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한국도 4년 내 국채 10년 금리 0%대 진입 전망
-해외투자 확대 불가피
[한경비즈니스=신동준 KB증권 자산배분전략부 상무·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지난 9월 초 미국의 국채 10년 금리가 1.46%까지 하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 금리도 마이너스 금리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유로존, 일본의 3대 국채 시장이 전 세계 채권지수의 87%를 차지하는데 이미 독일과 일본의 국채 10년 금리가 지난 8월 말 각각 마이너스 0.71%, 마이너스 0.29%까지 하락하면서 마이너스 더 깊은 곳까지 뚫고 내려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위스의 국채 10년 금리는 마이너스 1.12%까지 하락했고 재정 위기를 겪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채 10년 금리도 0.3%대까지 하락했다. 선진 시장 중에서는 미국의 국채 10년이 가장 고금리 국채가 됐다.
한국도 지난 8월 중순 국채 10년 금리가 1.17%까지 하락했고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25%까지 인하하면서 머지않아 한국도 제로 금리에 도달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부쩍 늘었다.
◆인구 감소와 디플레 시대의 동화
한국보다 먼저 국채 10년 금리가 0%대에 진입한 국가들의 고령화율과 한국의 인구 추계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 한국도 향후 4년 안에 국채 10년 금리가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는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과 같은 궤적으로 움직이는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2%대 후반에서 2020년대 2% 내외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본과 노동의 성장 기여도 하락이 주된 요인이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제학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가 성장하던 인플레와 확대 균형의 시대를 가정하고 있다. 반면 이제 인류가 맞이해야 할 인구 감소의 시대는 역성장과 디플레에 익숙해져야 하는 축소 균형의 시대다. 하지만 축소 균형의 시대가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더라도 그보다 인구 감소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 1인당 GDP에 인구를 곱한 전체 GDP는 감소한다. 경제 규모와 ‘국력’이 축소되더라도 1인당 GDP가 성장하는 한 개인의 삶의 질은 개선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자사주 매입에 따른 발행주식 수 축소와 배당 확대는 주주 환원 정책의 일환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축소 균형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제로 금리 시대에서는 경기 침체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잠재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마이너스 성장은 빈번하게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전기 대비 평균 성장률이 0.2~0.3%에 머물렀던 유로존은 지난 20년간 마이너스 성장에 빠진 기간이 27%에 달했다. 제로 금리는 곧 마이너스 성장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마이너스 성장이 곧 ‘금융 위기급 경기 침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로 금리는 이론적으로 가계의 운용 자산을 저축에서 투자·부동산 등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자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자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위험 자산 투자 증가다. 부동산 대출 등 대출도 늘어나는 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일본이 1991년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통해 경험했듯이 제로 금리는 금리 자체의 영향보다 고령화에 따른 디플레·저성장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비즈니스의 기회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제로 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도 크게 늘지 않는다. 오히려 제로 금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경제와 기업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낮추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기업의 보수적 경영 기조는 경제성장을 더욱 둔화시킨다.
제로 금리가 디플레와 결합돼 마이너스 물가에 따른 실질금리 상승이 나타나면 소비와 투자는 한 단계 더 위축되고 예금과 현금 수요 등 안정성을 추구하는 보수적 경향이 더 강화된다.
부동산 시장은 차별화될 것이다. 높은 실질금리를 감당할 수 있고 임대 수익이 가능한 수도권의 핵심 지역 또는 개발 이슈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만 부동산 가격이 유지될 수 있다. 은행의 예금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부동산 시장은 월세와 임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전세는 점차 사라진다.
나아가 임대인은 부동산 가격의 하락 위험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면서 월세와 임대 수익이 예금 금리를 대폭 웃돌 가능성이 높다. 고령의 은퇴자들은 채권 등 이자소득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소비는 크게 위축된다. 반면 급여소득의 현재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은퇴한 고령자에서 소득이 있는 청장년 계층으로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난다.
이자소득이 줄면 상속·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현금 화폐 수요도 증가한다. 학자들 중에서는 탈세와 범죄 등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액권 지폐를 폐지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현금 거래를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화폐개혁에 대한 걱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은행의 예금 이탈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현금 보관을 위한 금고·감시비용, 지급 결제의 어려움 등으로 현금 화폐 수요가 대규모 은행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제로 금리 시대의 경제 환경과 금융시장의 변화
저성장과 제로 금리는 주주들로 하여금 설비투자를 통한 확장보다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을 통한 주주 환원 정책 강화를 요구하도록 만든다. 주식수익률(주가수익률의 역수)이 높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등 저금리 부채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제로 금리는 주주 환원 정책을 통해 주가 상승에는 기여하지만 투자 축소에 따라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낮아진다. 경제성장 속도와 이익 상위 기업들의 주가 상승 속도의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는 이유다. 초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 간의 양극화는 물론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양극화도 모두 가속화된다.
채권 투자 비율이 높은 연기금과 보험사의 자산 운용 수익률 저하는 이들의 부채 부담을 높인다. 부채 부담 확대로 종신·연금보험의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예대금리 차 축소로 은행의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해외투자를 포함한 자산 운용 능력이 중요해지고 수수료가 저렴한 인터넷은행·핀테크·인공지능(AI) 기반 등의 자산 운용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증권·자산운용 등 금융 투자업과 카드 산업 등 수수료 중심 구조의 비즈니스들은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형화가 불가피하다.
기업들은 부채인 퇴직연금 적립금 부족분 부담이 높아지고 사업 자금 중 일부가 퇴직연금 부족을 채우기 위해 투입되면서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해외투자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성장하는 시장과 기업들이 해외에 더 많기 때문이다. 외환 전략의 중요성이 점차 더 강조될 것이다.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해외투자 환 헤지 전략은 자산군별로 각각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외환 익스포저를 따로 떼어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해외 채권과 해외 주식의 최적 환 헤지 비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해외투자를 통해 대외 순자산 규모를 선제적으로 늘려 둬야 한다. 고령화에 따른 저축 총량 감소로 2030년부터 한국도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배당·이자 등 본원 소득 수지 흑자가 상품 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해외투자를 통한 선제적 대외 순자산 확대를 통해 미래의 경상수지 적자 위험을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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