. 윈도우·익스플로러·오피스와 같은 독점적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내던 MS가 오픈 소스를 적대시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로 MS의 1대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창업자는 오픈 소스 개발자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했고 2대 CEO 스티브 발머는 “리눅스는 지식재산권에 붙은 암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델라상스’ 신조어 만든 사티아 나델라

하지만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3대 CEO에 취임하면서 오픈 소스를 대하는 MS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나델라 CEO는 기업 행사장에서 ‘MS는 리눅스를 사랑한다’는 발표 자료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선대 CEO들이 리눅스 비난에 날을 세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무척 고무적인 변화다.

참고로 나델라 CEO는 폐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DNA를 지닌 MS의 변화를 주도하고 성공적으로 클라우드 사업을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델라 CEO가 MS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뜻인 ‘나델라상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나델라가 CEO로 취임한 이후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는 2018년 MS가 소스 코드 저장소 깃허브를 약 9조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는 MS가 오픈 소스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깃은 소스 코드를 관리하기 위한 분산형 관리 시스템으로, 깃허브는 오픈 소스 개발자들에게 놀이터와 같다. 2000만 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깃허브에 8000만 개가 넘는 소스 코드를 공유하고 협업해 결과물을 개선한다. MS는 깃허브 경영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깃허브를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 성장에 활용할 예정이다.

MS가 갑자기 오픈 소스에 푹 빠진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MS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오픈 소스의 중요성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전략을 고수하던 MS는 PC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시대를 선도하지 못했다. 새로운 도전자들은 오픈 소스를 활용해 MS를 능가하는 경쟁자로 성장했고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한 MS는 경쟁에서 밀려 도태됐다. 예를 들어 구글은 오픈 소스인 안드로이드(모바일 OS)를 활용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을 손쉽게 장악했다. 반면 윈도우를 고집한 MS는 모바일 OS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MS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게이츠 창업자가 2014년 “비트코인은 화폐보다 낫다”고 발언한 이후 MS는 비트코인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예를 들어 2014년 이후 MS는 자사의 서비스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게다가 2017년 MS는 엑셀에서 비트코인을 다룰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고 2018년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가 설립한 기관용 비트코인 플랫폼인 백트에 투자하며 파트너로 참여했다.




‘탈중앙화 아이디’로 반전 노리는 MS

또 2019년 MS는 비트코인에 기반한 ‘탈중앙화 아이디(DID : Decentralized IDentifiers)’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탈중앙화 아이디는 공인인증서·e메일·전화번호처럼 중앙화된 형태의 인증 없이 디지털 신원을 인증하는 방식이다. MS는 아이온(ION : Identity Overlay Network)이라는 오픈 소스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MS가 비트코인 DID로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에지(인터넷 브라우저)·빙(검색엔진)과 같은 MS의 서비스가 구글의 크롬(인터넷 브라우저), 구글(검색엔진)에 밀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MS가 어떻게든 이 시장을 탈환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자사 계정으로 로그인’이라는 방식으로 온라인 지배력을 넓힌 구글과 페이스북이 최근 프라이버시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MS의 관점에서 비트코인 DID는 어쩌면 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특정 주체와 이해관계가 없는 비트코인은 분명 오픈 소스의 잠재력을 깨달은 MS에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을 것이다. 비트코인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 구축을 계획하는 MS의 행보는 자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거나 프라이빗 블록체인 메인넷을 구축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 현저히 다르다. 폐쇄적인 독점 기업에서 개방과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MS의 연륜이 돋보인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