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일사불란한 힘 모으기보다 기민한 변화 더 중요해져…과거의 성공 DNA는 걸림돌 될 수도
‘조정 경기’에서 ‘급류 타기’로…기업 가치관을 다시 짜라
[김용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대부분의 기업이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건강한 조직으로 변화하고 싶어 한다. “변화를 이끌고 싶다면 ‘왜(Why)’라는 질문부터 시작하라”고 하면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현실 경영에서는 이런 변화 과정에서 종종 기존의 가치관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특히 제법 긴 역사를 지닌 전통 기업으로서 과거부터 정립된 가치관을 잘 정립하고 실행도 잘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엄청난 속도의 변화로 과거의 성공 경험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이럴 때 기존의 가치관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주어진 업무가 수시로 변하는 시대


세상의 빠른 변화로 새로운 지식이 흘러넘치고 있다. 그 속에서 기업들도 내부적으로 계속해 새로운 이슈가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여전히 과거의 경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부 자원을 빠르게 활용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여전히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가치관의 힘이 새로운 변화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기존의 가치관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조직에 발목을 잡는지 확인하고 새롭게 정립할 방향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명 작가이자 기업가들의 워크숍에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자주 강의를 하고 있는 사이먼 사이넥 랜드연구소 객원연구원이 쓴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보면 ‘골든 서클’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가 말하는 골든 서클은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왜(Why)’에서 나오고 이를 통해 ‘어떻게(How)’ 차별화해 ‘무엇(What)’을 하도록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야 조직 내에서 제대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에만 익숙하다. 기업의 전략도 일상적으로 변해야 하는 세상에서 하는 일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 필연적인데 말이다.

‘하는 일(What)’이 자주 바뀌면 불만이 쌓인다. 심지어 어차피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행을 미루는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왜 이 일을 하는지에 공감하면 수시로 변하는 일에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관으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이런 변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일을 하는 이유, 기업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기존의 회사 가치관은 대부분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발견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관은 글로 표현된 것이 없어도 이미 일 속에 존재하고 있다. 창업 정신에 녹아 있고 과거 최고의 성공 경험 속에도 있다. 판단과 결정의 기준인 핵심 가치도 마찬가지다. 창업자의 결정에, 최고의 순간에 내린 결정에 핵심 가치가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가치관 정립은 좋은 표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성공 DNA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성공 DNA는 모든 임직원의 마음속에 살아 있고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DNA가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기민한 조직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미래에 도달하고 싶은 꿈인 비전을 만들어 이를 보완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임직원은 미션과 비전을 혼동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관 실천에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과거의 성공 DNA에서 발견해 낸 기존 미션에 세상의 변화를 담고 미래의 강한 열망인 비전을 포함하면 어떨까. 과거의 경험보다 미래의 열망으로 가치관을 정립하는 창업 기업, 즉 우리 조직을 ‘스타트업’처럼 바꾸자는 얘기다.

필자는 아주 독특한 ‘창업 기업가 사관학교’를 맡아 운영한 적이 있다. 거의 1년간 사람들이 왜 창업하려고 하는지, 세상에 어떤 가치를 주고 싶은지에 집중했다.

당시 함께했던 창업 기업가들은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큰 변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을 찾는 데 집중했다.

이들 중 현재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은 스타트업)이 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앱 운영사)’가 있었고 예비 유니콘인 ‘힐세리온’, ‘레이니스트(뱅크샐러드 앱)’, 최근 매년 두 배씩 성장하는 반도체 소재 개발 기업 ‘엔트리움’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민하게 움직이는 건강한 조직을 만든다는 목표로 조직에 맞는 가치관을 설립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존의 가치관이 과거의 성공 DNA로부터 만들어져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 스타트업처럼 다시 창업한다는 정신으로 미래의 거대한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 보완할 방향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치관의 역할을 다시 보고 가치 체계를 단순하게 재정립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 기업들의 가치관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 힘을 모은다는 방향이 주를 이뤘다. 마치 조정 경기를 연상시키듯 말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여선 안 돼


한 회사에 오래 충성하는 ‘맨십(manship)’이 강조됐고 오직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세상이 무섭게 바뀌는 상황에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이제 기업들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조정 경기보다 급류 타기에 가깝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각자가 다르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가치관은 구성원 모두가 꼭 지켜야 할 분명한 기준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실제 행동은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다양하게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가치 체계를 단순하게 바꾸는 것도 검토해 보자. 빠른 변화의 가장 큰 적은 복잡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통 기업의 가치관은 미션, 핵심 가치, 비전으로 구성됐다.

미션과 핵심 가치는 과거 성공 DNA에서 발견했고 비전은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미션과 비전을 혼동하는 임직원이 실제로 많다. 핵심 가치는 아무리 잘 정의해도 구체적인 업무 상황에서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따라서 핵심 가치를 지켜야 할 행동 기준(흔히 행동 약속이라고 한다)을 추가로 만들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가치 체계를 잘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교육해도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기존의 미션과 비전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킬 거대한 목적을 기존의 미션에 담아 보완하는 것이다. 이를 거대한 변화의 목적이라는 의미로 ‘MTP(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존의 비전 자리에는 사업 전략을 두면 기존 가치 체계를 단순화할 수 있다.

핵심 가치도 구체적인 업무 상황에서 실행할 수 있는 행동 약속을 만들어 대체할 수 있다. 물론 핵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행동 약속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임직원이 꼭 지켜야 할 판단과 결정의 기준으로 행동 약속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형제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회사의 목적 아래 ‘규율 위의 자율, 스타보다 팀워크’ 등의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임직원들의 행동 약속에 더 집중한다.

외부에도 잘 알려져 있는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이 그것이다. 그 방법에는 ‘실행은 수직적’, ‘문화는 수평적’,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는다’ 등이 있다.

올해 유니콘 기업이 된 비바리퍼블리카도 ‘금융을 쉽고 간편하게’라는 회사의 목적 아래 ‘탁월한 구성원들이 자율과 책임의 문화 속에서 일합니다’, ‘높은 퍼포먼스 문화를 지향합니다’ 등으로 임직원의 행동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빠른 변화의 시대에 가치관의 역할을 조정 경기가 아니라 급류 타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기존의 복잡한 가치 체계를 단순화할 필요도 있다.

회사의 목적(미션과 비전을 통합) 아래 구체적 업무에서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 약속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을 검토해 보자.

마지막으로 가치관을 실행하는 방식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회사의 목적과 행동 기준인 가치관에 따르면 방향을 잃지 않고 빠르게 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가치관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는 내재화 활동은 이해와 설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감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다양한 실천 이벤트를 진행하고 지원 부서에서 이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은 부가적인 일이 될 때가 많다. 그리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조직의 가치관은 업무 그 자체여야 한다. 따라서 일하면서 경험하고 공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기존의 내재화 교육도 강의보다 업무와 유사한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역할 훈련이나 게임 등 활동 중심으로 전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천 이벤트와 지원 부서의 모니터링보다 현업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활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가 가치관으로 소통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가치관은 ‘왜(Why)’의 영역으로 감정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언어와 관계가 있는 ‘무엇(What)’으로 소통하는 것은 쉽지만 ‘왜(Why)’로 소통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습관으로 만드는 의식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지금 하는 일은 우리 회사의 목적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번 일은 우리 회사의 목적에 맞는 일이군요” 등 업무를 대할 때, 칭찬할 때, 질책할 때도 가치관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리더의 활동을 회의 때마다 서로 공유하고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 구성원에게 전파하면 더 효과적이다.

이제 곧 새로운 10년이 시작된다. 앞으로 펼쳐질 10년의 변화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예측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지 기존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다시 세우는 것부터 실행해 보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