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정쟁에 밀려 뒷전으로 팽개쳐진 나라 살림 심의-국감, 정기국회 전으로 옮기고 심의 시간 늘려야
법 어기기 ‘밥 먹듯’·턱없이 짧은 기간…국회 예산·결산 심의 이대로 괜찮나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국회가 전년도에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살펴보는 결산 심의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2004년이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정부가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중복 지출은 없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잘못된 것은 고쳐 예산을 절약하자는 취지였다.

정부에서 매년 5월 전년도 예산·기금 결산안을 넘겨받아 심의한 뒤 지적 사항들을 정부에 전달하고 다음 연도 예산안을 짤 때 반영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국회는 정부가 다음 연도 예산안을 확정하기 전에 결산안 심의를 마쳐야 한다. 국회법 128조2항엔 국회가 결산에 대한 심의·의결을 정기국회 개회(9월 1일) 전까지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2011년 한 차례뿐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 스스로 법 어기기를 예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2016 회계연도 결산과 2017 회계연도 결산은 모두 정기국회가 끝나기 직전인 12월 6일과 12월 8일 각각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년도 결산안과 새해 예산안을 함께 통과시킨 것이다. 올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법정 시한을 두 달 가까이 넘긴 10월 22일 결산심의안을 의결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편성이 끝나 지난 9월 3일 국회에 제출됐다. 결산안이 뒤늦게 처리되다 보니 매번 결산 심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정부의 새해 예산안 편성이 끝나버리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나온 지적이 차기 연도 예산 편성 과정에 반영될 리 없다. 국회 관계자는 “전년도에 정부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했는지 따져보는 결산을 정기국회 시작 전에 끝내라고 한 것은 결산 결과를 차기 연도 예산 심의에 반영해 조금이라도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으나 매년 결산안이 반 년 이상 국회에서 먼지만 쌓인 채 법 규정이 유명무실화되기 일쑤”라며 “이럴 바엔 왜 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 지난해 예산 434조원 씀씀이 심의 두 번 회의로 ‘끝’

결산 심의가 이렇게 늦어지는 것은 정쟁에 묻혀 의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조국 사태’,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을 둘러싼 여야 간 싸움으로 지난 5월 31일 정부에서 넘어온 ‘2018 회계연도 결산안’은 8월 26일에야 예결위에 상정됐다.

부실 심의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결산안이 예결위에 상정된 뒤 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한 것은 9월 17일과 18일 이틀 밖에 안 된다. 작년도 예산 총지출액 434조1000억원의 씀씀이를 두 번의 회의에서 제대로 심의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라 살림 결산 심의가 요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예결위 소속 한 관계자는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데는 혈안이면서도 혈세가 제대로 쓰였는지 감시하는 본연의 업무엔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 회계연도 예산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심의 시일이 짧아 벼락치기, 졸속 심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적 처리 심의 시한(12월 2일)을 넘기기 일쑤지만 국회는 개선점을 찾지 않고 있다.

보통 차기 연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시기는 정기국회 개회 즈음이다. 올해는 9월 3일 제출됐다. 하지만 본격 심의는 11월이 돼야 이뤄진다.

정기국회 기간 중 국정감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국감은 9월 30일부터 10월 19일까지 실시됐다. 국감은 의원들에게 1년 농사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국감이 끝날 때까지 예산안 심의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올해는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예산안 심의 일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청회와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종합 정책 질의, 16개 국회 상임위별 예비 심의 등을 거친 뒤 예결위 예산 조정 소위원회가 심의에 들어가는 것은 11월 11일부터다.

12월 2일 본회의 처리 전까지 약 3주간 심의가 이뤄지지만 휴일과 휴회, 간사 선임, 소위원회 구성 작업 등을 빼면 실제 심의는 10일 안팎에 불과하다. 예년의 경우 실제 심의가 이뤄지는 총시간을 계산하면 2~3일에 그쳤다. 분당 수천억원의 예산 심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9.3% 증가한 513조5000억원 규모의 ‘초(超)슈퍼 예산’이지만 심의 기간은 예년과 차이가 없다. 대폭 늘어난 보건·복지·일자리 예산을 비롯해 쟁점거리도 많다.

심의 시스템이 이러다 보니 예산안 처리는 법정 시한을 넘기기 일쑤다. 현행 헌법이 적용된 13대 국회(1988~1992년)부터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된 2014년 이전까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 지켜진 것은 모두 여섯 번에 불과했다.

예산안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정부안을 12월 1일 자동으로 본회의에 회부하는 선진화법이 적용된 이후에도 5년 동안 2014년 단 한 차례만 법정 시한이 지켜졌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막판 예산조정소위원회 아래 ‘소소위원회’를 구성해 밀실에서 주고받기 식 타협이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소소위는 법적 근거에 따른 국회의 공식 기구가 아니다. 구성 원칙도 없고 속기록도 없으며 회의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는다.

논의 장소도 비밀에 부쳐진다. 밀실 심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소위는 보통 각 당 예결위 간사와 정책위원회 의장 등 소수로 구성된다. 원내대표들이 끼어들어 직접 담판을 짓기도 한다.

정부 관계자는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는 예산에 대한 심의가 밀실에서 서로 주고받기 식 타협으로 매듭지어진다”며 “소소위원회가 이른바 ‘카톡 예산’이나 ‘쪽지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구 민원성 사업 반영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법 어기기 ‘밥 먹듯’·턱없이 짧은 기간…국회 예산·결산 심의 이대로 괜찮나


◆ 예결위, 상설화하고 정기국회 땐 예산안 심의에 주력해야


예산안을 좀 더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기국회 때 실시되는 국감을 다른 때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기국회 기간을 예산안과 법안 심의에 주력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법률에도 이런 취지가 반영돼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제2조1항)’엔 ‘국회는 국정 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국회 집회일 이전에 국정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기국회 중에 이뤄지고 있다. 예외 규정인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항목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 규정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한 것인데 이를 활용해 국감을 관행적으로 정기국회 때 실시하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상설 기구로 특정 기간을 정해 운영되는 예산결산특별위를 상설위원회 체제로 운영해 예산안을 상시적으로 심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예산 관련 위원회를 상설위원회 체제로 가동해 상시적으로 심의한다. 미국 의회의 예산 심의는 정부안과 완전히 다른 예산안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진행된다.

심의 기간도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다음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의 할 수 있는 기간은 60일이다.

미국이 회계연도 시작 8개월 전에 의회에 제출해 예산안 심의에 집중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짧다. 4~5개월 동안 심의에 전념하도록 하는 영국·독일·프랑스 등에 비해서도 마찬가지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