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트위터를 통해 선언한 내용이다. 뉴욕타임스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지난 9월 주소지를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로 옮겼다고 보도한 데 따른 트윗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태어나면서부터 뉴요커였다. 부친인 프레드 트럼프 때부터 뉴욕에서 살면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해 왔다. 자신이 재건축한 맨해튼 5번가의 트럼프 타워 58층에서 1983년부터 30년 이상 살았다. 2016년 대선 당시 대통령 출마 선언도 그곳에서 했고 당선 축하 파티도 뉴욕에서 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뉴욕을 떠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밝혔듯이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배경은 세금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뉴요커’ 트럼프도 떠나게 한 뉴욕의 부유세
뉴욕시에 살면 미 연방 소득세와 상승세에 더해 추가적으로 최고 13%의 소득세(뉴욕 주 최고 9%+뉴욕시 최고 4%)와 고가 부동산에 부과되는 최고 16%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플로리다는 주 차원의 소득세와 상속세가 없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부자에 대한 세금이 큰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군 중 좌파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부유세를 놓고 극단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자산 3200만 달러(약 374억원) 이상(부부 합산)을 보유한 부자부터 세율 1%를 적용하기 시작해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가진 부자에겐 최대 세율 8%까지 부유세를 매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억만장자들은 존재해선 안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CNBC에 따르면 샌더스 의원의 부유세가 부과되면 세계 최고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한 해 90억 달러(약 10조5000억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86억 달러(약 10조원)를 내야 한다.
워런 의원은 부유세로 자산 5000만 달러(약 584억원) 이상에게는 2%,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에게는 3%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CNBC는 워런 의원의 계획대로라면 부유세는 7만5000가구에서 10년간 2조7500억 달러(약 3211조4500억원)가 걷히지만 샌더스 의원의 공약대로면 18만 가구에서 4조3500억 달러(약 5079조9000억원)가 걷힌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미국 부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임스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은 워런 의원의 부유세 공약에 대해 “워런은 매우 가혹하게 성공한 사람을 비난하고 있다”며 “우리는 성공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워런 의원이 부유세 도입 등에 반대한 부자를 비난해 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밝혀 온 게이츠 창업자도 지나치게 급진적인 부유세 구상 비판에 합류했다. 그는 11월 초 뉴욕타임스가 주최한 딜북 콘퍼런스에서 “지금까지 100억 달러를 세금으로 냈고 앞으로 그 두 배를 내도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앞으로 1000억 달러(약 116조1000억원)를 내야 한다면 나한테 뭐가 남는지 산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농담조로 밝혔다.
게이츠 창업자는 상속세를 인상하는 방안에는 찬성하지만 자산에 매기는 부유세를 6%까지 올리는 워런 의원의 급진적 공약은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억만장자인 리언 쿠퍼맨 오메가어드바이저스 회장은 최근 워런 의원에게 직접 부유세를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다. 쿠퍼맨 회장은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부의 원천과 사회에 대한 공헌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월가의 유명 투자자인 폴 튜더 존스 튜더인베스트먼트 설립자는 “워런 의원이 당선되면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25% 급락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15% 오를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워런 의원을 경계했다.
◆이득 대신 손실 많았던 각국의 부유세
부유세는 1980년대부터 유럽에서부터 화두가 돼 왔다. 좌파들은 부자들의 성공은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대가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다이먼 CEO의 말처럼 성공했던 적은 거의 없다.
부유세를 도입했던 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한 상태다. 부유층이 아예 해외로 이주하거나 재산을 국외로 옮기는가 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자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바람에 특정 자산의 가격이 폭등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한 때문이다.
199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유세를 도입한 곳은 15개국에 달했지만 그 사이 독일·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은 제도를 폐지했다. 부유세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스위스·노르웨이·스페인·벨기에 등 4개국에 불과하다.
폐지 이유는 사회적 손실이 더 컸기 때문이다. 세수에 비해 세금을 징수하는 데 과도한 직간접비용이 들어갔다. 2017년 부유세를 폐지한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에릭 피셰 프랑스 KEDGE 경영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부유세를 부과한 지난 10년간 연평균 36억 유로(약 4조5900억원)의 추가 세수가 걷혔지만 사회적 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은 매년 약 70억 유로(약 9조원)가 발생했다.
부자들이 재산을 해외로 옮기거나 국적을 포기하면서 과세 기반이 약화된 것이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이었다. 2017년 이전 10년간 프랑스에서 이탈한 자본과 프랑스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외국에 투자한 자본 등은 약 2000억 유로(약 257조3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에선 징수비용을 줄이기 위해 금융 자산에 집중적으로 과세한 결과 자산 가격 왜곡이 발생했다. 독일은 자산가들이 주식과 채권 대신 시세에 비해 공시 가격이 낮은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부유세를 도입한 벨기에는 50만 유로(약 6억4000만원)가 넘는 금융 계좌만 과세 대상으로 삼았다”며 “벨기에 정부는 조만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유세를 여전히 시행 중인 노르웨이와 스페인도 과세 대상을 축소했다. 이들 국가가 실거주 주택 한 채를 부유세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 집값이 급등하고 주택 매매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스페인은 결국 부유세 부과 기준점을 높여 초고액 자산가에 한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바꿨고 노르웨이 역시 부유세의 비율을 대폭 낮췄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부자들이 세금이 싼 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주소지를 옮긴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헤지펀드 거물 데이비드 테퍼 아팔루사매니지먼트 설립자와 존스 설립자, 스타우드캐피털그룹의 배리 스턴리히 CEO 등이 이미 주세가 비싼 뉴욕·뉴저지·코네티컷을 버리고 플로리다로 이전했다. 뉴욕 출신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 아이칸엔터프라이즈 설립자도 자신의 회사를 내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옮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에서 플로리다로 이주한 사람은 80만8789명이다. 이 중 뉴욕에서 옮긴 사람이 가장 많은 6만333명을 차지했다. 비싼 주세 때문에 주민들이 떠나자 뉴욕 주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뉴욕 주 인구는 지난해 1954만 명으로 2015년 고점에 비해 11만9000명이나 감소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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