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법 중에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이 있다. 이 계약 준수의 원칙은 오늘날까지 우리 법에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아파트 가격이 대폭 오르면서 계약 체결 후 가계약금 또는 계약금 일부를 지급 받은 후 매도인이 마음을 바꿔 자신이 받은 가계약금 또는 계약금 일부의 배액을 상환하겠다고 하며 매수인에게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면 이 같은 일방적 계약 해지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원칙적으로 가계약금 또는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상태에서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임의 해지)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 민법은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매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565조 제1항)’는 해약금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은 가계약금 등의 명목으로 계약금 일부를 지급한 경우에는 위 민법 규정에 근거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계약이 일단 성립한 후에는 당사자의 일방이 이를 마음대로 해지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중략) 당사자가 계약금의 일부만 먼저 지급하고 잔액은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하거나 계약금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이나 전부를 약정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계약금 지급 의무의 이행을 청구하거나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금 약정을 해지할 수 있다. 나아가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않는 한 계약금 계약은 성립하지 않으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주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대법원 2008년)’고 판시했다.
한편 이와 유사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매도인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중략) 매도인이 계약금의 일부로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는 것으로는 매매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대법원 2015년)’고 판시했다.
주의할 것은 두 대법원 판례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둘째 판례 사안은 매매 계약서에 ‘매수인이 잔금을 지불하기 전까지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제5조)’, ‘매도인 또는 매수인은 계약상의 채무 불이행이 있을 경우 계약 당사자 일방은 채무를 불이행한 상대방에 대해 서면으로 이행을 최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경우 매도인과 매수인은 각각 상대방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손해 배상에 대해 별도 약정이 없는 한 제5조의 기준에 따른다(제6조)’는 각 조항을 두고 있었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둘째 판례를 두고 가계약금 또는 계약금 일부가 지급된 경우에도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 전부를 지급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계약금 해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의 둘째 판례는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액을 말하기 위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라고 가정했던 것이지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결국 가계약금 또는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에 일방 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하려면 계약금 계약에 따른 해지가 아니라 상대방이 만족할 만한 금원을 제시해 합의 해지를 해야 한다. 계약금 계약에 따른 일방적인 계약 해지권을 유보하고 싶다면 계약금 전부를 수수해야 한다.
이철웅 법무법인 밝음 변호사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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