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19 재계 키워드①-세대 교체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2019년은 재계 오너 경영인들의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한 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5월 구광모 LG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대기업 4세 경영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3세 경영인을 동일인(총수)으로 새로 지정해 재계 3~4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공정위는 “창업자 이후 4세대 총수가 등장하는 등 지배 구조상 변동이 본격화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8년과 2019년 많은 1~2세대 재계 거목들이 떠나갔다. 2018년 5월에는 구본무 전 LG 회장이 타계했고 2019년 4월에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1월에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2월 9일과 14일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창업 1세대 중에서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인물이 거의 없다. 2세대 경영인으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지만 여러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재계는 이제 1세대와 2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3~4세대가 자신의 뜻을 펴는 추세가 본격화되고 있다. 주요 그룹들을 살펴봐도 1~2세대가 일선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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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새 많은 재계 거목들 세상 떠나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6년째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롯데그룹을 일으킨 신격호 명예회장도 98세로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아들이자 2세대 경영자로 꼽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2016년 말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는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성은 2014년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바통을 이어 받은 상태다. 현대차 또한 정 수석부회장이 2019년 초 그룹 시무식을 부친 정몽구 회장 대신 최초로 직접 주재한 데 이어 3월에는 현대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을 이끌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대차는 정 수석부회장이 2019년 초 승진 후 자율주행차에 승부수를 던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또 정 부회장은 2025년까지 6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래차 개발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사업 구조와 조직 문화를 개편하면서 ‘새로운 현대차그룹’으로의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삼성 또한 사업 전략에서 변화가 있다. 사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2019년 한 해 경영은 쉽지 않았다. 기업을 흔드는 위기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제기되면서 1년 내내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했다.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일본 수출 규제, 메모리 반도체 시황 둔화 등이 대표적인 악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위기를 잘 돌파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 시대와 달리 삼성전자 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현재 재계 최상위권 기업 중 2세대 경영인이 그룹 경영을 주도하는 곳은 최태원 SK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도다.

1960년생인 최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에선 나이가 가장 많지만 한창 일할 시기다. 장녀 최윤정 씨와 차녀 최민정 씨가 있지만 아직까지 후계 구도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최윤정 씨는 SK바이오팜 휴직 후 미국 스탠퍼드대 바이오인포매틱스(생명정보학) 석사과정 유학길에 올랐다. 최민정 씨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SK하이닉스 INTRA 조직에서 대리급으로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연 회장은 한때 건강 이상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베트남 공장 완공식에 참석하는 등 이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재계 인사는 “김승연 회장이 여전히 왕성한 지금 한화그룹의 세대교체는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역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 보인다. 2019년 12월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3세 경영 시대를 알렸다. 김 부사장은 태양광 사업 영업·마케팅 최고책임자(CCO)로 세계 주요 태양광 시장인 미국·독일·일본·한국 등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데 공이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부사장은 2020년 1월 출범하는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의 합병법인인 한화솔루션(가칭)의 전략부문장을 맡게 된다. 태양광은 물론 석유화학과 소재 부문을 아우르는 핵심 직책으로, 이번 승진을 통해 김 부사장이 한화그룹 화학 계열사 전반을 관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현재 금융 부문 디지털 전략을 맡고 있다.

또 CJ그룹도 변화가 감지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ENM 상무에게 CJ 주식 184만 주를 증여한 것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김남호 DB금융연구소 부사장도 언제 경영 전면에 나설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아버지인 김준기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이 2년째 그룹 회장을 맡고 있지만 1937년생으로 고령이고 김 부사장이 내년 45세가 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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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도 조심스럽게 ‘3세대 경영’ 시동
LG그룹은 2018년 4세인 구광모 LG 회장 체제로 전환됐다. 1978년생인 구광모 회장은 소탈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구 회장 취임 후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미래 먹거리를 찾는데 주력하는 등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는 2019년 들어 서서히 변화의 속도를 높여 가고 있다. 특히 60대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추세다. 이 가운데 50대인 권봉석 LG전자 사장을 선임하는 동시에 30~40대 젊은 임원진도 대거 선임하면서 그룹 자체의 세대교체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GS그룹은 약 15년 만에 수장이 바뀌었다. 2005년부터 경영을 이끌어 온 허창수 GS 회장이 2019년 12월 3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용퇴를 발표했다. 그를 대신해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새롭게 회장에 선임됐다.

허창수 회장은 2004년 LG그룹 구씨와 동업 관계를 청산할 당시 허 씨 집안 대표로 협상을 주도했다. 이듬해 출범한 GS그룹의 1대 회장에 취임해 오늘날 GS를 만든 주역으로 평가 받고 있다.

허태수 신임 회장은 2007년부터 GS홈쇼핑을 이끌며 글로벌 감각과 리더십, 미래 비전 제시 능력 등을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큰 형인 허창수 회장보다 아홉 살 어리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와 연결고리 역할을 무난히 해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정원 체제’ 확립한 두산그룹

GS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진 세대교체 방침도 분명히 했다. 허창수 회장의 넷째 동생이자 지난 10여 년간 GS건설을 책임져 온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이 상임고문으로 물러났고 허창수 회장의 사촌 동생이자 50대인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또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의 장남인 허주홍 GS칼텍스 부장 역시 상무보로 승진하며 GS그룹에도 4세 임원체제가 잡혀 가기 시작했다. 이번 승진으로 GS그룹에는 2018년 승진한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과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 허서홍 GS에너지 전무를 포함해 5명의 4세 임원이 포진하게 됐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박정원 회장은 2016년 3월 박용만 회장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고 3년 만에 공정위의 동일인에 지정됐다. 박 회장은 취임 후 1년 만에 전 계열사를 흑자 전환시키고 2017년에는 4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을 회복하는 등 두산그룹의 체질 개선과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LS그룹에서는 고(故)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부사장이 3세들 중 처음으로 계열사 CEO에 올랐다. 구 부사장은 최근 인사에서 예스코홀딩스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또한 LS그룹 3세들은 모두 승진했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 구본규 LS엠트론 전무가 부사장으로,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 LS밸류매니지먼트부문장(상무)은 전무로,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장남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한진그룹 3세대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선친 고 조양호 전 회장 별세 후 곧바로 경영권을 이어 받아 2019년 4월 회장에 취임했다. 조 회장은 최근 단행한 첫 임원 인사에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꾀했다. 조 전 회장 시절 임명됐던 임원들이 물러나고 1960년대생 임원들이 대거 중용됐다. 이와 함께 조원태 회장은 사장 이하 임원 직위 체계를 기존 6단계에서 4단계로 개편하는 등 임원 규모를 대거 축소함으로써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시스템도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의 경영에 반기를 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져 가고 있다.

이 밖에 재계 상위권 중 상당수의 그룹사가 이미 세대교체를 이뤘거나 이뤄 가고 있는 중이다.

대림은 82세의 이준용 명예회장에서 장남인 이해욱 회장으로의 동일인 변경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그룹 경영을 책임져 온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도 2019년 1월 회장으로 승진해 3세 경영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효성 역시 1968년생인 조현준 회장이 2017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다. 특히 2018년 이뤄진 첫 정기 인사에서 40대 임원을 대거 발탁하며 더욱 젊어진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코오롱그룹도 2018년 연말 인사에서 이웅열 회장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3세 경영’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 인사로 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주)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다만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웅렬 전 회장도 총수로 유지했다. 이규호 전무는 2019년 35세로 아직 어리고 계열사 지분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실제 경영권을 물려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 등 빠르게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젊은 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앞으로 세대교체를 통한 혁신 노력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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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